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by 김퍼피

저는 어느 날 아침 달콤한 꿈에서 깨어났을 때, 저 자신이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고양이로 변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어찌 된 일이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꿈은 아니었습니다. 정면으로 보이는 삼나무 책장과 책장의 오른쪽 벽면에는 꽃무늬 커튼, 왼편엔 큰 옷장과 작은 책상. 분명 제 방이 맞았습니다. 침대를 폴짝 뛰어 내려와 거울 앞에 섰습니다. 거울 속에는 황치즈색 단모에 호박색 눈을 가진 고양이가 있었습니다. 그때 방문 밖에서 같이 사는 N 언니와 B 언니의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지원아, 얼른 나와. 이불 빨래 하러 가야지."



저는 대답했습니다. 잠깐만! 지금은 나갈 수가 없어!



"야옹"



이런, 목소리조차 변했습니다. 한참 동안 대답이 없자 언니들은 제 방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고양이로 변해버린 제 모습을 보고 크게 놀라더니 이내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을 지으며 놀라움을 거뒀습니다.



"글쓰기 싫어서 고양이가 되고 싶다고 하더니 정말 고양이로 변했네."

"그럼 우리만 갔다 올게."



언니들은 제 방문을 조금 열어두고 집을 나갔습니다. 저는 긴 생각에 빠졌습니다. 맞아, 나는 어젯밤 난생처음으로 글쓰기 싫어져서 언니들에게 넋두리했었지. 넋두리할 때 마침 우리 집에서 함께 살고 있는 고양이 두 마리, 고리와 달리가 바닥에 퍼져 자고 있는 모습이 보여 차라리 글을 쓰지 않는 고양이가 되고 싶다고 했었는데. 정말 고양이로 변해버릴 줄이야. 그렇다면.. 이제 글을 쓰지 않아도 되잖아? 하늘을 나는 듯이 후련하고 기쁘다! 고양이의 여유롭고 평화로운 삶을 충분히 만끽해야겠어.


생각을 마친 저는 앞발을 쭉 늘리고 엉덩이는 위로 치솟는 고양이식 기지개를 켰습니다. 방문이 조금 열린 틈 사이를 유연하게 빠져나와 거실로 나갔습니다. 사람일 때는 걸어 다닐 때마다 터벅터벅 성가신 발걸음 소리가 들렸는데 고양이가 되니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조용하고 은밀한 게 퍽 마음에 들었습니다. 거실 한 가운데엔 달리가 가만히 앉아서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달리에게 다가갔습니다. 달리는 가까이 다가온 저를 보고 앉았던 몸을 일으켜 잠시 뒷걸음질 치더니 멀찍이 떨어져 제 주변을 한 바퀴 돌았습니다. 저의 신원을 파악하는듯해 보였습니다. 달리는 안전하다는 판단이 들었는지 슬그머니 다가와 제 코에 자신의 코를 잠깐 맞대었습니다. 차갑고 촉촉한 감촉이 전해졌습니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습니다. 달리가 저에게 인사를 한 거라는 걸요.


