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퍼피 Nov 06. 2020

글쓰기 워크숍, 말줍놀이를 하다.



2017년 11월, 음악 산업 평론가 차우진 님의 [관점을 바꾸는 글쓰기 워크숍]을 수강했다. 여러 가지 활동을 하며 토론하고 글도 썼는데,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활동은 '말줍놀이'였다.


말줍놀이는 4주 동안 내 귀에 꽂히는 타인의 말과 단어를 매일 수집해서 기록해두는 활동이다. 이 놀이는 단순히 수집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글쓰기 워크숍 마지막 날에 모든 수강생이 수집한 단어 혹은 문장을 포스트잇에 적어 테이블에 무작위로 펼쳐놓은 후, 마음에 드는 5개를 골라 짧은 글을 쓰는 것으로 이어졌다. 그 당시 내가 신중하게 고른 5개의 단어와 문장은 아래와 같다.   


1. 정신상담을 한번 받아보고 싶어
2. 트라우마
3. 나는 너가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어
4. 감사합니다
5. 와 시발


그리고 이것으로 짧은 글을 썼다.    






A : 어 왔어?


B : 응. 잘 지냈냐?


A : 나야 뭐. 근데 너 얼굴이 좀 안 좋다?


B : 그게.. 실은 나 1.정신상담을 한번 받아보고 싶어


A : (가만히 담배를 꺼낸다) 필래?


B : 됐어.


A : 참내.. (담배를 다시 집어넣는다) 왜 그런 생각을 했는데? 말해봐.


B : …. 내가 어렸을 때 놀이공원에 있는 거울의 집에 들어간 적이 있어. 그 왜 있잖아. 미로 같은 곳인데 온 사방이 죄다 거울로 되어 있는. 거기서 내가 신~나서 정신 놓고 놀다가 나가는 통로가 보이는 방향으로 냅다 달려갔는데, 실은 통로가 비친 거울이었던 거지. 그래서 거울에 곧장 이마를 쾅 처박고 뒤로 나가떨어졌거든. 그때 머리랑 코에서 피가 좔좔좔. 어찌나 많이 흐르는지 진짜 대가리가 터진 줄 알았다니까. 근데 내가 말하려는 건 이제부터야. 머리 터진 건 중요한 게 아니라고.


거기가 어디냐. 거울의 방 아니냐. 사방 어디를 봐도 시뻘건 피를 뒤집어쓰고 있는 내 얼굴이 보이는데.. 그대로 그냥 기절해버렸지.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고른다)


그 이후로 거울 보는 게 2.트라우마가 돼서 거울을 한동안 못 봤어. 자꾸 피칠갑한 내 얼굴이 생각나니까! 어 씨 지금도 약간 닭살 돋았다 봐봐.


아무튼, 그 뒤로 거울을 한 3년? 못 봤다가 어떻게 사람이 거울을 평생 안 봐? 조금씩 보기 시작했는데. 하아.. 문제는.. 거울을 보면 그 속에 비친 내가 너무 낯설게 느껴진다는 거야. 내가 날 보는 게 아니라 남을 쳐다보고 있는 것만 같아. 이제는 그냥 거울 보라면 보겠는데, 그 낯선 느낌이 잔상처럼 남아있어. 그래서 뭐.. 그게 시간이 지나도 나아지질 않고 날 계속 괴롭히니까 이제는 좀 벗어나고 싶어서 정신상담을 받아볼까 생각했던 거지. 야 근데 왜 듣고만 있냐. 뭐 해줄 말 없냐?


A : .. (곰곰 듣고만 있다)


B : 새끼야. 암말 안 하니까 3.너가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잖아


A : … (곰곰 듣고만 있다)


B : 그래 뭐, 이런 얘기는 말없이 듣고만 있어 주는 게 최고의 위로라니까. 쨌든 들어줘서 4.고맙다


.

.

.

.


C : 5.와 시발. 야 너 저 사람 봤어? 지금 30분째 거울 보면서 지 혼자 지껄이고 있잖아!




작가의 이전글 어서 오세요. 낙선 원고 상점 '작가의 서랍'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