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햇살, 나에게도 비춰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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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많이 하다 보니 노하우가 생겼다. 아무리 말수가 적은 사람이라도 무한 칭찬을 하면 그는 계속해서 자기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어느새 칭찬은 내 화법의 하나가 됐다. 거짓은 아니고, 대체로 남이 하는 일이 다 훌륭하고 대단해 보여 한 말이지만 가끔은 그의 업적을 기사로 옮기는 일이 피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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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 일도 아닌데 유난히 징징대는 친구가 있었다. 때마다 위로를, 위안을, 용기를 골고루 주었다. 괜찮아, 별 거 아니야, 너 원래 잘하잖아. 역시 그렇겠지?
친구는 따뜻하게 돌아가고 나는 어두워진 길을 걸어 집으로 갔다.
3
그리고 어느 날, 오랫동안 그늘을 걷는 기분에 사로잡혔다. 칼바람이 부는데 저 앞에 보이는 양지에, 걸어도 걸어도 닿질 않는 기분. 나무 한 그루 없는 길에 벽은 너무 높고 우회할 골목도 없고 옆은 4차선 도로. 해가 편애하느라 오래 머물러 있는 밝은 길이 있는데 나는 에스컬레이터를 거꾸로 탄 사람처럼 제자리를 걷고 걷고 또 걷는다. 햇살은 공짜라며, 바람도, 별도 다 공짜라며. 왜 나한테는 공짜로 안주는데.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울컥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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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었지?' 이런 생각이 들자, 나는 따뜻함을 느꼈다. 다른 사람에게는 그토록 관대했으면서, 남은 상냥하게 추켜세우고 보듬어주었으면서 어떻게 나 자신은 호시탐탐 냉기 가득한 그늘로 밀어부쳤을까.
그 날 밤, 노트북을 켜고 곧바로 나에게 팬레터를 썼다.
김추추 작가님, 당신이 이렇게 꾸준하고 건강하게 글쓰기를 하고 있어서 정말 대견합니다.
갈 길이 멀다고 지치지 말아요. 경험은 그 자체로 성공의 한 형태니까요*.
당신을 믿고 응원합니다. .
나는 스스로에게 햇살을 비춰주었다.
* 에마 세팔라 <해피니스 트랙>의 한 구절
글 : 김추추 (writer0511@gmail.com)
글, 그림 : 김표고(인스타그램 : @kimpyogo)
<프로젝트 소개>
자주 떠오르는, 매주 한 단어
일상의 지문들
김표고 X 김추추
“오늘 하루는 어땠어요?”
그 대답이 될 만한 단어들을 생각해 봤습니다. 참 평범한 것 같은 일상인데 이 단어를 적다 보니 각자의 일상은 꼭 그 사람만의 지문이 되었습니다. 떠올려보세요. 당신에게도 소중할, 이 아름다운 단어들을.
'기타 등등의 연애' 저자이자 매일 3시간씩 그림을 그리는 (징그럽게 성실한) 김표고와, 매거진 에디터로 12년을 일하다가 지금은 좀 더 다양한 글을 쓰(고 혼자 읽)는 김추추가 함께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