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는 여전히 안전자산인가?
오늘은 최근 나타나고 있는 엔저 현상 얘기해주신다고요?
네 요즘 금융시장에서 엔저 그러니까 엔화 약세가 좀 이슈가 되고 있습니다.
물론 달러가 강세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다른 통화들이 대부분 약세를 보이긴 합니다만 유독 엔화의 약세가 두드러집니다.
엔화는 달러와 함께 안전자산으로 분류돼 글로벌 경기가 불안한 상황에 강세를 보이는 게 일반적이거든요.
하지만 이번에는 방향도 반대이고 그 폭도 좀 커서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날까? 금융시장에서 나름의 해석들을 내놓고 있습니다.
엔화 약세가 어느 정도 길래 이런 얘기들이 나오나요?
오늘 달러엔 환율이 1달러에 122엔 정돕니다. 지난달 28일엔 장중 1달러에 125엔까지 오르기도 했습니다.
2015년 8월 이후 최고치입니다. 달러엔 환율이 오른다는 건 엔화의 가치가 그만큼 떨어졌다는 거니. 5년래 엔화 가치가 가장 낮아졌다는 얘기가 되죠.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달러엔 환율이 1 대 115엔 정도였고 엔화 강세가 두드러졌던 2020년 말에는 1대 103엔까지도 간 적이 있었죠. 물론 10년 전쯤엔 더 강해서 80엔 정도였던 때도 있습니다.
원화 대비해서도 엔화는 약세를 보이면서 며칠 전까지만 해도 100엔을 사려면 1060원을 줘야 하던 게 최근엔 996원만 내면 됩니다. 엔화가 정말 강세일 때는 1400원을 줘야 하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원 엔 환율 역시 2018년 12월 이후 3년 3개월 만에 최저 칩니다.
이렇게 엔화 약세가 두드러진 이유는 뭔가요?
크게는 2가지로 보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우리나라도 미국도 그렇고 다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 뿌렸던 돈을 거둬들이고 있잖아요. 대표적인 게 금리인상이죠. 지난달 미국이 3년여 만에 금리인상을 단행했고 추가적로 공격적인 인상 얘기가 나오는 중이고요. 우리나라 역시 지난해 이미 두 차례 인상을 했고 올해도 미국 움직임에 따라 추가 인상이 전망되는 상황이죠.
하지만 일본 중앙은행은 여전히 제로 금리를 고수하고 있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일본은 장기침체를 겪고 있다 보니 어떻게든 경기를 살리기 위해서 제로금리를 포기할 수 없는 거죠. 사실 일본은 코로나19 전부터 제로금리 상황이었습니다. 다른 나라들이 돈을 너무 많이 풀어서 물가 상승 다시 말해 인플레이션 우려를 느끼고 있고 그래서 더 가파르게 금리인상을 추진하고 있지만 일본은 이상하게도 물가가 별로 안 오릅니다. 그러니 여전히 중앙은행이 제로금리를 고수하고 있는 거죠.
더구나 일본은 아베 정권 이후 일부러 엔저를 유도해 왔습니다. 그래야 자국 수출기업들의 글로벌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오르고 수출이 잘되면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죠.
두 번째는 앞서 잠깐 언급드렸지만 엔화는 안전자산이라는 글로벌 금융시장의 인식 변화가 온 것이라는 해석입니다. 사실 그간 일본의 내부 상황이나 경기침체 그리고 제로금리 상황 등에도 일본의 엔화 가치는 상당히 견조했습니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흔들릴 때마다 달러의 가치와 같은 방향으로 움직였거든요. 심지어 2008년 금융위기 때도 2011년 동일본 대지진 때도 엔화는 강세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달러와 완전히 역방향으로 움직입니다. 그래서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더 이상 엔화를 안전자산으로 보지 않는 것 아니냐라는 분석이 등장하는 거죠.
그런 일본의 위상이 쉽게 흔들릴까요?
그래서 요즘 엔화 약세를 금융시장에서 굉장히 특이하다 이렇게 보고 있고, 이런저런 해석을 더 내놓는 거죠.
물론 말씀해주신 대로 일본은 여전히 경제대국입니다. 1월 말 기준으로 일본의 외환보유액은 1조 3859억 달러로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입니다. 1990년부터 저성장 국면이 이어지자 일본은 나라 밖으로 눈을 돌려 해외 투자를 적극적으로 했죠. 그래서 대외자산은 4조 달러에 이릅니다.
이런 수치들로만 보면 엔화가 흔들릴 이유가 전혀 없죠? 그런데도 엔화 가치가 생각보다 최근 큰 폭으로 흔들린 거죠. 그래서 앞서 설명드린 2가지 분석 중 첫 번째인 일본의 제로금리 정책은 그간 일본이 지속해온 정책이고 또 앞으로 지속할 것이기 때문에 당장 지금의 엔저 현상을 설명하기가 불충분하다 이렇게 생각한 거죠. 그래서 두 번째 일본에 대한 금융시장의 인식 변화가 시작됐다는 해석이 등장한 겁니다.
