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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퍼피 Nov 11. 2020

엄마의 죽음 이후로 '엄마'란 단어에 극도로 민감했다.



고등학교 1학년 초여름, 갑작스러운 엄마의 죽음 이후로 몇 년간 '엄마'란 단어에 극도로 민감했다. 학교에서 친구들과 떠들다가 엄마와 관련된 이야기만 나와도 얼굴과 가슴이 뜨거워지면서 정신이 혼미했다. 특히나 고1의 초여름은 엄마의 죽음, 그 슬픔의 구렁텅이에 빠진 지 얼마 되지 않아 한창 헤어 나오지 못할 때였다. 그때 나에게 큰 충격과 공포를 안겨줬던 사건 두 가지가 있었다.






1.

엄마의 장례를 치르고 일주일 만에 학교로 돌아갔다. 반 친구들은 담임 선생님을 통해 나의 비보를 알고 있었다. 교실에 들어섰을 때, 그 누구도 나에게 위로를 해준 아이들은 없었다. 평소와 다름없이 나를 대했다. 사소한 장난을 치고 시시콜콜한 말을 하고 투닥거리기도 하고. 그런 친구들이 너무 고마웠다. 학교로 돌아가기 전날 밤, 친구들이 슬픈 표정을 지으며 위로해준다면 어떻게 반응해야 하나 머리가 아프도록 고민했었다. 하지만 정작 친구들은 나의 슬픔의 구렁텅이에 들어와 함께 슬퍼해 주는 게 아닌, 내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내 손을 잡고 구렁텅이 밖으로 끌어올려 주었다.


며칠 뒤, 쉬는 시간에 친구들 네다섯 명과 모여서 수다를 떨다가 엄마 이야기가 나왔다. "우리 엄마는 이런 식이야." "그래? 우리 엄마는 이런데." 자기 엄마의 요즘을 말하는 대화가 이어졌다. 나는 급격히 말수가 적어졌다. 얼굴이 뜨거워졌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때 한 아이가 내게 물었다.


"너희 엄마는?"


그 말을 듣자마자 누가 뒤통수를 야구 방망이로 때린 듯한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반 친구들 모두가 우리 엄마가 돌아가신 걸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나한테 그런 질문을 하다니. 그 아이는 우리 엄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모르나? 아니면 알고도 사악하게 그런 질문을 했나? 엄청난 혼돈을 느꼈다. 나는 초조하게 눈동자를 굴리며 "우리 엄마는 뭐.." 하며 얼버무렸다.


내게 질문을 한 아이는 나와 성격이 맞지 않았고 친구에게도 선생님에게도 버릇이 없었다. 이런 배경까지 더해지니, 내 사연을 알았든 몰랐든 간에 나는 그 아이를 증오하게 됐다.    






2.

문학 수업 시간이었다. 교과서에서 엄마가 주제인 문학을 공부하게 되었다. 당시 문학 선생님은 교과서 내용을 한 명씩 돌아가며 읽도록 시켰는데, 그 대상이 내가 될까 조마조마했다. 아직 '엄마'란 단어를 읽을 자신이 없었고, 내가 엄마에 관련된 글을 읽으면 반 친구들이 우리 엄마가 돌아가신 사실을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 다행히 나는 그 문학을 읽지 않았지만 안심하기는 일렀다. 지문을 다 읽은 후 선생님이 나에게 질문을 던진 것이다.


"지원이에게 엄마란 어떤 존재니?"


반 안의 분위기가 엄숙해졌다. 나는 얼굴이 새빨개지며 온몸이 뜨거워졌고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다. 머릿속은 정신착란이 일어날 정도로 뱅글뱅글 돌았다. 내 입에서는 "어.. 음.. 아.." 같은 한 음절 따위의 소리밖에 나오지 않았다. 내가 어딘가 고장 난 소리만 내고 있자 문학 선생님은 "아직 생각을 안 해봤구나. 그럼 짝꿍이 얘기해 볼까?" 라며 타깃을 돌렸다. 언제나 발랄하게 발표하던 내 짝꿍은 평소와는 다르게 점잖고 조심스럽게 대답을 했다. 짝꿍의 말투에서 나를 신경 쓰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문학 선생님이 내게 질문을 던진 그 시점 이후로 반 안의 분위기가 착 가라앉으며 친구들의 시선이 흘끗흘끗 내게 꽂히는 것만 같은 느낌에 온몸이 따끔거렸다. 문학 수업이 끝날 동안 나는 어떤 공부도 할 수 없었다.






사실 생각해보자면, "너희 엄마는?" 하고 물었던 아이는 정말 나의 사연을 몰랐던 것일 수도 있고, 문학 시간에는 반 친구들 모두가 나를 전혀 신경 쓰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고등학교 일 학년이었던 그 당시의 나는 몸도 마음도 연하디 연해서 조그마한 바람에도 생채기가 깊게 생기고, 주변 모든 게 다 나를 상처 주는 날카로운 것들로 보였다. 그래서 '엄마'와 관련된 모든 일에 지나치게 민감했던 그때의 나를 이해한다.


엄마가 돌아가신 지 올해로 십 년인 지금은 곧잘 '엄마'라는 단어를 얘기할 수 있다. 남들에게 엄마 이야기를 해도 아무렇지 않고 돌아가신 그 당시를 얘기해도 울지 않는다. 이렇게 된 지 꽤 됐다. 시간이 흐르며 슬픔에 굳은살이 생긴 것이다. 그 슬픔은 꼬집거나 긁어대도 아프지 않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엄마 생각으로 슬프지 않고 한 방울의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오히려 십 년 전, 열일곱 살의 나를 복기하는 일이 더 울컥거리고 마음이 저릿하다.


지금의 내가 그때의 나를 꼭 안아주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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