언니들이 이불 빨래를 하고 돌아왔습니다. 그사이 저는 고리와도 인사를 나눴고 소파에서 에어컨 위까지 높게 점프하는 법도 익혔습니다. 이불 정리를 마친 나리 언니가 저에게 사료를 주었습니다. 자극적인 사람 음식에서 벗어나 담백하고 소화도 잘되는 사료는 제 입맛에 딱 맞았지요. 보현 언니는 기다란 낚싯대 장난감으로 저를 놀아줬습니다. 너무 재밌어서 앞구르기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릅니다. 놀다가 지치면 그 자리에 벌러덩 드러누워서 잠을 잤습니다. 푹 자고 일어나니 기분이 좋아져 집안 곳곳에 세워져 있는 스크래쳐에 올라타 발톱을 세우고 박박 긁었습니다. 스크래쳐에서 떨어져나온 잔해물이 바닥을 더럽혔습니다.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언니들이 청소해줄 테니까요. 저녁이 됐을 땐, 베란다로 나가 달리와 함께 바깥 구경을 했습니다. 퇴근하는 사람들이 집으로 돌아오고 있습니다. 평균 주 5일 노동하는 저들과 이제는 일하지 않아도 되는, 그러니까 글을 쓰지 않아도 되는 저의 처지를 비교하며 묘한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한 달이 흘렀습니다. 저는 더욱 고양이다워졌습니다. 하루 대부분 잠을 자고 일어나면 밥을 먹고 집안을 어슬렁거리거나 우다다 뛰어다닙니다. 이 모든 게 다 만족스러운데, 한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생각 역시도 고양이화가 진행되어 점점 단편적인 생각만 하게 된다는 겁니다. 이 현상은 언어 구사 능력을 퇴화시켰습니다. 그러니까 사람일 적엔 기쁜 감정을 '하늘을 나는 듯하다.', '머릿속에 폭죽이 팡팡 터졌다.', '콧노래가 저절로 나왔다.' 등 여러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었다면, 지금은 뭐든지 '좋다.' 이 한 가지 표현으로 귀결됩니다. 수백 수천 가지의 세밀한 감정을 언어로 자유롭게 구사하여 풍부한 글을 쓰는 것이 저의 유일한 능력이었는데, 이 능력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걸 인지하자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글이 쓰기 싫어서 고양이가 됐는데, 신체도 정신도 점점 글을 쓸 수 없게 되어 가니까 두려움이 들며 잔뜩 혼란스러웠습니다. 이 감정을 느낀 후로 무기력해져 한동안 잠만 잤습니다. 사료 또한 잘 먹지 않아 언니들이 고양이용 스틱 간식을 주었지만 그 역시도 얼마 먹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새벽, 화장실에 가기 위해 느릿느릿 거실로 나왔습니다. 거실 한복판에는 한 영혼이 허공에 둥둥 떠 있었습니다. 어떤 설화에서 고양이는 영혼을 본다고 했는데 그것이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휘둥그레한 눈으로 영혼을 쳐다보았습니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였습니다. 좋아하는 시인을 만나니 기분이 좋았습니다. 저는 하늘이 희붐해질 때까지 릴케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주로 제 이야기를 했지요. 사람일 적 글을 썼던 이야기와 고양이로 변신한 이야기, 그리고 지금 유일한 능력이 상실되어가서 우울한 마음 이야기까지. 릴케는 저와 눈을 맞추고 고개를 끄덕이며 친절하게 경청해주었습니다. 중간중간 잘 듣고 있다는 추임새도 넣어주었죠. 릴케는 떠나면서 제게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친애하는 고양이 지원 씨, 내가 당신께 드리고 싶은 충고는 바로 이것입니다. 당신의 내면으로 파고 들어가 당신의 삶의 샘물이 솟아나는 그 깊은 곳을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그 원천에 도달하여 당신은 당신이 꼭 창작을 해야 하는지의 물음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에 대한 답이 나오면 더 이상 그것을 캐묻지 말고 거기서 들려오는 대로 그대로 받아들이십시오."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pp.16-17)



저는 릴케의 영혼이 사라지는 것을 보며 화장실을 가는 것도 잊은 채 그 자리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일어나보니 정오가 한참 지나있습니다. 집에는 아무도 없고 고리와 달리만이 제 옆에서 푸근한 낮잠에 빠져 있습니다. 저는 그 고요한 시간을 이용해 릴케가 조언했던 것처럼 나의 내면에 파고 들어가 삶의 샘물이 솟아나는 곳을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고양이화가 상당히 진행되었는지 내면을 들여다보는 일이 무척이나 어려웠지만 -우선, 자아 개념이 흐릿해져가서 스스로를 '나 자신'으로 인식하는 게 쉽지 않았고, 이처럼 자아 개념이 흐릿해지니 정신을 내면으로 집중하는 일 역시도 감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몇 시간을 같은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내면을 들여다보았고 결국 삶의 샘물이 솟아나는 원천을 찾아내었습니다. 그건 모순적이지만 어쩌면 너무도 당연하게도 '창작' 즉, '글쓰기'였습니다. 삶을 싫증나게 했던 요인이 동시에 진정한 삶을 살게 해주는 핵심 요소였던 거지요. 저는 꼭 창작을 해야 하는 존재임을 깨달았습니다. 창작하지 않으면 지금처럼 시들시들해져 결국은 앓아 죽을 것입니다. 결단이 섰습니다. 나는 다시 글을 써야겠다. 글 쓰는 사람의 삶이 지독히도 괴롭고 지루하고 매 순간 창작의 고통과 싸워 지쳐 나가떨어져도 나는 다시 글을 써야겠다.


프란츠 카프카의 책 『변신』 속 주인공 그레고르도 저처럼 하루아침에 사람에서 벌레로 변신합니다. 그는 결국 죽음을 맞이합니다만 저는 죽기 싫습니다. 필사적으로 사람이 돼서 글을 써야만 합니다. 그러나 어떻게 사람으로 돌아가야 할지 저는 모릅니다. 가슴이 벌렁거립니다. 하지만 침착해야 합니다. 사람일 적에 창작하던 방법을 잊지 않도록 궁리하는 게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궁리하며 지금이라도 고양이화를 늦춰야 합니다.


저는 머릿속으로 앞으로 써 내려갈 글감들을 겨우겨우 그려내고 있습니다. 눈을 감고 한 편의 글을 완성시킬 주제를 정해 구조를 짜고 첫 문장을 쥐어짜고 있습니다. 계속 이렇게 머릿속으로라도 창작 훈련을 하다 보면 어느 날 사람이 됐을 때, 제 유일하고 소중한 능력을 상실할 일이 없을 겁니다.


저는 사람이 됐을 때 가장 먼저 지금의 이야기, 고양이로 변신해서 살아갔던 이야기를 적을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공개할 것입니다. 그 기쁨의 날이 하루빨리 도래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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