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번 지나쳤던 꽃집 앞에서 발걸음을 멈췄다. 꽃집 밖에 진열해놓은 꽃과 화분 더미 속에서 두 종류의 꽃이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 두 종류의 꽃 중 하나는 해바라기를 축소해 놓은 듯한 노란 꽃이었고, 다른 하나는 큰 초록 잎을 가진 작은 주황 꽃이었다. 노란 꽃은 다발로 묶여 있었고 주황 꽃은 화분에 심겨 있었다.
저 노란 꽃을 사서 물에 담아 키워볼까. 아니야, 물에 담아두어도 생명만 연장시킬 뿐 결국 시들잖아. 그럼 주황 꽃 화분을 사서 키워볼까. 아니야, 제때 물을 주고 햇빛을 쐬이며 정성을 다해 키워도 결국 내가 죽일 거 같아. 결국 둘 다 죽겠네. 발걸음을 돌렸다.
낙엽비 쏟아지는 가로수 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나보다 먼저 죽음이 예견된 것들을 키우고 싶지 않아. 나는 남아있고 그것들이 형체 없이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아. 나는 왜 이렇게 먼저 죽는 것들을 두려워하게 됐을까. 깊게 생각해보지 않아도 명백히 알 수 있었다. 내가 키웠던 반려동물 찌르 때문이었다.
찌르는 15년을 살다 떠났다. 떠나기 전 1년 동안은 굉장히 아팠고 그때 찌르의 옆에는 나밖에 없었다. 나는 그 1년을 찌르를 위해 살았고, 내 시간과 돈, 내 모든 걸 쏟아부으며 찌르의 생명 연장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1년 동안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전쟁 같은 삶을 찌르뿐만 아니라 나도 함께 살아냈다. 그렇게 나도 기력이 빠져 생명력이 단 일 그램도 없을 때, 찌르도 더는 버틸 힘이 없을 때, 우리는 이별했다. 괴롭고 고통스러운 이별이었다.
이게 벌써 4년 전 일이다. 4년 전 그 일로 인해, 무언가를 키우고자 할 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먼저 들게 된다. 이건 지금 뒤엉켜 살고 있는 두 마리의 고양이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나는 피가 섞이지 않은 나리 언니와 나리 언니 어머니, 나리 언니와 나의 친구 보현 언니 그리고 고양이 두 마리 고리 달리와 함께 살고 있다. 고리 달리의 집사는 나리 언니다.
나리 언니는 집사니까 고리 달리에 대한 사랑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지만, 보현 언니는 집사만큼 어쩌면 집사보다 더 고리 달리를 미치도록 사랑한다. '미치도록' 이 수식어가 적확하다. 집사도 아니면서 고리 달리의 장난감을 사주고 박박 긁는 거 그거 뭐지, 아 스크래쳐, 스크래쳐도 사준다. 고리 달리에게 자주 사랑한다고 말한다. 보현 언니의 인스타그램은 온통 고리와 달리 사진 범벅이다. 언니는 매일 일하다 말고 방 밖으로 나와, 자고 있는 고리 달리를 감상한다. 나름의 휴식 방법인 것 같다. 고리 달리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는 보현 언니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노라면 내가 다 애틋해진다.
나는 고리 달리를 좋아한다. 사랑은 보현 언니가 하는 게 사랑이고. 나는 고리 달리가 너무 귀여워 만지기도 하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는다. 그렇다고 속으로 참는 것도 아니다. 그냥 사랑한다는 말이 나오지 않는다. 단 한 번도 고리 달리를 위해 장난감이나 간식을 사준 적이 없다. 핸드폰으로 고리 달리의 사진을 잘 찍지 않는다.
고리 달리를 보면 내 마음에 어떤 '막'같은 게 생겨 마음을 주는 걸 가로막는다. 그 막 때문에 지금 주는 애정 그 이상의 것을 주지 못한다. 이 역시 찌르의 죽음을 겪어서 생긴 두려움 때문이겠지.
이런 내가 싫거나 안쓰럽지는 않다. 다만 걱정이 된다면 보현 언니다. 나는 먼 훗날 시간이 지나 고리 달리가 자신의 수명을 다했을 때, 고양이별로 떠난다면 물론 슬프겠지만 미칠 정도는 아닐 거다. 하지만 예상하건대 보현 언니는 미칠 정도로 슬퍼할 것이다. 그때의 보현 언니가 걱정된다. 이별할 땐 사랑을 준 만큼 아프니까.
보현 언니는 고리 달리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나는 고리 달리를 한 발자국 떨어져서 좋아한다. 보현 언니의 감정이 더 깊고 진심이다. 그렇다고 누가 이런 나를 나무랄까.
4년 전 찌르의 죽음으로 생긴 상처와 두려움은 여전히 유효해서 내게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고 이걸 극복하거나 치료하려고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자연스레 좋아지겠지라는 생각도 하지 않는다. 지금 가진 상처와 두려움은 그때 내가 정말 찌르를 진심을 다해 사랑했었다는 증표라고 생각하니까.
찌르가 죽은 날. 난 꽤 오래 어쩌면 영원히, 나보다 먼저 죽는 생명을 두려워할 것을 계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