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낳은 건 아니지만 02 |
내 손의 절반은 될까 싶은 고사리 손을 놓칠세라 고것을 꽉 잡고 횡단보도를 건너기 위해 섰다. 키가 내 허리를 조금 넘는 너의 손을 잡느라 왼쪽 어깨가 한껏 기울어져 있는 데다가, 혹시라도 나와 같이 있는 순간에 네가 다치기라도 할까 봐 내 옆에 꼭 붙여 놓느라 온몸에 힘이 잔뜩 들어가 제대로 걷기도 힘들고 이제는 식은땀마저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한편 까불이 너는 ‘뭘 길 하나 건너는데 호들갑이냐’ 하는 듯 안간힘을 쓰고 나를 끌어당긴다. 빨리 좀 오라며. 하지만 어림없지. 편의점을 가려면 나의 손을 꼭 잡아야 한다는 나의 말에 너는 동의했기 때문에 너의 손을 잡고 있는 내 왼팔에 들어간 힘을 풀어줄 용의가 전혀 없으니까 말이다. 그 짧은 횡단보도 위에서 좌우를 수차례 확인하며 무사히 길을 건넜고, 얼마가지 않아 도착한 편의점의 문을 열고 너를 그 안으로 밀어 넣는 순간, 마침내 나는 너를 나로부터 해방시켜 주었지.
10살 남자아이와 집 밖을 나온 첫 순간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내가 어린이를 고객으로 삼기로 결심한 그 순간부터 머릿속에 수도 없이 되뇌었던 것은 나와 있을 때 절대 다치는 일이 생기면 안 된다는 것이었다(물론 지금도 이 사실은 변함없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외출하는 일은 절대 있어서는 안 되며, 가위나 칼 같은 학용품은 절대 사용할 일이 없게 즉, 애초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길 수 있는 여지를 두지 말자고 말이다. 혹시라도 어머니가 셔틀버스에서 내리는 애를 데리고 들어와 달라거나 반대로 셔틀을 태워달라거나 하는 일이 생기면 어떡하지. 당연히 나의 일이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사정하는 특수한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리며 그럴 때는 무슨 수로 거절을 해야 하나 하는 걱정까지 미리 해두었다.
하지만 그 상상이 실현되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수업이 예정되어 있는 어느 오후, 학생의 어머니에게 연락이 왔다. 수업 시작하기 몇 분 전에 진오(가명)가 셔틀에서 내리니 애를 데리고 같이 들어가 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상상했던 그대로였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는 자녀가 없고 조카도 없다. 아이와 함께 집이 아닌 곳에서 단 한 걸음조차 발을 떼어 본 적 없었다. 그런데 밖에서 아이를 만나서 데리고 들어가라니. 내가 맡은 일의 영역이 아닌 것을 너무 당연한 듯 부탁하는 진오 엄마의 무례함에 기분이 상할 틈도 없이, 나는 그 제안을 거절은커녕 흔쾌히 받아들이고 예정된 수업시간보다 빠르게 도착하기 위해 서둘러 준비했다.
혹시라도 어머니가 알려준 시간보다 이른 시간에 버스가 도착하면 어쩌나, 애랑 엇갈리면 어떡하나 싶은 마음에 예정된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도착했다. 그리고 외부 차량이 아파트로 진입하여 다시 빠져나가는 통로를 수십 번을 오고 갔다.
어머니가 알려주신 시간보다 약간 늦게 도착한 셔틀버스. 그 학원의 선생님께서 아이들을 차례로 내려주시며 내게 건넨 “어머니 안녕하세요~!” 하는 인사를 듣고도, 내가 데려가야 할 아이에게 온 정신을 집중하느라 ‘나는 이 아이의 엄마가 아니다.’라는 변명을 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그러고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진오의 가방을 넘겨받아 한쪽 어깨에 들춰 메는 내 모습에 스스로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혹시 내가 엄마놀이에 푹 빠졌었던 것일까. 아마도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영락없는 엄마와 아들의 모습이었을 게다. 어쩜 태어나서 단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을 이렇게 자연스럽게 하고 있다니. 지금 이 순간 다시 회상해 보아도 놀라울 따름이다.
이제 집으로 올라가 수업을 하면 이 미션은 종료된다. 하지만 이 아이는 이 긴장 속에서 나를 쉽사리 꺼내주지 않았다.
“배고파요. 편의점 갔다 갈래요.”
배가 고프다는 진오의 부탁을 거절하지 못한 나는 그렇게 편의점으로 향하게 된 것이다. 대신 선생님 손을 꼭 잡고 가겠다는 약속을 굳게 받아 들고서 말이다. 그렇게 편의점 여기저기를 쏘다니며,
“진오 알레르기 있는 거 있어?”
”알레르기가 뭐예요?”
”뭐 먹으면 몸에 막 뭐 나거나 갑자기 아프거나 하는 거 있어?”
”그런 거 없어요~ 아무거나 다 먹어도 돼요.”
“이건 안돼~ 너무 매운맛이야.”
”선생님 맵찔이예요?”
“이건 엄마한테 혼날 것 같은데…”
“아~ 괜찮아요~!!!”
하는 말이 오갔고, 편의점에 가자고 한 건 이 아이인데 자연스럽게 간식값은 내가 지불을 하고는 우리는 다시 손을 꽉 잡고 건너온 길을 그대로 되돌아 무사히 진오의 방에 도착했다.
내 평생에 처음 겪은 이 재미난 에피소드를 나는 수업을 마치자마자 나의 엄마에게 신나게 떠들었고, 아이를 낳아 본 적이 없는 자신의 자녀의 생경하고 흥미진진한 사연을 들은 엄마는, “그렇게 손잡고 다니니까 기분이 어땠어?”라며 소감을 물었다.
지금은 잘 안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알레르기 하나쯤은 있지 않을까 염려했던 것이 무색할 만큼 아이들은 뭐든지 잘 먹고, 유기농으로 만들어진 음식만 먹고 살 줄 알았지만 화학조미료가 잔뜩 들어간 간식에 달려들며 내가 자라던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자라고 있었다. 아이와 손을 잡고 잠깐 집 앞에 외출을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한없이 까불던 아이도 바깥에서는 가만히 내 손을 잡고 서로의 말에 집중할 줄 안다는 것을 이제는 잘 안다. 그리고 문득 깨달았다.
아 나도 그렇게 내 부모로부터 길러졌겠구나. 내 엄마 아빠가 조금씩 나를 세상에 꺼내놓으며 배웠겠구나.
그로부터 몇 개월 뒤, 8살 꼬마가 나와의 수업을 마치고, 얼른 준비해서 피아노 학원에 가야 했던 날.
외출복으로 갈아입어야 하는데 아이들을 돌보아 주시는 이모님의 말을 도통 듣지를 않고 늑장을 부리고 있었다. 이내 출발해야 할 시간이 지나자 엄마의 잔소리가 시작되었을 때, 나는 어떠한 염려도 없이 선뜻 그 아이에게 특별한 제안을 했다.
“선생님이 피아노 학원에 데려다줄까? 대신 빨리 나가야 되는데~”
그리고 우리는 갑자기 찾아온 어색함을 숨기려는 듯 서로의 손을 더 꽉 잡고 아파트 단지를 함께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