구체적으로 일본에 대한 인식 변화라는 건 어떤 걸 말하나요?
그리고 변화의 근거도 있어야 할 텐데요. 앞서 언급한 숫자로 보는 경쟁력은 여전한 것 같은데..
그럼 이제 일본에 대한 글로벌 금융시장의 시각 변화를 뒷받침 할 만한 근거들을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경제 펀더멘털이 예전만 못합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코로나19 직후 일본 경제의 회복 속도는 주요 7개국(G7) 가운데 가장 더딥니다. 2019년 국내총생산(GDP)을 100이라고 하면 일본의 2022년 GDP는 100으로 전망됩니다. 제자리걸음입니다. 3년 만에 겨우 코로나19 이전 수준으로 돌아간 겁니다.
하지만 미국은 106.1 캐나다 103.2 독일 101.7 프랑스 101.6 영국 101.1 우리나라도 106.2입니다.
다들 100을 웃돈 것과 비교해 일본의 회복 속도는 느린 셈이죠.
일본의 든든한 외환보유액의 근간인 경상수지도 흔들립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원자재 가격이 치솟으면서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폭이 줄어들고 있습니다. 작년 8월 적자로 전환했고 이후 올해 2월까지 7개월 연속 무역적자가 기록됐습니다.
실제 지난해 11월 1조 4057억 달러에 달한 외환보유액은 지난 2월 1조 3846억 달러로 211억 달러나 줄었습니다.
엔저가 나오면 일본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이 높아지는 거잖아요? 아베 정부가 엔저 기조를 유지하려고 하는 게 이 이런 이유 때문이고요..
환율은 항상 상대적인 면이 있죠. 불리한 게 있으면 유리한 게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엔화 약세는 분명히 수출향 기업들에게 유리합니다. 그래서 얼마 전 국내 언론에서도 최근의 이런 엔저 흐름이 일본과 경쟁하는 국내 기업들에게 위협 요소다 이런 기사들이 나왔습니다. 특히 완전 경쟁관계에 있는 완성차 업체들 같은 경우는 가격 경쟁력면에서 해외에서 고전할 가능성이 없진 않습니다.
하지만 최근 분석들은 과거와 상황이 좀 달라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무슨 얘기냐. 일본 기업들이 상당히 많이 해외로 빠져나가 있습니다. 그 얘기는 엔저가 그리 이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얘깁니다. 일본에서 생산해서 해외로 팔아야 환율이 적용되지 해외에서 생산해서 해외에서 파는 건 사실 환율 덕을 그리 보지 못합니다. 과거와 환경이 바뀐 것이죠.
그건 우리나라 기업들도 비슷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원화 약세 또는 원화 강세가 나오더라도 기업들이 과거보다 그리 큰 수익에 영향을 받지 않는 건 중간재를 사다가 완제품을 만들면서 환율 오르고 내림이 상쇄되는 것도 있지만 해외에 공장들을 많이 건설했기 때문도 있습니다.
그럼 앞으로도 이런 엔저 현상이 더 나타날까요?
글로벌 IB들 중에는 달러엔 환율이 150엔까지 올라갈 걸로 보는 곳도 있습니다. 엔화의 가치가 여기서 더 떨어질 수도 있다고 보는 거죠. 사실 이 같은 전망의 보다 근본적인 배경엔 일본의 미래에 대해서 좀 어둡게 보는 시각들이 늘어난 것도 있습니다
사실 일본의 산업구조는 시대 변화에 크게 대응하지 못한 면이 있습니다. 요즘 각광받는 테크(플랫폼) 기업이나 바이오 심지어 문화 콘텐츠 부문에서도 좀 뒤처진다는 얘기를 듣고 있거든요. 반면 최근 10년간 우리나라는 산업구조를 굉장히 다이내믹하게 변화시켰습니다. 이른바 중후장대라 불렸던 제조업 중심에서 이제는 플랫폼부터 콘텐츠, 바이오제약까지 굉장히 다양해졌습니다.
전기차와 배터리는 글로벌 선두업체들과 섞여서 경쟁하고 있고 날로 중요성이 더해지는 반도체 역시 우리 기업들은 선두에 있습니다. BTS로 대표되는 K콘텐츠는 말할 것도 없죠. 이런 것들을 보고 있는 글로벌 투자자들의 눈엔 일본의 장기침체와 역동성이 떨어진 일본은 미래가 상대적으로 어둡게 보인다는 거죠.
오디오로 듣고 싶다면
https://youtu.be/SScge-NV3M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