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의 지문들 #6 <속눈썹>

by 김표고


<김추추의 이야기>


남의 눈에는 너무 잘 보이는데, 자기만 모르는 건 이 사이에 낀 고춧가루만이 아니다. 속눈썹이 그렇다.

그 생각을 처음 할 무렵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했다. 아버지는 몇 달 새 눈에 띄게 수척해졌고 주량이 확 줄었고 덥지도 않은데 땀을 많이 흘렸다.

“어디 아파?”
“아니, 똑같아.”

얼마 후 아버지는 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우리 눈엔 다 보이는데 자신만 몰랐다.

아버지는 금세 다리를 못 쓰게 됐다. 암이 척추를 타고 하반신을 마비시켰다. 우리는 병원 휴게실에 앉아 티비에 시선을 꽂아 놓고는 서로 말을 아꼈다. 언제 헤어질지 모를 사람과 한 공간에 앉아서, 나는 위로를 해야 할 지 호기를 부려야 할 지 알 수 없었다. 아버지는 의사와의 면담을 일체 거부하고 나를 통해서만 자신의 상태를 진단받고 싶어했다.

“뭐 엄청 심한 건 아니래지?”

나는 잠시라도 내가 철저한 포커페이스이길 바랐다. 무심하고 덤덤하게, ‘어쩔, 오늘 약속 취소됐대’ 정도의 소식을 전하는 얼굴이고 싶었다.

그때 아버지 얼굴에 속눈썹 하나가 붙어있었다. 나는 손을 뻗어 그 속눈썹을 떼 주었다. 아버지는 내 손을 잡았다. 우리는 말없이 손을 잡고 있었다. 너무 두툼해서 도무지 맞는 장갑이 없다는 그 손이, 시장에서 엄마 잃을까 두려운 어린아이처럼 내 손을 꽉 붙잡았다.

“그까짓 거 뭐. 별 거 아니래.”

아버지는 역시 그럴 줄 알았어, 의사 새끼들 하여간, 너스레를 떨며 웃었다. 지금까지 내가 한 거짓말 중 가장 잘한 것이었다.


글 : 김추추(writer0511@gmail.com)






<김표고의 이야기>








































글, 그림 : 인스타그램(@kimpyogo) / 메일(kimpyogo@naver.com)



<프로젝트 소개>

자주 떠오르는, 매주 한 단어
일상의 지문들
김표고 X 김추추

“오늘 하루는 어땠어요?”
그 대답이 될 만한 단어들을 생각해 봤습니다. 참 평범한 것 같은 일상인데 이 단어를 적다 보니 각자의 일상은 꼭 그 사람만의 지문이 되었습니다. 떠올려보세요. 당신에게도 소중할, 이 아름다운 단어들을.

'기타 등등의 연애' 저자이자 매일 3시간씩 그림을 그리는 (징그럽게 성실한) 김표고와, 매거진 에디터로 12년을 일하다가 지금은 좀 더 다양한 글을 쓰(고 혼자 읽)는 김추추가 함께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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