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년을 살았던 나의 강아지 찌르는 생의 마지막 1년을 심장병을 비롯한 각종 질병과 힘겨운 사투를 벌이다 떠났습니다. 그 1년 동안 저는 찌르와 단둘이 살며 혼자 찌르를 돌보고 간호했습니다. 우리 가족은 뿔뿔이 흩어져 각자 살고 있었는데, 그중 아픈 찌르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는 이가 저밖에 없다고 스스로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아빠는 지방에 내려가 일한 지 오래돼서 찌르에게 일말의 애정도 없었고, 언니는 찌르를 실수로 다치게 해놓곤 병원에 데려가 치료받는 일을 저에게 넘겼던 무책임한 모습을 보인 전적이 있었고, 엄마는 가족 중에서 찌르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며 찌르를 그 누구보다 사랑했는데 제가 고등학생 때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런 배경을 곱씹어봤을 때 우리 가족 중 저만이 아픈 찌르에게 헌신할 수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저는 찌르가 투병했던 기간에 대학교를 휴학했고, 찌르의 약값과 입원비를 벌기 위해 사진 스튜디오 디자인 인턴을 시작했습니다. 아침 8시에 찌르에게 심장병 약을 먹인 다음 출근했고, 퇴근한 후에는 곧장 집으로 돌아와 밤 8시에 심장병 약을 다시 한 번 먹였습니다. 심장병 약은 찌르가 죽을 때까지 평생 먹어야 하는 약입니다. 심지어 하루에 2번, 시간을 딱딱 맞춰 먹어야 합니다. 그러니 저녁 7시에 퇴근을 하면 다른 곳으로 샐 틈 없이 집으로 가서 저녁 약을 먹여야 했습니다. 다른 곳으로 샐 마음은 감히 하지도 않았고 그런 마음이 전혀 일지도 않았습니다. 제 삶은 온통 찌르뿐이었습니다.
날이 갈수록 찌르는 야위어 갔습니다. 사료는 물론이고 삶은 닭가슴살, 호박, 고구마, 황태 등 여러 영양식을 잘게 부숴줘도 잘 먹지 않았습니다. 당시 찌르의 몸무게는 1.9kg이었습니다. 참고로 아주 작은 치와와의 몸무게가 2~3kg 사이입니다. 찌르를 안아 들 때면 별다른 힘을 주지 않아도 들려지는 허무한 무게감에 종종 울었습니다. 폐부종이 있던 찌르는 심하게 흥분하면 기절하곤 했는데, 기절하는 횟수도 잦아졌습니다. 이전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이었다면 점점 삼일에 한 번씩 기절하는 상태가 됐습니다.
그렇게 저도 찌르도 너덜거리는 심신으로 늦봄을 지나고 있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여느 때처럼 아침 8시 정각에 찌르에게 약을 먹인 후 생기 없는 마음으로 출근 준비를 해나갔습니다. 등을 말고 누워있는 찌르를 한 번 살피고 몸을 돌려 집을 나서려는 그때, '오늘 찌르가 죽을 것 같다'는 직감이 제 두 발을 덥석 붙잡았습니다. 퇴근을 하고 집에 오면 찌르가 집에서 혼자 죽어있을 것 같았습니다. 난생처음 느낀 강렬한 직감에 곧바로 스튜디오 실장님에게 전화를 걸어 사정을 설명하고 오늘은 찌르 옆에 있어줘야 할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실장님은 제 뜻을 이해해주었습니다.
신발을 벗은 뒤 가방을 내려놓고 찌르가 누워있는 매트리스로 가 벽에 등을 기대고 앉았습니다. 앉자마자 너무도 선명한 직감이 두려워 엉엉 울었습니다. 울다 지친 후엔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찌르의 등을 보며 생사를 확인했습니다. 단 한 순간도 찌르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슬픔도, 불안도 오랜 시간 지속되면 되려 마음이 안정되는(혹은 안정됐다고 믿는) 순간이 옵니다. 꼼짝없이 찌르만 응시하고 있는 시간이 6시간을 넘겼을 때, 그 기이한 순간이 찾아왔습니다. 빠르고 거세게 뛰던 심장 소리와 온갖 부정적인 생각들로 소란스럽던 머릿속이 순식간에 조용해졌습니다. 집안을 가득 채운 무거운 적막을 알아차렸습니다. 적막을 인지하니 허공 속을 부유하는 작은 먼지 입자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찌르에게 꽂혀서 움직일 줄 몰랐던 저의 시선이 집안 이곳저곳을 둘러보기 시작했습니다. 부엌을 봤다가, 책상을 봤다가, 행거를 봤다가, 낮은 책장을 보았습니다. 책장에는 그리 많지 않은 책들이 꽂혀 있었습니다. 책등에 적힌 제목을 한 권 한 권 눈으로 읽어내려갔습니다. 그러다 덜컹, 갑작스럽게 브레이크를 밟은 듯 저의 시선을 멈추게 한 책 제목이 있었습니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낮은 책장으로 엉금엉금 기어가 그 책을 빼냈습니다. 빼낸 책을 들고 엉금엉금 기어 원래 앉아있던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양 무릎을 세우고 경사진 허벅지에 책을 올렸습니다. 단번에 알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은 제가 산 책이 아니라 엄마 책이라는 걸요. 가족이 함께 살던 집에서 가지고 나왔던 엄마 책들 가운데 하나라는 걸요. 책의 표지를 천천히 열었습니다. 백지인 첫 장 오른쪽 귀퉁이엔 짧은 메시지가 펜으로 적혀있었습니다.
'좀 더 강한 여성이 되길. 누구보다 내 자신에게. 이 책을 읽고 나는 그런 걸 느꼈습니다. 당신은...'
