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낳은 건 아니지만 06 |
경고: 안타깝게도 이것은 부자가 되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글이 아님을 사전에 밝히는 바이다.
10살.
읽기와 쓰기를 가르쳐주는 선생님 두 명이 각각 일주일에 두 번, 일주일에 세 번씩 방문한다. 영어 학원은 두 곳으로 각 주 2회, 수학은 의대생에게 주 2회 과외로 받고, 연산학원과 도형학원을 각각 한 번씩 다닌다. 아파트 커뮤니티 시설에서 수영 주 2회, 골프 주 1회, 스쿼시 주 2회를 배운다. 축구 클럽은 두 곳, 야구 클럽과 줄넘기 학원은 각각 주 1회 다니고, 피아노 학원은 주 2회. 주말에는 피아노 학원에서 주최하는 콩쿠르 대회와 축구 클럽에서 하는 축구 대회에 참가한다.
물론 학교에서 운영하는 방과 후 수업도 받는다. 틈이 나면 학기와 방학을 구분하지 않고 해외 각지로 여행을 다니며, 친구들과 축구 약속이 잡히면 경기장 하나를 통으로 대관해 공을 찬다. 자, 이 아이 부모님의 직업은 무엇일까?
부잣집.
아이들이 사는 곳은 대체로 8학군 내 소재의 고급 아파트이고, 나는 난생처음 그곳에 들어가 봤다. 부동산에는 젬병이라 땅값이나 아파트값 같은 것은 잘 모른다. 하지만 타워팰리스, 압구정 현대아파트, 우성 아파트는 90년대 강 건너 사는 국민학생에게까지 이미 소문이 나 있었다. “부자 아파트”라고. 이런 아파트를 일주일에 몇 번씩 드나들다 보니 그동안 농담 삼아 내뱉었던 “세상에 나 빼고는 전부 부자구나…”를 몸소 느꼈다. 그렇다. 초반에는 현타가 좀 왔었다. 아니 꽤 심했다. 이런 세상에 살고 있는 아이들에게 내가 가르칠 게 있기나 할까 싶었다.
다과상
수업을 하며 생긴 에피소드를 친한 지인들과 공유하면 자연스럽게 받는 질문이 몇 가지 있다. 하나는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다과상”을 차려주냐는 것이었다. 이제 와서 말이지만 놀랍게도 모두 같은 질문을 했다는 것이 어쩐지 소박하고 귀엽다. 냉수 한 잔 못 얻어 마신 집도 있었고, 본인들만 먹기 미안하니 수업을 잠시 중단하고 함께 식사를 하자는 부모님도 계셨다.
다른 하나는 바로 부모님들의 직업이나 학벌이다. 이 부분은 내가 수업을 하는 데에 알 필요가 없는 정보라고 생각하기에 부모와 학생 모두에게 먼저 묻지 않고, 당연히 유도 질문도 하지 않는다. 나도 모르는 새 선입견 같은 것이 생기게 될까 주의를 기울이고, 학생의 개인적 성향과 취향, 그리고 읽고 쓰는 능력에만 관심을 가지려고 노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쩔 수 없이 상상하게 만드는 것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무심코 하는 말이나 몸에 밴 행동이었다.
Q. 인상 깊었던 여행이 있다면?
A. “1등석 타고 미국 갔을 때”
Q. 말을 하려다 멈추길래 “왜?”하고 물었더니,
A. “엄마가 이 수업 돈 내고 하는 거니까 선생님한테 딴 얘기 하지 말랬어요.”
Q. 숙제 분량을 조율하기 위해 “이 수업 끝나고 무슨 수업 남았어?”
A. “전 몰라요. 엄마한테 물어봐야 돼요.”
Q. (질문 없음)
A. “제 엄마는 어렸을 때 너무 심심한데 할 게 없어서 집에 있는 책을 다 읽었대요. 근데 저는 죽어도 싫어요.”
그런 말을 내뱉는 아이들을 보자면 그들이 성장하고 있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궁금해질 수밖에 없었다. 상상 속 부모님들의 직업이 어떤 날은 재벌집 막내아들이었다가, 중소기업의 대표였다가, 또 의사나 변호사였다가 했다. 그런데 직업 또는 학벌을 알게 되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아이들 모두 스스로 정보를 노출하기 시작했다.
