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 천재 아니야?"

제가 낳은 건 아니지만 05 |

by 킴프로

“잠깐만! 선생님 잠깐만요!!!”


진오(가명)가 급하게 나를 부른다. 수업을 마치고 진오의 할머님과 짧게 인사를 나눈 뒤, 현관문을 닫으려는 찰나. 숙제를 내준 것이 이해가 안 되어 부르나 싶어 “응? 진오야 왜?”하고 현관문을 다시 연다. 웬일인지 현관문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꼿꼿하게 바른 자세로 차렷하고 있던 진오가 허리를 90도로 굽히며 외친다.


“안녕히 가세요!”


사랑스럽고 반짝이는 순간이다. 그 순수함에 바닥을 보였던 인류애가 한가득 충전된다. 곧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 진오의 강제성이 동원되지 않은 순도 100%의 인사다.


첫 수업을 앞두고, ‘요즘’ + ‘초등학교 저학년’ + ‘남자’의 특성에 대해 무지성으로 유튜브를 검색하던 때. 어느 유명 정신건강의학과 의사가 흥미로운 내용을 다루고 있었다. 학생과 헤어질 때, “자~ 선생님께 인사해야지~”를 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이해하기론 실컷 수업 잘해놓고, 끝나자마자 잽싸게 쉬러 간 아이를 현관문 앞으로 다시 불러 억지로 인사시키며 얼굴 붉히지 말라는 것이었다. 수업 때 쌓은 즐겁고 재미있었던 감정을 그대로 가져갈 수 있게 내버려 두라는 의미였을 것이다.


그래, 인사가 뭐라고.

나는 당시 초짜 선생이면서도 한편 꽤나 쿨한 이미지를 연출하고 싶었기 때문에 학생으로 하여금 “안녕하세요.”와 “안녕히 가세요.”를 억지로 시키지 않았고, 지금도 여전히 그렇다. 그런 나의 기조는 변하지 않았고, 놀랍게도 아이들은 스스로 성장하고 있었다. 물론 아주 느리지만 말이다.


아이들이 외부 압력 없이 스스로 변하는 모습을 보며, 잊고 있던 [자기주도]의 근본 원리가 떠올랐다. 사람을 스스로 움직이게 만드는 것, 마음을 동하게 하는 것. 우리가 흔히 [동기]라고 부르는 것 말이다. 그 유명 의사의 “인사 억지로 시키지 않기”의 본래 목적과는 별개로, 아이들의 인사는 나를 다시 깨우쳤다. 아이들이 무엇이든 스스로 하고 싶어 지게 만드는 일, 그것이 내 본래 과제임을. 그리고 나는 그것을 대원칙으로 삼았다.

그러자 스스로의 교육 지침이자 나만의 스페셜티가 분명해졌다.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기] 그리고 [기다림]이다. 우당탕탕 수업을 시작했을 즈음 어떤 명확한 의도를 가지고 원칙 따위를 내세운 것은 아니었지만, 몇 개월의 시간이 흐르고 아이들의 변화를 목도하고 나니 내가 정한 원칙에 대하여 강한 믿음이 생겨나게 되었다.


진오는 만나면 만날 수록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아이인가’, ‘어디 상담센터를 좀 다녀보라고 해야 하지 않나’하는 생각 등으로 선생님으로서의 자격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했다. 진오는 수업하기 쉽지 않은 학생이다. 집중력이 약한 것은 기본, 폭력적인 행동이 예고 없이 반복되었다. 이를테면, 있는 힘껏 주먹을 꽉 쥐고 책상을 내리치거나 물건을 던지고, 수업 자료를 찢기도 했다. 대부분 충동적이었다. 수업 중 활용할 작정으로 맥북을 열어 두면 이유 없이 모니터를 가격하면서 약 올리는 표정을 짓기도 했고,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리거나 버릇없는 말투까지… 한참 어른인 나도 진오의 말에 상처를 받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60분의 수업 시간 중 제대로 집중하는 시간이 30분이 채 되지 않는 아이를 붙잡고 책을 읽히고, 글쓰기를 시켜야 했다.


불안한 감정상태에 놓인 채 알아보기 힘든 글자로 3줄을 겨우 쓰던 진오는 이제 노트 한 페이지 가득 자신의 생각을 써낸다. 주먹을 쥐는 일도 없다. 가위바위보를 할 때를 빼고 말이다.


