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이 없어서 행복해요(1)

제가 낳은 건 아니지만 03 |

by 킴프로

이제 막 10살이 된 남자아이와 난생처음 60분이라는 시간을 기적처럼 소진하고 돌아서는 길. 낯선 동네의 아파트 현관을 빠져나와 영하의 차가운 겨울 공기를 한껏 들이마셨다. 그것은 일과를 마치고 들이키는 목젖을 칠만큼 차가운 생맥주보다도 달고 맛있었다. 이내 복잡해진 머릿속을 정리해 보려는 듯 머리를 세차게 흔들며 나는 소리 내어 말했다. 듣는 이 없는 혼잣말이었다.

“와… 아들이 없어서 너무 행복해.”


“우웩~!!!”

학생과 내가 서로 탐색하는 시간을 가져보겠다는 목적으로 첫 만남의 수업에 오리엔테이션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처음 가 보는 동네의 한 아파트 단지에 도착하여 몇 번이고 주소를 확인하고는 떨리는 마음으로 세대 호수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마침내 도착한 그 집 앞은 축구공과 농구공, 그리고 바퀴 수도 크기도 서로 다른 갖가지 색의 자전거들과 킥보드, 거기에 웨건까지. 사람 하나 겨우 지나갈 수 있을 만큼 빼곡했다.


한숨 돌릴 틈도 없이 떨리는 손으로 초인종을 눌렀고, 기척이 없어 몇 차례 더 누르고 나서야 전자음 소리를 내며 현관문이 열렸다. 설렘과 긴장으로 한 발 내딛던 그 순간, 키가 작고 오동통한 남자아이가 나를 마주하자마자 입 밖으로 낸 소리는 놀랍게도 “안녕하세요.”가 아니었다.


높고 밝은 톤으로 “안녕~!” 하는 내 목소리가 허공에서 채 흩어지기도 전에 그는 내 눈앞에서 사라졌고, 나를 고용한 이 집의 주인은 그곳에 없었다. 그렇다. 이 집 안엔 그와 나 둘 뿐이었다. 손님을 반기는 이 하나 없는 낯선 가정집 거실에서,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선 것도 기댄 것도 아닌 이상한 자세로 얼어붙은 채 나지막이 읊조렸다.

“하하. 큰일 났다. 하하…”


그 몇 분이 어찌나 길던지. 남의 가정집에서 풍기는 그 집만의 냄새, 내 공간의 것과는 다른 그 집의 온도, 그리고 저 멀리 방에서 미세하게 들려오는 휴대폰 조작음으로 추정되는 소리까지. 그 낯설고 고요한 적막은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폭풍전야. 이 단어를 실제로 경험해 본 사람이 세상에 몇이나 될까? 어쨌든 그 중 하나가 바로 나다. 나는 그 적막 속에서, 조금 전 그 아이가 내가 들은 이름의 주인이 아니길 잠깐 바랐다. 그리고 곧 정적은 외출하셨던 어머니의 등장과 동시에 깨졌다.


그랬다. 이 수업은 엄마와 진오(가명)가 서로 합의한 상태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진오는 있는 힘껏 소리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울고불고 난리를 치며 나와 함께 하기를 온몸으로 거부했고, 그 폭풍 같은 시간은 곧 모자간의 모종의 거래와 “오늘은 5분만 할 거야~” 하는 거짓말로 소강상태에 이르는 듯했다. 겨우 진정이 된 진오와 나는 비로소 단둘이 방안에 남겨졌다.


도망가고 싶었다. 울고 싶었다. 정말 다 그만두고 포기하고 그 방문을 열고 뛰쳐나가고 싶었다. 유튜브에서나 보던 그 ‘아들’이라는 존재가 지금 내 옆에 앉아있었다. 아니, 유튜브 속 그들보다 더하다. 이 ‘아들’은 내 눈을 쳐다보기는커녕, 내 이름 따위는 전혀 궁금하지도 않으며, 엄마가 본인의 허락을 받지도 않고 억지로 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기 시작했다.


문득 애착 인형인 것 마냥 스마트폰을 있는 힘껏 쥐고 있는 진오의 자그마한 한쪽 손이 눈에 들어왔다. 남의 ‘아들’과 둘이 앉아있는 꼴이 어쩐지 짠하고 안쓰러워 웃음이 새어 나올 것 같은 것을 겨우 참았다. 그 찰나의 순간이 내 입을 열었다. 이내 정신을 가다듬고, 밤잠을 줄여가며 외웠던 대본을 그대로 읊기 시작했다.

“진오야~ 그림 그리는 거 좋아해?”


다행히 말하기를 좋아하는 진오는 어느새 사슴벌레와 스키비디 토일렛을 주제로 침까지 튀겨가며 쉴 새 없이 떠들어댔고, 주도권을 완전히 빼앗긴 나는 그 말들 사이에서 맥을 못 추고 이리저리 나부꼈다. 내가 이 어린아이에게 휘둘리게 된 연유에는 첫 만남이 성사되기 전, 아이들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전달한 사전 질문 항목들에 자신의 아들의 최신 관심사를 미처 업데이트하지 못한 엄마가 레거시 정보를 기입했기 때문임이 틀림없었다. 어느새 30분이 흘렀다. 이제는 나의 작전을 개시해야 하는 시간이 왔다.


그렇다. 수업을 시작해야 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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