당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대립하는 정당의 유력 후보 이름을 각각 호명하며, 내게 한 명만 선택하라는 듯 “빨간색 vs 파란색, 하나 둘 셋!”을 외쳤던 진오(1, 가명)의 집안은 준재벌 정도는 되지 않을까 했고, 또 모델하우스 같은 집을 세컨드하우스로 두고 지내며 “지금 문 밖에서 엄마랑 아빠가 다 듣고 있어요.”라고 귀에다 대고 속삭였던 윤정(가명)이의 부모님은 유명 병원 원장이시지 않을까 했다. 그리고 어느 날 두 아이가 흘리듯 말했다.
“우리 집 고깃집 하거든요.”
먼저 외식매장으로 나는 그렇게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종목은 다르지만 과거 외식업을 운영해 봤던 터라 대략으로나마 예상가능한 매출 이익이라는 것이 있는데, 외부에 알려진 것만으로도 상상을 뛰어넘는 곳들이었다. 내가 번 건 돈 축에도 못 꼈다.
한편 열 가지가 훌쩍 넘는 사교육으로 한 주가 숨 쉴 틈 없이 돌아가는 10살과 일거수일투족을 감시당하는 탓에 그렇게 좋아하는 틀린 그림 찾기도 부모님 몰래 해야 하는 9살의 세상은, 부모가 자신이 사는 세상을 온전히 상속하기 위해 아니 더 좋은 곳에서 살게 하기 위해 설계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을 근거로 추론했던 부모님의 직업과 현실의 괴리는 나의 사고가 얼마나 단순하고 편협한 지 알려주는 경고였다. 그들이 활용하고 있는 것과 같은 소비재 즉, 외식 서비스로 내가 경험했던 매출 스케일, 그 숫자들을 트로피처럼 여기며 살았던 나는 감히 짐작조차 할 수 없는 세상이었다.
“선생님 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아빠가 그어 놓은 테두리 안에서 생의 절반을 보냈다면 변명이 될까.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는지도 모르지만 내 상상이 맞아떨어진 집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진오(2, 가명)가 책 읽기랑 글쓰기는 죽어도 싫고, 숙제는 당연히 안 하는 것이며, 하루 온종일 스마트폰 게임만 하는 이유가 대부분의 시간을 돌봄 이모님과 보내고 있어서인가 했다. 부모님께서 아이들 교육에 신경을 쓸 틈이 없으신가 하고 진오(2)가 수업시간에 하는 행동, 뛰어난 점, 가정에서 함께 도와주십사 하는 부분들을 세세하게 기록하여 공유했다. 국내 최상위 대학 석박사 출신으로 “교육”의 최전선에 몸 담고 계시는 줄은 상상도 못 했다. 그렇게 아이만 보려고 했는데도 은연중에 “이런 부모 밑에는 이런 아이”와 같은 것이 있었는지 스스로 크게 흔들리는 순간이었다.
애써 감췄던 낡고 오래된 개념이 깨지고 나니 선생의 입장으로선 차라리 잘 된 일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아이들에게 새로운 프레임을 씌울까 봐 가정환경을 알려하지 않은 내 기조에 오히려 강하게 힘을 실어주는 계기가 되었으니 말이다. 한편, 타고난 것이든 후천적으로 개발된 것이든 개인의 성향이나 역량과는 별개로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어쩐지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는 막대한 부 위에 세팅된 환경에서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의 말투와 태도에서는 가진 것이 뚝뚝 넘쳐흘렀다. 그것은 금전적 소비이기도 했고, 원어민 같은 영어 발음이기도 했다. 또 아직 나도 못 해 본 ‘퍼스트 클래스 타고 미국 가기’ 같은 경험이기도 했고, 성인에게서도 찾기 어려운 매너 있는 태도이기도 했다.
