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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퍼피 Nov 08. 2020

개발자 사이에서 비개발자로 살아남기

중국 공항에서의 '떡튀순' 단체 사진, 사진 업로드는 모두에게 허락을 받았다.



어떻게 하면 비개발자가 개발자들과 균형을 이루며 협업을 할 수 있지? 라는 궁금증으로 이 글을 본다면 나는 최선을 다해 당신을 실망시킬 자신이 있다. 이 글은 직장생활이나 업무 방법에 관한 글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개발자 사이에서 비개발자로 살아남기'는 '술자리에서'라는 상황이 배경으로 깔린다. 이 글은 비개발자로서 개발자들과 조화로운 술자리를 가지는 법에 대한 이야기다.






'떡튀순'이라는 모임이 있다. 개발자 4명과 디자이너 1명(나)으로 이루어진 모임이다. 우리는 2018년 해커톤-2박 3일 안에 구동되는 서비스 하나를 만들어야 한다-에서 처음 만나 팀으로 결성됐다. 백엔드 개발자 2명과 프론트 엔드 개발자 2명 UX/UI 디자이너 1명으로 꾸려진 이 팀 이름은 떡튀순이었다. 팀 이름은 그날 저녁으로 나온 떡볶이, 튀김, 순대를 맛있게 먹다가 정했다. 5명의 조합이 무척 좋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5명 모두 초면이었지만 함께 밤새며 협업하고 먹고 자니 2박 3일 사이에 전우애가 생겼다. 우리 팀은 2등을 수상했고 부상으로 5박 6일 동안 중국으로 해외연수 및 한·중공동 해커톤을 하러 가게 됐다. 중국 해커톤에서도 우리는 같은 팀으로 대회를 치렀다. 대회를 치른 뒤에는 여러 IT 기업들을 방문하여 그 기업들의 일하는 시스템과 중국 IT 트랜드를 공부했다. 명소에 가거나 공연을 보기도 했다. 일주일가량 해외에서 동고동락하니 떡튀순의 전우애는 끈끈한 우애로 한층 더 깊어졌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엔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삶을 살게 됐지만, 간간이 연락을 주고받았다. 매년 한 번씩은 술자리를 가졌다.


2018년 2번의 해커톤과 중국 호텔에서의 조촐한 뒤풀이, 2019년 술자리에서 나는 UX/UI 디자이너라는 직업 정체성을 가지고 4명의 개발자 오빠들과 어울렸다. 개발자들과 술자리를 가져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들끼리 모이면 정말 개발 이야기만 한다. 화성에서 온 개발자 금성에서 온 디자이너라는 말이 있지만, IT라는 큰 교집합이 있었기에 나는 오빠들 사이에서 동떨어지지 않고 말도 잘 섞으며 놀았다. 그리고 UX/UI 디자이너라면 개발자의 생각과 그들의 기술을 어느 정도 알아두는 게 메리트가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오빠들의 대화를 즐겁게 공부하고 암기했다. 적극적으로 경청하다가 아는 게 나오면 "루비(Ruby)? 그거 프로그래밍 언어잖아!" 하며 오빠들 앞에서 자랑스럽게 외쳤고, 오빠들은 오- 하며 감탄해줬다. 오빠들은 나를 개자이너(개발자+디자이너)쯤으로 여기고 아무 거리낌 없이 개발 대화를 이어나갔다.






2020년이 됐다. 나는 UX/UI 디자인을 잠시 접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올 초엔 사람들에게 온라인으로 글을 받아 그 글에 손편지 답장을 써서 보내주는 사업을 했고, 지금은 매일 에세이를 써서 개인 인스타그램과 브런치에 올리고 있다. 디자인할 때보다 만족도와 행복감이 높아 글을 쓰는 일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있다. 일 년 사이에 직업 정체성이 디자이너에서 작가 쪽으로 많이 기울었다. 그런 와중 떡튀순 모임이 잡혔고, 나는 여느 때와 같이 즐거운 마음으로 참석했다.


