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물 셋이었다. 당시 2년 전 헤어진 남자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우리는 오해로 홧김에 헤어졌고 스물 한 살답게 자존심 부리며 죽어도 너 안 본다 콧물까지 질질 짜며 헤어졌다. 그리고 2년 후, 그가 제대하고 연락을 했다. 여전히 니가 그립다고 했다.
나는 당시 논문을 쓰느라 인간의 꼴이 아니었다. 밤을 자주 새서 그런지 턱과 코 밑에 여드름이 덕지덕지 피어 있었다. 눈에는 다래끼가 난 지 좀 됐다. 이 상태로 만난다면 누구라도, 나와 헤어지길 너무 잘했다고 덩실덩실 춤을 출 지 몰랐다.
그는 학교에서도 알아주던 패셔니스타였다. 나는 항상 그의 멋스러움을 따라가지 못하는 자신을 혼쭐내고 싶었다. 고로 2년만에 재회하는 나는 한층 성숙하고 멋스러워야 한다. 지적이고 세련된 모습이 아닐 바에야 안 만나는 게 낫지 않은가! 그러나 결심과 달리 나는 그의 제안을 거절하지 못했다. 실은 무지 보고 싶었다. 친구들과 머리를 맞대고 소주방에 앉아 몇 시간을 고민했다. 셋 중 둘이 결사반대를 외쳤다.
'솔직히 너 지금 고3 때보다 더 못생겼어.'
인생에서 가장 별로라는 말의 동의어거늘. 그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나는 마지막 희망을 붙들고 미용실에 갔다. 비싼 미용실의 언니는 아사모사 지적인 느낌의 깔롱을 부려서 나를 어떻게든 인간답게 만들어줄 거라 믿었다.
가난한 대학생 신분으로 없는 돈에 압구정 미용실에 가서 커트를 했다. 그런데 미용사는 그 날 첫 데뷔전을 치른 것일까. 굉장한 퍼포먼스형 가위질이 내 뒷머리에서 춤을 추었고, 나는 정확히 '언밸런스 세미 단발컷'이라는 *같은 이름으로 포장된 서비스(=실험)를 받았는데, 그냥 간단히 말하자면 가위 들고 쫓아오는 엄마한테 붙잡혀 머리채 한 쪽만 잘리고 탈출한 꼴이었다. (물론 패완얼 헤완얼이다.)
나는 아직 여린 스물 셋이라서, 블루블랙 숏컷에 자주색 립스틱을 바른 미용실 언니에게 대적하지 못했다. 감사합니다… 하고는 어마어마한 커트비를 지불하고 호구처럼 터덜터덜 미용실을 나왔다.
대신, 압구정 패션골목을 돌고 돌아 벙거지 모자와 초대형 목도리를 하나 샀다.
그리고 약속 전 날 밤, 옷장에 모든 옷을 꺼내서 백 번 정도 걸쳐본 후, 다음 날 저녁 7시, 의기양양하게 대학로 천년동안도 앞으로 나갔다. 그는 저 멀리서 누가 봐도 세련된 복장으로 걸어왔다. 갓 제대한 주제에 절제된 멋스러움이 풍겼다. 그럴수록 나는 작아졌다.
2년만에 재회한 옛사랑은, 나를 보자마자 고맙게도 젊음의 거리 한복판에서 박장대소를 해주었다.
그의 첫 마디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스스로를 감금한 패션이야?'
헤어질 때쯤 그는 왜인지 모르지만 갑자기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꺼냈고, 고집 부려 사진을 찍었다.
나는 그 사진을 사수한 후 지구상에 그 누구도 볼 수 없도록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다. 너무 잘 넣어둔 덕분에 얼마 전, 그러니까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흐른 후, 이사하면서 그 사진을 생눈으로 감상하고는 찢어발겨버리고 싶은 추억과 대면했다.
그리하여 지금까지 정확히 기억하는 그 날의 내 꼴,
-머리를 가리기 위한 갈색 벙거지 (사이즈가 커서 걷는 동안 계속 머리에서 뱅글뱅글 돌았다)
-턱드름을 가리기 위한 거대한 목도리 ( 3바퀴 정도 돌려도 허리까지 내려오는)
-다래끼를 가리기 위한 옅은 오렌지 컬러가 코팅된 안경 (미사리 포크 가수도 안 쓸, 한겨울 캄캄한 저녁 7시에 감행한 도른 짓)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그 뒤로 나는 액세서리를 일체 끊었다. 손대면 과해질까 못하겠다.
그래도, 흑역사도 역사라고, 꺼내고 보니 나름 빛나는 듯한 느낌은 기분 탓인가.
글 : 김추추(writer0511@gmail.com)
글, 그림 : 김표고 <인스타그램(@kimpyogo) / 메일(kimpyogo@naver.com)>
<프로젝트 소개>
자주 떠오르는, 매주 한 단어
일상의 지문들
김표고 X 김추추
“오늘 하루는 어땠어요?”
그 대답이 될 만한 단어들을 생각해 봤습니다. 참 평범한 것 같은 일상인데 이 단어를 적다 보니 각자의 일상은 꼭 그 사람만의 지문이 되었습니다. 떠올려보세요. 당신에게도 소중할, 이 아름다운 단어들을.
'기타 등등의 연애' 저자이자 매일 3시간씩 그림을 그리는 (징그럽게 성실한) 김표고와, 매거진 에디터로 12년을 일하다가 지금은 좀 더 다양한 글을 쓰(고 혼자 읽)는 김추추가 함께 만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