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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퍼피 Nov 09. 2020

수족냉증을 오래 앓았으면 좋겠다.



수족냉증이 유난히 심한 편이다. 더운 여름에는 손이 시원해서 나름 괜찮은데 가을, 겨울이 문제다. 난방을 켠 방 안에 있어도 냉동고에서 금방 꺼낸 것 마냥 손이 냉랭하다. 손을 손등, 손가락, 손바닥 세 가지로 분류했을 때 상대적으로 손바닥이 아주 아주 약간 더 온도가 높다. 그래서 가끔 길을 걷다가 한쪽 손바닥으로 다른 손을 감싸 쥐면 엄청난 차가움에 깜짝 놀라기도 한다. 한겨울엔 손에 감각이 없는 일이 다반사다.


얼마 전, 이틀에 한 번꼴로 가는 집 앞 단골 카페에 갔다. 얼죽아(얼어 죽어도 아이스 아메리카노)파인 나는 매번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시키는데, 이제는 사장님께서 먼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 포장이요?" 하고 묻는다. 그날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네. 대답하고 가만히 서서 커피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다음번에는 달고나 라떼 같은 전혀 다른 장르를 시켜서 사장님을 당황시켜볼까 라는 생각을 골똘히 하고 있을 때 사장님이 내게 다가와 커피를 건네주었다. 사장님 손에 들린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전해 받으면서 사장님 손과 내 손이 잠시 겹쳐졌다가 떼어졌다. 그 순간 갑자기 사장님은 커피를 든 내 손을 자신의 양손으로 포개더니 (여사장님이다) "아니! 손이 이렇게 차가운데 무슨 아이스 아메리카노야!" 하고 쩌렁쩌렁 외쳤다. (여사장님은 넉살이 좋으시다) 사장님에게 혼쭐이 난 나는 아핫핫 멋쩍게 웃으며 상체를 내시처럼 수그리고 카페를 빠져나왔다.


카페에서 나와 바닥에 우수수 떨어져 있는 낙엽들을 바삭바삭 밟으며 집으로 향하는데 기분이 좋았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내 차디찬 손을 두 손으로 꼭 움켜잡았던 사장님 손의 따뜻한 온기와 나를 걱정하는 사장님의 마음에 기분이 좋았다.






이와 비슷한 일은 내게 자주 일어난다. 지인들과 손을 잡거나 스치는 일이 생기면 대부분은 나의 낮은 손 온도에 깜짝 놀라며 나의 손을 다시 한 번 꼭 그러쥔다. 간혹 몇몇은 내 손을 따뜻하게 해준다며 자신의 양 손으로 아주 오랫동안 내 손을 감싸 쥐고 있는다. 그때 전해지는 상대방의 따뜻한 손 온도와 다시 내 손을 감싸 쥐는 스킨십이 좋다. 잔뜩 내리깔거나 한껏 위로 치솟는 그들의 눈썹을 보는 것 또한 못내 좋다.


내 손의 온도를 피부로 직접 알게 되는 이들의 감정은 깜짝 놀람에서 걱정으로 이어진다. 걱정을 받는 나는 푸근한 품에 기대어 부드러운 손길로 위안을 받는 것처럼 평화로운 기분이 든다. 이건 영화 '벌새'에서 가족들에게 항상 무표정이던 주인공 은희가 수술 날짜를 받은 자신에게 가족들이 반찬을 챙겨주며 걱정해주자 살며시 미소 짓는 것과 같은 기분일지도 모른다.


걱정 받는 마음은 따뜻한 공기 입자로 풍족하게 부푼 상태다. 따뜻한 공기 입자는 걱정 해주는 사람에게서 전해 받는다. 난 이 마음을 될 수 있으면 자주 겪고 싶다. 수족냉증을 오래 앓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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