일 년 만에 만난 오빠들은 개발자로서 자신의 직장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 여유 있는 모습이었다. 그런 오빠들을 새삼 뿌듯하게 바라보다가 문득 '나는 이제 UX/UI 디자이너가 아니고 글을 쓰는 사람이 됐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됐다. 갑자기 오빠들 사이에 있는 게 이질감이 들었다. 더는 어떤 교집합도 찾을 수 없을 거라는 불안함이 나를 지배했다.


술자리 초반에는 오빠들의 근황 및 직장생활을 들으며 어찌어찌 그들과 소통할 수 있었다. 그러다가 잠시 개발 이야기가 나왔고 나는 정신이 아득해짐을 느꼈다. 내가 여기서 무슨 말을 덧붙여야 할지, 어떤 이야기를 하며 그들과 말을 섞어야 할지 생각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개발 이야기는 짧았고 곧이어 나의 근황에 초점이 맞춰졌다. 나는 올해 디자인을 쉬며 손편지 사업을 했고 지금은 에세이를 쓰고 있다고 말을 꺼냈다. 덤덤히 말했지만, 속으론 눈치를 많이 봤다. 분야가 싹 바뀐 나를 보고 오빠들도 내게 이질감을 느끼면 어떡하나 걱정됐다.


걱정은 걱정일 뿐이었다. 오빠들은 내가 쓰는 글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었고, 더 나아가 손편지 사업에 관해 실질적인 사업 방향도 조언해주었다. 왜 글을 써? 왜 디자인 안해? 라고 묻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내가 새로운 분야에 전념하는 것을 충분히 존중해주었다.


내 근황을 들은 뒤로 오빠들은 개발 대화를 할 때 날 위한 배려를 해줬다. 예를 들어, 어떤 새로운 프로그래밍 언어를 이야기할 때, 이 언어는 무엇이고 어떻게 돌아가는지 배경 지식을 먼저 설명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예전에 날 상관하지 않고 개발 이야기를 팍팍 하던 오빠들의 모습이 그립고, 한편으로는 배려해주는 그 모습이 안쓰러워(?) 나 신경 쓰지 말고 그냥 편하게 이야기하라고 말해줬다. 내가 정말 괜찮다고 믿은 건지 오빠들은 개발, 심지어 주식 투자 이야기까지 술술 해나갔다. 글 쓰는 일과는 크게 관련 없는 이야기지만 경청했다. 고개는 끄덕이지 못했지만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눈을 바라봤다. 간혹 마음속으로 뜻을 유추해서 때려 맞출 수 없는 단어나 이야기가 나오면 당당히 물어봤다. 그들은 내가 같은 분야가 아님을 알기에, 같은 분야가 아니면서도 자신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모르는 걸 물어볼 만큼 관심을 가진다는 걸 알기에 귀찮아하지 않고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설명해주었다.






내 분야와는 먼 사람들의 이야기를 열린 마음으로 집중해서 들어도 그들이 하는 말은 대부분 이해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사람들, 그리고 그들과 보내는 시간을 소중히 여긴다면 그 너머에 있는 걸 발견할 수 있다. 일을 대하는 개발자의 자세, 개발자만의 사고 회로, 개발자의 화법 속 논리 구조 등 그 직업을 가진 사람만의 '것'을 발견하게 된다. 그건 글 쓰는 내가 가진 것과는 전혀 달라 신선하고 생생하다. 발견한 것들을 모두 주섬주섬 주머니 속에 담았다. 그걸 뚱뚱하게 안고 내 공간으로 돌아와 좋은 건 내 것으로 만들고 너무 달라서 생소한 건 생소한 채로 보관해둬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중에 그 생소한 것을 꺼내서 유용하게 쓸 일이 올 수 있을 테니까.


나와는 다른 직업을 가진 사람들 속에 혼자 남겨졌다면, 이해할 수 없는 대화 속에서 괴로워할 것이 아니라, 집에 돌아와 시간만 허비했다며 허무해할 게 아니라, 그들이 직업을 대하는 태도나 자세 또는 사고 회로를 찾아내어 얻어가면 된다. 같은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보다 오히려 더 많은 것들을 얻어가는 유익한 경험일 수 있다. 낯선 나라에서 다소 수월하지 않은 경험으로 오히려 사고의 폭과 시야가 넓어지는 배낭여행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물리적인 공간의 이동만이 여행이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는 것도 일종의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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