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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연 Jul 17. 2018

사랑은 혐오보다 강할까?

2018 제 19회 서울 퀴어문화축제와 혐오 세력

작년에는 비가 왔지만 올해는 폭염이었다.

2018년 제 19회 서울 퀴어문화축제가 지난 7월 14일 토요일, 서울 시청광장에서 진행되었다. '퀴어문화축제' 자체는 7월 13일 '프리즘 오브 아트'를 시작으로 22일까지 이어지는 한국 퀴어영화제를 포괄하는 행사이고 14일 토요일 시청광장에서 열린 것은 '퀴어 퍼레이드'이다. 2000년 처음 성소수자의 권익 향상을 위해 시작한 이 축제는 올해로 벌써 19번째를 맞이했다. 규모는 해가 갈수록 커져서 이제는 시청광장도 인원을 모두 수용하지 못하는 정도가 된 것 같다.


처음 '퀴어문화축제'를 알게 된 것은 중학생 때였던 것 같다. 지방에 거주했기 때문에 소식은 종이신문 기사로 접한 게 전부였지만, 무미건조한 기사가 전달해준 소식에도 가슴이 뛰었다.

대학을 서울로 가면, 아니 어른이 되어서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되면, 꼭 이 축제를 가 봐야지.

꼬마 퀴어의 꿈은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휴학할 때쯤에 이루어졌다. 그때가 내 생애 첫 퀴어 축제였고, 당시에는 청계천 을지 한빛거리에서 열렸는데, 지금과 비교하면 아기자기하고 귀여운 수준이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참가했다. 별로 하는 건 없지만, 사람들과 부대끼면서 축제 기분을 만끽했다. 폭염에 지쳐서 퍼레이드까지는 따라가지 못했지만, 유익한 시간이었다.


시청 인근에서 점심을 먹은 후에 광장으로 진입했는데, 점심을 먹는 장소에서 조금 재미난 일이 있었다.

시청 근처에 콩국수 맛집이라고 소문난 진주회관에 줄을 서서 순번을 기다리는데, 나라를 지키기 위해 깃발을 들고 나오신 분들의 무리를 발견한 것이다. 밥을 먹는 것 앞에서 인간은 누구나 공평하다. 먼저 온 사람에게 순번이 먼저 돌아오는 것 역시도 같이 적용된다. 이념이나 사상이 달라서 행진을 다른 곳에서 하더라도, 밥 먹는 순간만큼은 평화로웠다.

이뿐만이 아니라 식사 중간에 식당 내 곳곳에서 어르신들의 '동성애 축제' 어쩌고 하는 속삭임도 곳곳에서 들려왔다. 무엇인지 알고 반대하기 위해 오신 분들, 축제 자체에 참가하러 온 사람들, 잘 알지 못하고 '이런 게 있다더라~'는 이야기를 도란도란 나누는 사람들. 밥을 먹으며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리는 게 재미있는 경험이 아닐 수 없었다.


식사 후에 지인들과 행사장을 향해 걸으며 다양한 혐오 세력들의 시위를 목도했다. 그러면서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당사자이기도 하고) 이 축제를 즐기기 위해서, 좋아서 놀러 나온 셈이지만, 반대하는 사람들은 축제를 즐기는 사람들이 '싫어서' 나온 것일 텐데, 과연 이 혐오를 사랑이 이길 수 있는 걸까, 하고.


청소년들을 에이즈로부터 지켜내고 싶으면 콘돔을 나누어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랑이 혐오보다 강할까?


물론 '혐오 세력'으로 묶이는 이 반대 세력들이 단순히 '싫다'라는 감정만으로 행동하는 것은 아니다. 나름의 논리가 있고 이념과 신념이 있기에 더위에도 아랑곳 않고 밖에 나와 '싸우는' 것이다. 그 신념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자신이 믿는 바를 행하는 열의는 가히 존경받을 만한 것 같다.

싫어하는 것과 최대한 엮이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나에게는 이해하기 힘든 싸움이긴 했다. 그렇게 싫다면 안 보면 되는 게 아닐까, 왜 굳이 당사자들과 마주치며 고함을 지르는 것일까.

이쯤 되면 혐오를 이길 수 있는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는 게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들었다. 매년 반복되는 퀴어문화축제와 혐오 세력의 대치는 도무지 끝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으니까.


태극기 부대의 주말집회

당일 현장에 축제 참가자와 혐오 세력만 나타났던 것은 아니다. 소위 '태극기 부대'도 나름의 집회를 진행하고 있었다. 최초의 도가 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하기 위해서였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결국 발언대에서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퀴어문화축제를 비난하는 말을 하고 있었다.

NO를 뒤집으면 ON이라고, 동성애 ON! 하고 장난을 쳐봤다.

퀴어문화축제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 축제를 '동성애 축제'라고 부르며 원색적인 비난을 감추지 않는다.