그곳에서 어느 6학년 아이는 그저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으면 본인의 왼쪽 빈 보조의자에 전 과목의 선생님들이 시간 맞춰 들고 나느라 본인은 무엇을 얼마나 배우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고, 이제 2학년이 된 아이는 부모가 아닌 낯설지만 반가운 동성의 어른에게 나누고 싶은 일상의 대화까지 감시당하고 있었다.
이들이 자라 상속받은 부와 재능은 어떻게 쓰일까. 이 아이들을 둘러싼 계는 그곳에 침범하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알게 되어버린 내가 속한 이곳의 크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하다. 아니 어쩌면 한계가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나아가 언젠가는 지금 사는 세상을 초월한 곳을 직접 설계할 수 있는 가능성까지 전부 가지고 태어났다. 그런데 지금 어떤 꿈을 꾸며 무엇을 배우고 있는 것일까. 글쓰기 과외를 붙이면서도 자녀의 숙제를 직접 수정하고 학원 숙제를 도와주기 위한 선생님을 다시 고용하는 것이, 어떤 부모든 가진 것, 사는 곳과는 별개로 최소한 나처럼만 되어라는 마음으로 하는 일은 아닐 것 같아 하는 말이다. 그들의 불안과 기대의 실체가 대체 무엇이기에 아이들이 누구보다도 자신의 삶을 스스로 운용하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수많은 기회에 놓여있음에도, 그것을 매 순간 놓치게 내버려 두는지 의문이 든다.
학부모들은 “자기주도학습”으로 된 강의명에 수업을 의뢰하면서 10에 8은 이런 메모를 남긴다. “국영수 학원 숙제 체크해 주세요. 문제집 풀고 모르는 문제 질의응답 해주세요.” 그 사람들을 하나하나 붙잡고 “자기주도학습”의 기본 개념부터 알려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 누구에게서라도 결국에는 ‘그’ 수업을 받게 될 얼굴도 모르는 수많은 아이들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글의 처음으로 돌아가 만약 내가 다시 10살이 되어 이 아이의 인생을 산다면 어떤 모습으로 자랐을까. 하루에 몇 명씩 드나드는 선생님들에게 “선생님이 저 잘라줬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하는 아이였을까 아니면 하루 시간표 정도는 스스로 짤 수 있는 아이였을까. 실제로 이 아이의 꿈은 먹방 유튜버이고, 그 이유는 “놀면서 돈 벌고 싶어서.”이다.
에필로그
살면서 타인의 가정집을 방문하는 날이 얼마나 될까? 방문 수업을 하기로 결심하고 생긴 또 다른 걱정은 남의 집 방문이었다. 어쩐지 아주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나는 다른 사람의 집에 가는 것을 매우 꺼려했다. 그것은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 이어서 친구와 함께 밤을 보내야 한다면 호텔을 예약할지언정 내 공간에 들이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하지만 “방문” 자체가 일이 되어버렸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마실 물이나 커피는 미리 준비해서 들고 들어간다. 당분간 계속 얼굴 볼 사이인데 매번 마실 거리를 준비하지 않아도 된다는 무언의 신호다. 수신여부는 잘 모르겠다. 학생의 공부방을 벗어날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화장실은 수업 전 후로 개인 사무실이나 공용공간에서 해결하고, 손은 소독티슈로 닦는다. 모든 가정이 공부방은 현관과 바로 붙어 있는 곳을 사용해서 다행히 입장과 동시에 곧장 방으로 들어갈 수 있고, 시선은 공부방만을 향하도록 한다. 눈 모서리에라도 주변을 담아두지 않는다. 집안의 어떤 것도 보지 않으려는 듯 말이다. 그것이 남의 집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내 의도와는 관계없이 눈에 들어온 장면은 어쩔 도리가 없다. 아이들이 억지로 손을 잡아끌고 거실을 가로지르게 만들거나, 주방이나 안방에 같이 가보자고 하는 경우들이 생기기도 한다. 그럴 때는 애써 시선을 이 아이에게만 둔다. 하지만 동선을 따라 놓인 책장에 한가득 꽂혀있는 책은 유심히 들여다본다. 나는 아무래도 그 공간에서 유일하게 아이 그리고 책 앞에서만 당당한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