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처음 비행기를 탔던 때의 기억은 어떤 얼룩처럼 남아 지워지지 않는다.
열세 살, 가족여행으로 제주도를 가게 되었고 비행기를 타고 간다는 것을 알게 된 순간부터 긴장감이 내 자그마한 세계에 꽉 들어앉아 이성적인 판단을 마비시켰다. 주체할 수 없는 흥분이 심장을 움켜쥐고 흔들었다.
나 자신은 이미 다 컸다고 생각할 만큼 충분히 어린 나이였고, 그때의 나에게 비행기를 탄다는 것은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비행기 사고가 날 확률이 자동차 사고가 날 확률과 비교도 못 할 만큼 훨씬 적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던 것 같다. 한 가지 확신을 했던 것은, 비행기에서 사고가 나면 그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사실 하나뿐이었다.
그 당시의 선명한 공포가 어찌나 확실한 얼룩으로 남았던지, 이제는 충분히 어리지 않다고 스스로 어필할 필요가 없는 나이가 된 지금까지도 비식비식 웃음이 날 정도다.
비행기를 타고 가는 여행의 기대감보다도 곧 죽을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더 컸고, 그래서 여행 전날까지 후회하지 않는 삶에 대한 때 이른 고민을 꽤 진지하게 했었다. 그리하여 내가 내렸던 결론은 좋아했던 남자아이에게 내 존재를 알려야겠다는 것이었다. 갓 마른 빨래에서 나는 햇빛 냄새처럼 금방 사라져 버렸던 '좋아한다'는 감정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그 아이를 좋아했던 좀 더 어렸던 나를 다독여 주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그 아이는 초등학교 1학년 때 딱 한 번 같은 반이었다가, 열세 살, 그러니까 초등학교 6학년 생이 되어 시내 작은 영어 학원에서 우연히 마주치기 전까지 단 한 번도 어디서도 조우한 적이 없었다. 운명이라고까지 생각했던 것은 분명 아니었을 것이다. 그 학원에서 그 아이를 어쩌다가 발견했을 때의 기분 같은 것도 이제는 전혀 생각이 나지 않지만, 어쨌든 그 당시에 나는 '죽기 전에 그 아이에게 내 존재를 알리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여행 전 날, 그러니까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를 가다가 불의의 사고로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직전 날, 학원을 마치고 셔틀버스를 탑승하면서 몇 날 며칠 전전긍긍하며 세웠던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계획이라고 할 만큼 거창한 것도 아니었고, 어떻게 말을 걸면 좋을지 밤새 머릿속에 시뮬레이션을 돌려 봤을 뿐이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그 아이가 이렇게 반응하면 저렇게 대답해야지, 하고 구체적인 상황 예측 정도였다고 나 할까.
그리고 나는 그 아이를 불렀다.
"야, 강동원! 나, 1학년 때 너랑 같은 반이었던 해후야. 너도 여기 다니는 줄 몰랐네."
저 짧은 문장 하나를, 죽음을 앞두고 선 용기로도 벌벌 떨며 말했던 것과, 얼빠진 채 전혀 낯선 사람 보듯 나를 봤던 그 아이의 표정과 미안하다고 잘 기억이 안 난다고 말하던 그 아이의 목소리와 다급하게 밀려오는 후회와, 그래도 이젠 죽어도 후회는 없겠다는 후련함, 그런 온갖 복잡한 그 순간의 장면들과 감정들이 근 20년까지 지난 지금에도 어제 일처럼 선연히 떠오른다.
결과적으로 그 날의 기억은, 소위 이불속 하이킥을 날릴 쪽팔린 추억이 되었지만, 그 당시의 한 가지 마음먹었던 것은 아직 내 마음의, 그 이후 이어진 수많은 나의 비행들의 중심이 되었다.
당장 내일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처럼 후회 없는 비행을 하자.
비행기를 탈 때마다 내가 아끼는 사람들에게 낯 뜨거운 사랑고백을 하는 것이 이제는 습관이다. 여행지에 도착해서 지난 비행으로부터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에, 전혀 신선하지는 않아도 약간은 새롭게 주어진 나의 삶을 향한 감사 인사 역시 마음속에 새긴다.
이륙할 때 몸부림치는 비행기의 진동을 온몸으로 느꼈던 그 첫 비행기 여행의 떨림은 지금도 고스란히 내 심장을 두드린다. 그 어디를 가더라도 나는 그때의 우습지만 귀엽기도 하고 부끄러운 기억처럼, 나의 여행들을 모두 기억하고 싶다.
어린 시절 불렀던 노래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걸어 나가면,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오겠네"처럼, 하루 한 걸음씩, 세상 속으로 천천히 다가가고 싶다.
*본 에세이에 나오는 이름들은 모두 가명입니다.
*여행 이야기를 이렇게 시작해보고 싶었습니다. 어떤 기억들은 너무 강렬해서 영원히 기억되는데, 여행지에서 이야기들을 공유하고 싶어서 시작합니다.
*주 1회 연재를 목표로 시작해봅니다. 잘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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