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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림 Feb 28. 2019

3년의 회사 생활, 첫 방학이 찾아왔다.

달리다보면 지치고, 지친 것이 곧 진짜 '나'라는 착각을 하게된다.

직장 생활을 시작하고 3년 정도가 흘렀다. 나에게 3년 동안 휴식다운 휴식이 있었나 생각하면 과감하게 '없었다'라고 말하고 싶다. 휴가 중에도 언제나 회사 생각에 휴대폰 사내 메신저 알림을 끄지 못하고, 회사 메일을 들락날락거리기 일쑤였다. 회사생활에도 방학이 필요하다고 느껴진 건,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의지가 사라져 간다는 것을 느낀 시점이었다.


나는 언제나 무엇인가 일을 벌이기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매일 밤을 새우며 작업을 하던 대학교 시절에도 나는 끊임없이 새롭고 재미있는 것들을 찾아 나섰다. 24시간을 꼬박 뜬눈으로 지새운 날이라 해도 듣고 싶은 세미나가 있으면 언제든지 달려 나갔고, 전시도 하면서 스터디 모임도 하면서, 여행도 하면서 언제나 '재미있는 것'에 대하여 열정적으로 도전하던 사람이었다.

회사 생활을 시작하고, 열정의 시간들이 온전히 회사 일에만 한정되게 되었다. 오랜 시간 반복되는 야근에 점차 회사 밖 생활에 시간을 내어주는 것이 힘들어졌고, 그러다 보니 회사 일 외에 것들에 대해 성취감을 얻는 기회가 사라져 갔다.


2019년이 되고, 회사에 52시간제가 도입되고 비교적 빠른 퇴근과 여가 생활에 대한 누림이 가능해졌다. 어느 날 칼퇴근을 하고 집에 오는 길에 '집에 가서 뭐하지?'라고 생각을 하다가 문뜩 하고 싶은 것에 대한 의지가 사라진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리고 입사 초반 그 길던 퇴근 후 여가 시간이, 의미 없이 빠르게 흘러가버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뭐든 나의 3년 전 '의지'를 떠올리게 할 만한 것들을 찾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2주 휴가를 신청했다. 

(내가 다니고 있는 회사에는 2년 근속을 하면 2주 유급 휴가를 주는 복지가 있다.)





1-2월 나의 방학 계획표 (추석이 아니라 설날이다)


2주 휴가의 시기는 철저한 계획 안에서 짜였다.
때마침 설날이 있었고, 때마침 HCI가 제주도에서 열렸고...


2주 휴가, 설날 연휴, HCI학회 참석, 개인 연차 = 한 달 정도의 긴 방학이었다.

중간중간 회사를 나가면서 짧게 급한 업무를 처리한 것 외에는(한 달 동안 회사 5번 출근),
온전히 내 방학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이번 방학 동안 나는 나 스스로 생각의 변화와 일상의 변화가 어느 정도 일어날지 궁금했다.

그리고 그 기록들을 휴가가 끝난 후에 읽어보며, 몇 자 기록해보았다.



[ 내가 하고자 한 것들과 했던 것들 ]


1. 영어

미루기만 하던 영어를 시작했다. 인강을 신청했다. 돈이라도 내면 조금이라도 하지 않을까 싶어서 시작해보았다. 하루 중 인강을 듣는 시간이 가장 느리게 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작게나마 이번 휴가 때는 영어를 '습관화'하는 것에 목표를 두기로 했다. 부릉부릉 시동은 걸렸다.


 2. 글쓰기

그동안에 쓰고 싶었던 많은 글들을 에버노트에 차근차근 정리해보기 시작했다. 나의 생각에 대하여, 내가 그동안 진행했던 프로젝트에 관하여 한 자 한 자 적어보았다. 나는 생각을 기록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글을 적기 위해 공부를 했다. 흐릿한 기억 속의 경험들을 글로 구체화시키는 과정에서 나는 프로젝트 할 때만큼이나 더 많은 리서치와 공부를 했던 것 같다.

정리되지 않은 엉켜있는 실타래를 반듯한 동그란 원으로 감아놓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3. 잊고 있던 사람들에게 연락을 해보았다.

나는 평소 바쁘다는 핑계로 연락을 잘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쉬는 동안만큼은 잊고 있던 나의 소중한 사람들을 떠올리기로 했다. 그리고 하루에 한통 씩이라도 카톡을 보내보았다.

아버지와 술 한잔을 했다. 곰장어에 소주.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 우리 아버지도 열정 가득한 젊은 시절이 있었구나. 내가 가는 길을 응원해줄 사람이 이렇게 가까이 있었구나. 아 우리 부모님도 풋풋한 연애의 시절이 있었구나. 그 연애의 시간을 돌고 돌아 지금의 부부가 되어 있구나. 를 생각했다.