- 99.7.29 은채
1999년, 은채라는 성함을 가진 분이 엄마에게 선물해준 책이었습니다. 은채라는 분이 엄마와 어떤 사이였는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도 서로 알고 지냈는지, 이 책을 선물 받았던 엄마의 과거를 잠시 가늠해보다가 이내 본격적으로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참 이상한 일이었습니다. 책을 읽는 내내 마음에서 알 수 없는 단단함이 느껴졌습니다. 그러니까 이전까지는 마음속 매듭이 헐렁해서 금방이라도 해체될 모양이었다면 책을 읽는 동안은 매듭이 꽉 묶이는 기분이었습니다. 책을 읽지 않으면 매듭이 약해져서 풀어질 것 같다는 생각에 더더욱 필사적으로, 집중해서, 누렇게 바란 종이 속 글자를 눈에 넣었습니다.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니 창밖은 푸르스름한 저녁이 되어있었습니다. 책을 잠시 옆으로 치워두고 찌르를 보았습니다. 찌르의 등은 여전히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안정됐습니다. 그 안정의 출처는 찌르 등의 움직임이 아닌 책인 것 같았습니다. 내내 빈속이었던 저는 자리에서 일어나 밥을 만들어 먹었습니다. 밤 8시가 됐을 땐 평소처럼 찌르에게 약을 먹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스튜디오 출근을 위해 일찍 잠을 청했습니다. 그 날 찌르는 죽지 않았습니다.
론 마라스코와 브라이언 셔프가 쓴 책 『슬픔의 위안』에서는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슬픔에 빠진 사람은 흔히 독서에 심취한다. 갑자기 책이 읽고 싶어지는데, 특히 슬픔과 관련된 글을 읽고 싶은 원초적일 정도로 엄청난 열망을 품게 된다. 책은 말 그대로, 매달릴 만한 대상인 것이다."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찌르가 죽을 것이라는 직감을 느낀 그 날, 이전에는 하지 않던 독서에 갑작스레 심취했으니까요. 하지만 슬픔과 관련된 글을 읽고 싶은 열망은 없었습니다. 그저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책 제목 그 단 한 문장을 보자마자 어떤 용기를 얻었기에, 갓 태어난 사슴처럼 연약하고 허정거렸던 저에게 '무소의 뿔'은 미치도록 되고 싶은 이상형이었기에 책을 집어 들고 읽어내려간 거였습니다. 책의 마지막 문장까지 읽었지만 무슨 내용인지 잘 몰랐습니다. 실질상 저는 내용 이해를 목적으로 읽은 게 아니었고, '일단 책에 있는 모든 활자를 읽어야 내가 무소의 뿔이 된다'는 생각이 들어 읽는 행위만 한 거였습니다. 내용이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그 책을 읽은 후로, 정확히는 그 '책 제목'을 읽은 후로 어렴풋한 용기가 생겼습니다. 무소의 뿔만큼은 아니지만 마음도 단단해졌습니다. 저는 다음날부터 찌르의 죽음을 차분히 준비해나갔습니다. 아픈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터넷 카페에 가입해 [서울 근처에 믿을만한 장례식장 알려주세요]라는 제목으로 글도 쓰고, **반려석 가격도 알아보았습니다. 마음 한구석에 찌르의 죽음을 받아들일 공간도 만들어놓았습니다.
그렇게 한 달이 흘렀습니다. 본격적으로 무더위가 시작되기 전, 찌르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름 죽음을 준비했지만 찌르가 숨을 멎던 순간엔 마음이 찢어지듯 고통스러웠고 잠그는 걸 깜빡한 수도꼭지처럼 눈물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온전히 무너져 내린 건 그날뿐이었습니다. 다음날부터는 바로 스튜디오에 출근해서 평소처럼 일했고, 퇴근한 후엔 집 근처 피트니스 센터로 가 스피닝 수업을 등록했습니다. 찌르가 없으니 갑자기 생겨난 자유시간에는 책을 읽기 시작했습니다.(이 시점이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던 제가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시작한 때입니다) 한 주 뒤엔 휴가를 내서 제주도로 여행을 갔고, 동물병원 원장 선생님께 그동안 감사했다는 마음을 전하고자 케이크를 사 들고 찌르가 숨을 거뒀던 동물병원으로 직접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꿋꿋이 찌르가 없는 삶을 살아내는 동안 제 마음속에는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라는 문장이 문신처럼 항상 함께였습니다. 문신은 책을 덥석 집었던 그때 새겨졌습니다.
4년 반이 흐른 지금도 그 문신은 지워지지 않고 마음속에 새겨져 있습니다. 감히 단언할 수 있는 이유는, 여전히 이 책등만 봐도 용기를 가지게 된 그때가 생생히 떠오르고, 여전히 책 제목을 읽을 때마다 어떤 용기가 솟아나기 때문입니다. 또 여전한 건, 아직도 이 책의 내용을 모른다는 겁니다. 내용 이해를 목적으로 한 번 더 읽어야겠다는 욕구가 아무래도 생기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내용을 몰라도 이 책은 저에게 충분히 완벽하고 소중한 책입니다. 오직 책 제목 만으로요.
생각합니다. 저 또한 누군가가 제목을 보기만 해도 용기를 얻을 수 있는 글을 쓰기를. 내용은 읽히지 않아도 좋으니 제목만으로도 누군가에게 삶을 지탱할 수 있는 힘을 주기를.
언젠가 당신이 그런 저의 글을 마주할 수 있기를.
*90년대 후반 우리나라 여성들의 혼란과 고통을 그리고 있는 공지영 작가의 소설.
**화장하고 남은 반려동물의 유골을 압축해 만드는 여러 개의 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