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금지법을 이야기하는 2020년에
그건 혐오예요
홍재희
처음 차별금지법이라는 단어를 들었던 게 꽤 오래전이라고 기억한다. 아마도 2012년 즈음. 사실은 그것보다 더 이전부터 어떤 사람들은 이 법안을 상정시키기 위해 평생을 노력해왔을지도 모른다. 한국에는 아직도 차별금지법이 없다.
차별금지법은 말 그대로 선택할 수 없는 사람의 어떤 배경 때문에 그 사람을 차별하지 말자는 법안이다. 모든 사람은 사람으로 태어나면서부터 갖는 '인권'이 있는데 그 기본적인 권리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언뜻 들으면 이 법안을 반대할 이유가 없어 보이는데 어째서인지 입법시키는 게 쉽지 않다. 대체 왜일까?
<그건 혐오예요>라는 책을 읽으려고 목록에 넣어둔 게 책이 발행된 2017년이었는데 이제야 읽었다. 3년이나 지난 책이니 그때보다는 지금의 담론이 더 진보해있을 것이라, 책이 조금 뒤떨어진 느낌일까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기우였다. 2017년이나 2020년이나 한국에서는 아직도 '차별'과 '혐오'가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가 필요하다.
차별과 혐오는 항상 약자에게만 향한다. 여성, 장애인, 이주민, 부당한 사회 체제에 맞서는 사람과 성소수자, 그리고 비인간 동물. <그건 혐오예요>에서는 각 챕터마다 이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이 한국에서 겪는 차별과 혐오에 대해 이야기한다.
페미니즘 담론을 이야기하는 책을 꽤 읽었다고 자부해서, 이 책에 소개된 내용도 낯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다양한 분야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특히 군대 시스템에 대한 부분과 동물권에 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인상 깊었다.
징병제의 대상이 아니라 한국 징병 시스템에 대해 깊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단순하게, 이제 한국도 모병제를 할 때가 되었다, 군 징병 시스템은 시대에 뒤떨어졌다, 징집된 사람들에게 합당한 보상을 해 주어야 한다, 는 의식 정도가 있었을 뿐이었고, 군대 문제로 언쟁을 하고 싶지 않아 이 의견과 반대되는 사람들과는 대화를 피하곤 했을 뿐이었다. 그러다 책에서 군대를 감옥과 비교하는 대목을 읽고 나니, 군 징병 문제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P. 117 군대나 감옥에서 제일 견디기 힘든 사람이 자의식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스스로 생각하는 사람, 자의식이 확고한 사람은 체제가 강요하는 걸 아무리 믿으라고 해도 믿을 수 없고 따를 수가 없어요. 하지만 군대는 내가 아니라 집단 규율이 제일 중요한 곳인데 그러니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겠어요.
군대와 감옥은 자아를 지우는 곳이기 때문에 개인에게 폭력적이다. 군대에서 남자들이 겪는 것만큼 내가 겪어본 것은 아니지만, 자아가 지워지는 경험이라면 나에게 아주 지긋지긋하다. 우리 모두가 아마 비슷할 것이다. 학업 성적 외엔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았던 10대 시절, 자아가 지워진 채 부모님의 욕망대로, 혹은 학교의 규율이 정하는 대로 살아야 했던 시절을 떠올리면, 그 상상이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 언젠가는 피해자가 되었던 경험이 있다. 그만큼 가해자였던 경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독 한국의 남성들은 그 둘 모두를 부정하거나 회피한다. 피해자였던 경험에 대해 이야기하면 스스로가 약해 보인다고 느끼기 때문인지, 가해자였던 경험에 대해 상기하면 부끄럽기 때문인지. 하지만 이 경험들을 복기하며 발전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은 중요하다. 피해의 경험, 가해의 경험에 함몰되지 않고 지난 과오를 바탕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핵심이다.
마지막 장에서 이야기하는 채식도 흥미로웠다. 비건이던 친구와 같이 살았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나도 비건이 되어야겠다는 의식까진 하지 않았지만, 그 친구를 배려하는 차원에서, 그리고 현대 환경 문제에 대한 경각심이 있었기 때문에, 집에서는 비건식을 하려 노력했다. 단순히 환경 문제 때문에 사람들이 비건을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챕터를 읽으며 생각을 폭을 넓히게 됐다.
P. 183 그래서 저에게 채식이라는 건, 단순히 고기를 안 먹는 게 아니라, 강요된 시스템과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는 것, 관습과 자본과 타자의 욕망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섭식을 하겠다는 선언이에요. 그러니까 무엇을 못 먹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선택하겠다는 선언인 것이죠.
생각해보면 한국은 '차이'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은 나라였다. 다른 것에 대한 기본적인 공포가 너무 깊숙이 박혀 있어서 자신이 생각하는 '기본'과 다른 사람에게 쉽게 폭력적으로 대하는 것이다. 그것이 한국에서 '차별금지법'을 막는 뿌리처럼 보인다.
단순히 어떤 것을 싫어하는 것과 '혐오와 차별'에는 차이가 있다. 싫어하는 것은 좋고 싫음의 문제에 그치고 개인적인 생각으로만 끝날 수 있지만, 혐오와 차별은 폭력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너와 난 달라, 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 나와 다른 너는 이상해, 나빠, 로 이어지는 것이 혐오와 차별이다. 개인의 호오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가 소수에게, 강자가 약자에게 폭력을 저지르는 것이다.
책을 읽을수록 답이 없는 문제를 곱씹는 것 같았다. 아직도 한국 사회는 갈 길이 멀구나, 사람들의 인식을 변화시켜야 하고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법안도 상정해야 하고, 또 자라나는 청년들에게 올바른 것을 가르치기 위한 교육책도 마련해야 하는구나.
책 밖으로 고개를 돌려 2017년과 2020년의 차이를 들여다봤다. 양심적 병역 거부자의 첫 대체 복무제 시행 뉴스가 들어왔다. 국내 최초 비건 전시회인 비건페스타 소식도 있었다. N번방 가해자 무기징역 구형 뉴스도 있었다. 그래도 조금은 나아진 것 같다는 안도감이 돌았다. 아마도 혐오를 혐오라고 조목조목 따지는 사람들이 사회 곳곳에 있기 때문이겠지.
P. 159 우리 모두가 조금씩은 타인에게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다는 인식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인 것 같아요.
그러면 우리 사회는 좀 더 나아지겠지.
*본문 참고 링크
1) 병역거부 대체복무자 첫 소집...교도소서 36개월 합숙복무 https://www.ytn.co.kr/_ln/0101_202010270206092833
2) 비건페스타 http://www.veganfesta.kr/html/index/
3) n번방 문형욱·조주빈 무기징역 구형…법정 최고형 받나https://www.yonhapnewstv.co.kr/news/MYH20201024006100641?did=182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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