아버지가 집에 들어가시다 말고 "하림아, 우리 딱 한잔만 더하고 갈까?"라고 물으실 때, 아 우리 부모님은 나와의 대화를 이렇게 기다리고 계셨구나. 나는 참 말이 없던 딸이었구나를 생각했다.


4. 나의 일상을 기록하는 것에 좀 더 집중했다.

일기를 쓰고, 사진을 찍고, 영상을 찍고 그것들을 보관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없어졌던 나의 습관 중 하나가 하루를 기록하는 것이었다. 회사에서 일을 하고, 집에 오고, 밥을 먹고, 인터넷을 보다가, 자고.. 일기를 쓰는 것이 어느 날 무의미하게 느껴졌고, 재미가 없었다. 그래서 일기 쓰는 것을 멈췄었다.

휴가 동안 나는 사소한 것 하나하나를 글로 쓰고, 사진을 찍고, 영상을 남겼다. 그리고 사진과 영상은 편집을 해서 하나의 영상 파일로 묶음화 했다. 한동안 끊겨있던 나의 영화가 다시 플레이되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내 일상의 시간들이 소소하면서도 재미있게 흘러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의 나에게 작은 선물을 만들어 준 기분이었다.




[휴가를 끝내고 느낀 것들]


1. 회사는 나 없이도 잘 굴러간다.

내가 휴가를 잘 사용하지 못했던 이유는 하나였다. 내가 빠짐으로써 프로젝트에 문제가 생길까 봐.

그러나 나하나 빠진다고 해서 진행되던 프로젝트가 멈추진 않았다. 누군가의 업무가 조금씩 늘어났을 뿐. 딱 그 정도 었다.

그동안의 내가 크게 오해하고 있던 부분이기도 했다. 회사에, 프로젝트에, 팀에 나의 빈자리가 생기면 큰일 날 것 같은 것. 그럼으로써 가졌던 수많은 부담감과 압박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가끔 두통이 찾아오곤 한다.

그러나 막상 나름의 긴 시간을 쉬다가 오니, 회사는 어떻게든 굴러가고 프로젝트는 어떻게든 진행되고 있었다. 부담을 덜고, 온전히 즐길 수 있는 '마음가짐'이 조금 늘 수 있었지 않았나 싶다.


2. 나는 일하는 게 즐거운 사람이었다.

정말 웃기는 소리 같지만, 일이 하고 싶었다. 기획을 하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머리가 돌아간다는 느낌이 드는 것이었다. 휴가 3일 차쯤이었을까, 머리가 멈춰있는 느낌이 새삼 불편하고 지루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것저것 끊임없이 찾고 생각하고 생각을 기록하고 있는 과정을 반복하는 것을 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그냥 그 과정이 재미있었고, 하루가 흘러가는 기분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일하는 것들이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었구나를 느꼈다.


3. 나는 '하고 싶은 것을 할 때'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대학시절 나는 하고 싶은 것들이 가득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하고 싶은 것들을 할 때는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몰입했고, 그 과정이 즐겁고 행복했다. 휴가 때 나는 그때의 그 ‘하고 싶은 것’을 찾는 것이 가장 큰 목적이었고 대부분의 시간을 정말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에만 보냈다. 그리고 그 시간을 만드는 계획부터 그 시간이 끝난 후 떠올리는 시간까지도 즐겁고 행복했다. 관심 있고 좋아하는 기술과 서비스를 찾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혼자 그것을 디벨롭시켰다.

사이드 프로젝트의 의미가 무엇일지 어렴풋이 알 거 같았다. 나는 그동안 회사에서 얻지 못하는 추가 지식을 얻는 용도로만 활용하 가능하다고 생각했는데, 사이드 프로젝트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내 일을 찾고 열정을 찾는 과정이 될 수 있겠구나를 느꼈다.


 4. 잘 쉬었다.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직장인의 방학. 

잠도 많이 자고, 밥도 잘 먹고, 사람도 잘 만나고, 재미있고 즐거운 것들을 찾으면서 스트레스로 가득했던 머릿속을 깔끔하게 정리한 기분.


생각이 정리되면서 무거웠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지고, 

내 일상에서도 집중할 부분과 즐겨도 될 부분이 분리가 되는 의미 있는 '휴식'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달리다보면 지치고, 지친 것이 곧 진짜 '나'라는 착각을 하게되서 슬럼프가 오곤 한다.

하고 싶은 것에 대해 열정이 생기고, 계획이 생긴다는 것은 적절한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 비로소 구체화된다는 것을 느꼈던 나의 방학. 배터리 충전이 완료되었으니 다시 한번 달려보자. 







나의 방학을 기념하는 짧은 영상 모음 (근데 대표 썸네일 바꾸는 방법 아시는분...? 부담스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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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작작'주제는 '휴식'이었습니다.

다들 적절한 '휴식'으로 여유를 좀 찾으셨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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