시청광장에 가기 직전 횡단보도 앞에서 부채를 나누어주던 할아버지가 "자기 몸은 자기가 지켜야 한다."며 부채를 이런 부채를 들고가라셨다. 날이 더우니 부채질이라도 하라는 것이었다. 저기 행사장에서도 부채는 나눠주고 있어요, 하고 나름 친절하게 대답해 드렸더니, 같은 말을 반복하며 그래도 부채는 들고 가라 신다.

"자기 몸은 자기가 지켜야 한다."라는 말은 날이 더우니 부채질 열심히 하여서 재밌게 놀다 가라는 말인지, 동성애에 물들지 않게 스스로를 지키라는 말인지 (둘 다인 듯했지만) 재미있는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할아버지가 나에게 화를 내거나 윽박지르며 동성애 축제 반대한다고 했다면 내 반응도 달랐을 테지만, 단순히 부채 가져가서 자기 몸을 지키라고 하니까 나도 웃으며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신념을 지키고자 행동하는 개개인에게 어떤 부정적인 생각은 없다. 그냥 사실은 이들도 '잘 모르니까' 그런 게 아닐까.


반동성애 집회에서 요즘 다시 새롭게 논란이 되는 이슈는 '에이즈 AIDS'다. 동성애가 에이즈 감염을 높인다는 다소 자극적인 문구를 가지고 와서, '문란하게 동성끼리 섹스한 사람들이 걸린 에이즈 치료 비용을 왜 세금으로 충당해야 하느냐'며 반대의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자극적인 문장에 사람들은 너도나도 '헉'하며 반대의 목소리에 힘을 기울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놓치는 부분이 많다. 이들이 주장하는 바에 의하면 에이즈 감염은 남성간 항문 섹스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동성애가 나쁘다고 하지만, 결국 레즈비언 그룹 내지는 성관계를 맺지 않는 관계의 동성연애 등 다양한 범위를 포괄하고 있지 못한 주장이다. (기사 참고 : 뉴스앤조이 '우리가 몰랐던 AIDS②')


그럼에도 퀴어문화축제는 '에이즈'라는 질병과 퀴어의 삶이 무관하지 않고, 함께 편견에 싸워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퀴어를 향한 차별만큼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차별도 우리 사회에 날카롭게 자리 잡혀 있다. 혹은 이 둘은 거의 동일시되어 멸시받곤 한다.

AIDS의 원인이 되는 HIV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이성/동성을 불문하고 섹스할 때 콘돔을 착용하는 것이 최우선이 된다. 즉, 청소년 에이즈 감염이 걱정이라면 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하는 것보다 학교 앞에서 콘돔을 나누어주는 것이 더 효과적인 예방법이 된다. (한국에서 가능하다면!)


또 재밌는 사실은, 혐오 세력들은 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하며, '사랑하기 때문에 포기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한다. 예수의 품으로 돌아오라는 말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고, '탈동성애' 하면 응원해주겠다고 말한다. 이 모든 것들은 어떻게 보면 애정표현의 한 갈래처럼 여겨진다. 조금 비뚤어진. 존재를 인정하는 애정이 아니라 '내가 사랑할만한 사람이 되어주면 사랑해주겠다'는 오만한 애정이다.

결국 사랑을 이야기하지만, 또 다른 이름의 혐오다. "나는 여자를 좋아하기 때문에 여성 혐오를 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남자들의 모습과 겹쳐 보인다.


한복 차림에 북을 두드리며 동성애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심판해야 한다는 사람들의 외침은 이제 퀴어문화축제 때마다 볼 수 있는 하나의 진풍경으로 자리 잡았다. 조금 재밌기도 하다. 이들의 목소리가 실제로 내 삶에 큰 위협이 되긴 하지만, 이처럼 축제 맞은편에서 악을 쓰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이게 바로 '혐오의 얼굴'이구나 싶어서 씁쓸하다.

그들이 나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나 역시 그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는 없겠지.


결국 사랑이 혐오를 이기는 그런 날이 올까?

그건 알 수 없지만, 수많은 나라들의 발전 양상을 바라보며, 지금 비상식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상식으로 자리 잡게 되는 그 날은 기대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호주제를 폐지하면 나라 기강이 흔들리고 무너질 것이라고 했지만, 이미 폐지된 지금도 너무나 멀쩡한 대한민국을 보면, 동성혼이 합법회 된다고 해서 (사실은 이미 큰 문제로 자리 잡은) 저출생이 새삼스럽게 치명적인 문제가 되지도 않을 것이고, 나라가 무너지지도 않을 것을 안다.

그런 세상이 되어도, 그래서 퀴어문화축제가 한 달 내내 서울 시내 곳곳에서 열린다고 해도, 이들을 향한 반대 목소리는 언제까지 지속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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