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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퍼피 Nov 13. 2020

에세이를 쓰자. 읽어 줄 사람이 단 한 명뿐일지라도.



나는 왜 내 이야기밖에 못 쓸까?


인스타그램에 에세이를 올리고, 브런치에 다음 날 아침 8시에 업로드할 에세이를 미리 저장해 놓은 후 침대로 향했다. 이불속에 들어가 새우처럼 몸을 웅크리자 위와 같은 생각이 들었다.


일기가 아닌 에세이를 써서 올리겠노라 다짐했는데,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글들이 정말 일기와 다르긴 한 걸까?


진정한 '에세이'를 쓰고 있는지에 관한 의문과 어쩌면 그렇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회의감에 푹 절여져 온몸이 흐물흐물해질 때쯤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여느 때와 같이 에세이를 쓰려고 노트북 앞에 앉았다. 노션(메모 프로그램)을 켜고 키보드에 손을 얹자 어젯밤 나를 고요하게 괴롭혔던 생각이 다시 일었다. 매일 '에세이'를 쓰고 있다고 믿었던 나는 이제껏 일기를 쓴 게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을 품은 채, 글을 쓰기 전 아무것도 몰랐던 순수한 상태로 돌아가 에세이는 무엇인지, 어떻게 써야 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에세이(Essay), 한글말로는 수필.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구애받지 않고 쓰는 글이다. 글에는 본인의 가치관이 담겨있다. 에세이의 종류는 에세이와 미셀러니(miscellany)로 나누는데, 에세이는 대개 지적ㆍ객관적ㆍ논리적 성격이 강하며 소평론이 이에 해당한다. 미셀러니는 감성적ㆍ주관적ㆍ개인적ㆍ정서적 특성을 지니며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사소한 일을 소재로 가볍게 쓴 글이다.


나는 주로 미셀러니를 쓴다. 아니 거의 다 미셀러니다. 어찌 됐든 '에세이'란 걸 쓰고 있는 게 맞긴 맞다. 그런데도 에세이를 쓰는 일에 의문을 가지는 건 왜 그럴까 깊게 고민해보니 두 가지 결론이 나왔다.


첫째. 나는 지적ㆍ객관적ㆍ논리적 에세이를 동경하고 그렇게 쓰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런 수준의 지식과 깜냥이 없으니 미셀러니를 쓰면서 어딘가 부족함과 미숙함을 느낀다.


둘째. 나의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생각이나 느낌을 쓴 글을 사람들이 과연 궁금해할까? 궁금해할 만큼 내 생각과 느낌이 가치가 있을까?라는 자존감 낮은 생각이 은연중에 깔려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내가 쓰고 있는 이 고민을 궁금해해서 여기까지 읽고 있을까?


이러다가 이 글도, 나 자신도 아무런 의미 없이 암울하게 마침표를 찍을 것 같다. 이럴 때 해야 하는 건 주변 사람들이 여태껏 내게 보내줬던 감상평을 다시 꺼내 읽는 일이다. 어두운 심연 속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렇게라도 발버둥을 쳐본다.


"너의 글 다 술술 읽혀. 너무 재밌다. 요새 책을 안 읽고 있었는데 너가 쓴 글 하나씩 읽으면서 자주 읽기 습관을 키우고 있어." -이ㅇㅇ

"언니 글 너무 재미있어. 항상 봐. 나를 돌아보게 돼." -백ㅇㅇ

"맛있는 글이니 눈이 갈 수밖에. 퍼피(나) 볼 때마다 '와 글잘이야'만 나와."-송ㅇㅇ

"지원님 글을 읽고 나면 더 좋은, 개인적인 글을 쓰고 싶고 쓸 수 있게 되네요. 계속 써주세요!"-정ㅇㅇ

"돈 벌게 해주고 싶을 정도로 너무 좋아 너의 글."-한ㅇㅇ

"동생 글 잘 쓴다. 글 되게 잘 읽혀"-언니의 친구 윤ㅇㅇ






보기만 했던 감상평을 직접 내 손으로 타이핑해나가니 흐물거렸던 마음이 조금씩 단단해진다. 아직은 무르지만 그래도 마음을 다잡은 김에 스스로 다짐해본다.


지원, 논리적이고 지적이지 않아도 돼. 너가 그런 글을 쓴다면 그건 아마 너가 아닐 거야.


지원, 너가 브런치 작가 소개란에 적은 말 '매일 에세이를 씁니다. 읽어 줄 사람이 단 한 명뿐일지라도.' 이 말처럼 단 한 명, 그 누군가를 위해 글을 쓰자. 그 누군가는 너의 이야기와 생각을 궁금해하며 읽어주고 있을 테니.


지원, 아는 분이 너에게 말했잖아. 개인적인 걸 쓸 수 있는 게 더 대단한 거라고. 용감한 거라고. 그러니 꿋꿋하게 너만의 글을 써 내려가.






이런 고민이 앞으로도 수십 번은 더 들 테고 수십 번 더 마음을 다잡겠지. 지금처럼 발버둥 쳐 이겨내 보자.


난 오랫동안 글을 쓰고 싶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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