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 세계 백인 기득권 엘리트 남성이 건네는 나이브한 해결책
공정하다는 착각
마이클 샌델
독서모임에서 다음 읽어야 할 책을 고르게 됐을 때, 이 책을 일부러 골랐다. 독서모임이 아니라면 읽을 엄두도(아예 생각 조차도) 하지 않을 책이었기 때문이었다. 과연 다 읽고 나서도 그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 독서모임이 아니었다면 펼쳐볼 이유가 없었던 책이었다.
마이클 샌델은 이미 <정의란 무엇인가>로 한국에서 유명한 학자다. 두껍고 어렵다는 편견과, 사람들에게 인기 많은 책이라는 선입관을 가직 있었기 때문에, <정의란 무엇인가>도 펼쳐본 적이 없다. 그런데도 <공정하다는 착각>을 읽을 마음을 먹은 것은, 트위터에서 간간히 인용되어 올라오던 그의 문장들 때문이었다. 능력주의 신화에 사로잡혀 있는 현대인들에게 일침을 가하는 그 문장들 말이다.
P. 8 사회문화적 배경을 제거한 개인의 온전한 능력 측정이 가능하지 않다는 데에서 신화의 허상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P. 152. 능력주의 체제를 수용하는 사람은, 진정한 기회의 평등을 위해선 차별을 뿌리 뽑는 것 이상이 요구됨을 알고 있다. 그것은 '운동장 고르기'를 필요로 한다. 모든 사람들이 지식 기반, 글로벌 경제 무대에서 효과적으로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그 결과 1990-2000년대의 주류 정당들은 불평등, 임금 정체, 제조업 일자리 감소 등에 대한 해답으로 일단 교육을 내세우게 되었다.
P. 194. 능력주의 사회가 정의롭다고 판단하기 전에, 이 회의주의자들은 '모든 아이들에게 그 출신 가정과 무관한 교육, 문화적 기회를 최대한 보장하는 정책'이 존재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P. 202. 사람들이 능력주의에 대해 불평하는 건 보통 그 이상에 대한 게 아니다. 그것이 현실적으로 실현되지 않고 있다는 불평이다. 부유하고 유력한 사람들은 이 시스템을 이용해 자신들의 특권을 영구화하고, 전문직업인 계급은 자신들의 유리함을 자녀에게 물려줄 방법을 찾아낸다. 그리하여 능력주의를 세습 귀족제로 탈바꿈시킨다. 대학들은 능력에 따라 학생을 선발한다고 하면서 부자와 인맥 좋은 사람들의 자녀를 유리하게 만들어 준다. 이런 불평들에 따르면, 능력주의는 신화이며 아직 실현되지 못한 공허한 약속이다.
이 책이 발간되기 전에도 이미 많은 사람이 사회적 불평등, 불공정성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가령 '열심히 공부를 하면 좋은 대학을 간다.'는 단순히 능력주의의 명제에 대해서도, 과연 열심히 공부하는 것만으로 좋은 대학을 갈 수 있는가, 하는 의제를 던진 것이다. 내 개인의 능력 범위에서 벗어나는 것, 그래서 바꿀 수 없는 어떤 것으로 결정되는 나의 위치, 지위 계급 같은 것들 말이다.
책에서도 다소 진부하게 이런 내용을 반복하며 사회에 화두를 던졌다. 우리가 노력하는 것으로 성취하는 모든 것이 우리만의 노력으로 인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하버드 대학에 입학한 수재들은 단순히 열심히 했기 때문에 '하버드 대학 입학'이라는 성취를 거머쥔 것이 아니라는 것. 물론 그들이 열심히 하지 않았다는 게 아니라, 당사자가 열심히 하는 것 이상의 환경적인 요인을 무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뉴스 기사, 갖가지 인문학 서적, 사회를 꿰뚫는 통찰력 있는 글을 조금 읽어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아직 사회는 공정하지 않고, 우리 사회가 공정하다는 착각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
하지만 이 책은 여기서 더 나아가 능력주의 자체에 대한 명제를 바로 하고 있다.