내가 진오에게 한 일은 첫째, 상대가 누구든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폭력적인 행동과 본인이 속한 사회에서 스스로에게 큰 불이익이 될 것이 뻔한 나쁜 행동에 대해서만 강하게 훈육한 것이다. 이때에는 상벌제도가 제대로 먹혔는데, 규칙과 이행에 대하여 절대 예외를 두지 않았다. 이 외 사소한 잘못이나 자잘하게 무례한 행동들에 대해서 일일이 잔소리하지 않았다.

두 번째,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잘 한 부분에 대해서 ‘너는 이런 부분을 정말 잘한다.’고 짚어주어 스스로 인지할 수 있도록 한 것. 어쩌다 단 한 문장이라도 잘 쓴 문장을 발견하면 “진오야 어떻게 이런 표현을 썼어? 이건 이야기 책을 많이 읽은 사람만 쓸 수 있는 표현이야! 너무 잘 썼는데?”하며 거듭 강조한다. 어깨가 들썩일 정도로 치켜세워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한 줄이 한 문단이 되고, 노트 한 페이지가 될 때까지 나는 기다린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진오의 글이 가독성 좋게 문단이 나눠져 있기도 하고, 호기심을 가득 불러일으키는 프롤로그 한 줄이 생겨있을 때도 있다. 물론 아직은 프롤로그만 재밌는 경우가 더 많다. 또 어느 날은 상상하지도 못한 제목(제목이랑 내용이 전혀 관계없을 때도 있다)을 지어내기도 하고, 가끔은 이런 문장도 불쑥 튀어나온다.


‘숙제가 힘들 때는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를 생각하며 숙제를 열심히 했다.’


매 시간 온 신경을 바짝 세운 채, 아이들이 쓰는 말과 표현을 놓치지 않고 최대한 구체적으로 기록하여, 반드시 아이들이 스스로 인지할 수 있도록 한다. 때로는 있는 대로 호들갑을 떨며 박수를 치고, 놀란 듯 두 손으로 입을 가리면, 아이들은 ‘이 선생님이 왜 이러나~’하는 표정이다. 하지만 이내 쑥스러워하면서도 내심 기분이 좋아 어린애 표정을 짓는다(어린애들이지만 어린애 표정은 쉽게 볼 수 없다.).

수업하기 싫다고 침대에 들어갔던 (다른)진오는 어느 날 수업을 더 하자고 조르기도 하고, 또 팔에 내 손끝이 살짝만 닿아도 몸서리를 치고 기분 나쁜 티를 팍팍 내며 팔을 치우던 애가, 이제는 팔이나 다리가 살짝 닿아도 자세를 바꾸지 않는다. 그러면 내가 슬쩍 치운다.


그러는 시간이 켜켜이 쌓여 한 가지 주제의 책만 고집하던 애가 선생님이 추천하는 이야기 책을 읽고 싶어 하는 날이 되고, 책상 의자에 앉기도 전에 “선생님 빨리 이거부터 읽어보세요.”하고 숙제 노트를 들이미는 날이 오더라는 것이다. 물론 완전한 변화는 아니다. 한동안 얌전하더니 오늘은 워크시트를 집어던지는 것을 시작으로 수업을 하네~마네~ 50분을 실랑이하다가, 결국은 “어머니 모셔오고, 진오는 나가.”라는 말까지 나왔다. 고백하자면 언제까지 기다려주어야 하나 싶은 생각은 매일 한다. 단지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쓸 뿐.


진오와도 이제 막 네 계절을 한 번씩 보냈다. 숙제로 써온 글 안에 “및”이라는 부사를 사용한 것을 보고 “어떻게 ‘및’을 쓸 수 있지? 우리 진오 천재 아니야?”하는 것도 1년째 여전하다. 물론 다른 아이들에게도 같은 마음이다. 아 이 마음은 100% 진심이다. 내 학생들은 정말 다 천재 같으니까.






“고맙습니다~ 해야지~”


4살 정도 됐을까 싶은 여자 아이와 아이의 엄마가 나와 내 엄마를 뒤 따라 나오길래 편의점의 유리문을 잡아 주었다. 아이의 엄마는 잇따라 “안녕히 가세요~ 해야지~” 하고 아이를 재촉했고, 우리는 가볍게 인사를 하고 서둘러 돌아서는데, 뒤에서 아이 엄마의 목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어른한테는 항상 인사를 잘하는 거야~”


나는 엄마에게 “에휴.. 우리 진오는 젤리를 사주면 아직도 엄마가 시키기 전까지 ‘고맙습니다’를 안 하는데.”하고 괜히 힘주어 말했다.

물론 나도 여전히 “고맙습니다~ 해야지~”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아무래도 “안녕히 가세요.” 보다 “고맙습니다.”가 더 무거운 말인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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