P. 203. 첫 번째 반론은 설령 능력주의가 완전히 실현되었다고 해도, 그리하여 각자의 직업과 보수가 노력과 재능에 완전히 비례한다고 해도 그게 과연 정의로운 사회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두 번째 반론은 만약 능력주의가 공정하다 해도 과연 그것이 좋은 사회일지 의문을 제기하는데, 능력주의는 승자에게 오만과 불안을 자아낼 것이며 패자에게 분노를 자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어느 태도든 정신적 번영에는 해로우며 공동선 개념에는 치명적일 것이다.
많은 사람이 착각하는 것 중 하나, 나조차도 착각했던 하나.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마땅한 보상을'이 있었다. 노력해서 성취한 사람에게 응당한 보상이 돌아가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오만한 마음이었던 건지.
책을 읽으며 나 스스로에 대해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다. 자각하지 못했지만 나 역시도 일종의 엘리트 집단이었고, 노력하지 않고 게으른 사람들, 소위 '멍청한 사람들'에 대한 멸시가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배어 있었다.
가장 놀랐던 점은, 이전 대선에 트럼프를 찍은 수많은 미국인들에 대해 이해조차 하려 들지 않았던 내 모습이었다. 오바마가 그러했듯, 그동안 내가 겪었던 많은 사회 운동 단체에서의 내 경험에 비추어 보아도, 나는 '잘못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단순히 나쁘고 사악한 마음이 들어서가 아니라 '잘못된 정보를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얼마나 오만한 엘리티시즘이었던가. 트럼프를 뽑은 사람들에게는 이미 정보의 옳고 그름이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신념과 맞는 사람에 대한 '적당한 정보'가 이미 주어져 있었고, 그에 맞춘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것이었다. 트럼프는 그런 사람들에게 알맞은 말을 해주었던 것뿐이었고.
책에서는 단순히 능력주의가 가진 맹점을 짚어내는 것뿐만이 아니라, 능력주의로 비롯한 정치 문제도 함께 제시했다. 미국의 예를 들어, 대학 학위가 없는 다수의 사람을 학위가 있는 소수의 사람이 대표하고 있다는 점이 바로 현실과 유리된 정치 쟁점을 자아낸다는 문제점이었다. 한국도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미국만큼이나 능력주의가 팽배한 한국이 자꾸 떠오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2012년 한국 대선에 나섰던 청소노동자 대통령 후보 김순자를 생각하면 조금은 달라질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다. 아직까지 대학 학벌보다는 다른 기준으로 다른 기준으로 대표자를 뽑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말이다.
P. 171. 좋은 통치는 실천적 지혜와 시민적 덕성을 필요로 한다. 공동선에 대해 숙고하고 그것을 효과적으로 추구할 수 있는 능력이다. 그러나 둘 중 어느 것도 오늘날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함양될 수 없다. 최고의 명문대로 할지라도 말이다. 그리고 최근의 역사적 경험은 도덕적 인성과 통찰력을 필요로 하는 정치 판단 능력과 표준화된 시험에서 점수를 잘 따고 명문대를 들어가는 능력 사이에 별 연관성이 없음을 보여준다. '최고의 인재들'이 저학력자 동료 시민들보다 통치를 잘한다는 생각은 능력주의적 오만에서 비롯된 신화일 뿐이다.
뒤로 갈수록, 그렇다면 이 능력주의에 찌든 사회에 대한 해답은 무엇일까를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학력주의 타파는 무작위 선별 및 지역 대학 활성화를 해결책으로 제시했지만 과연 실현이 가능한 부분일까, 하는 의문을 제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노동의 중요성을 설파하기도 했지만, 임노동이 아닌 다른 것으로 더 많은 부를 취득해 계급 이동을 성취해내는 사람들, 그걸 원하는 사람들 앞에서는 허무맹랑한 꿈이 아닐까 싶다.
결국 갖가지 사회적 문제점을 요목조목 짚어냈지만, 마이클 샌델 자신도 제1 세계 특권층 엘리트 백인 남성이라, 그의 해결책 역시 나이브하고 이상주의적일 수밖에 없었던 것 같다. 이런 문제는 명확한 답이 있기 어렵긴 해도, 다른 계급으로 살아보지 않은 이상, 그에게서 다른 방향에서 바라본 해결책은 나오기 어려울 것 같다.
나 역시도 또렷한 해결책은 찾지 못한 채, 사회의 불평등함, 불공정함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보는 책이 되었다. 그래도 다만, 내 안의 엘리티시즘에 대해 재고하여 돌아보는 기회가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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