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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연 May 04. 2021

자기만의 방 - 버지니아 울프

자기만의 방

버지니아 울프


아주 재미있는 글을 한 편 읽었다. 이런 기획이 있었는지도 몰랐는데, 독서모임을 같이 하시는 분이 공유해주셔서 읽을 수 있었다. <일간 이슬아>로 유명세를 탄 작가인 이슬아 씨와, 남궁인의 서간문이었는데 읽게 된 글은 이슬아 씨의 마지막 편지였다.

http://www.weeklymunhak.com/26/402/

여러 회를 거듭하며 이슬아 씨는 남궁인이라는 사람을 파악하고 통렬한 비판을 했다. 당신의 글엔 당신이 너무 많으시네요, 아주 우아한 비판이었다.

이 이야기를 수많은 남성 작가들에게 똑같이 해 준 사람이 있다. 이미 한 세기 전에 출간된, <자기만의 방>을 쓴 버지니아 울프다.


P. 168 여성의 글에 비추어 봤을 때, 남성의 글은 직접적이고 솔직했습니다. 그의 글은 자유로운 마음과 거침없는 성격,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한 번도 방해받거나 반대에 부딪힌 적이 없었으며, 태어날 때부터 그저 좋아하는 방향으로 뻗어나갈 수 있는 온전한 자유를 누렸던, 풍부한 영양을 섭취하고,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란 자유로운 이 마음 앞에서는 몸도 안락한 상태가 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감탄할 만한 것이었지요. 그러나 한두 장을 읽고 나자, 책 페이지에 어떤 그림자가 가로놓이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것은 일직선 모양의 검은 막대기로, 'I'자처럼 생긴 그림자였습니다.


100년 전에 쓰인 글이고, 버지니아 울프가 살았을 때에 비하면 이젠 글을 쓰는 여성이 차고 넘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경험의 폭이 여성이라고 한정되지 않으며, 원한다면 남성과 같은 권리를 누릴 수도 있게 되었다.

<자기만의 방>을 쓸 때 즈음 영국엔 서프러제트의 성공으로 여성에게도 참정권이 막 주어진 참이었고, 여성에게 허용되지 않았던 사유 재산도 허용되기 시작한 후였다. 조지 엘리엇, 제인 오스틴, 에밀리 브론테 등 쟁쟁한 여성 작가들은 이미 그전에도 이름을 날렸고, 남성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기량을 보이기도 했다.

그럼에도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에게 '자기만의 방과 500 파운드'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혼자 사유할 수 있는 공간과 힘을 가져야 한다는 뜻이었다. 100년 후에는 더 많은 여성의 소설과 시가 등장할 것이라고, 여성에게 더 나은 세상이 되어 있을 거라고 낙관한 버지니아 울프의 글을 읽으며, 내 삶을 돌아봤다.


분명 한 세기 전에 살았더라면 누릴 수 없었을 걸 많이 누리고 살았다. 대학 교육까지 마쳤고, 지금은 해외에 나와 살고 있다. 직업을 가졌으며, 내 이름으로 된 통장에는 지금 당장 일을 하지 않아도 한동안 먹고 살 걱정이 없는 돈이 모여 있다. 꾸준히 글을 쓰려고 노력하며 틈틈이 책을 읽는다. 그렇다면 나는 내 방과 500파운드를 가진 사람이 되었을까?

실제적 의미로는 아직 '내 방'을 갖지는 못했다. 파트너와 함께 사는 공간에 방이 두 개나 있고 거실과 부엌이 별도로 있지만, 문 닫고 혼자 사색할 수 있는 나 혼자만의 공간은 없다. 일을 하고 있으니 돈은 꾸준히 들어오지만, 이는 나를 자유롭게 해주는 돈이 아니라 오히려 일에 더 시간을 더 쏟게 만드는 '급여'다. 글을 쓰려면 시간을 더 쪼개야 한다. 그러니까 나는 아직도 자기만의 방과 500파운드를 가지지 못한 것이다.

상징적인 의미로는 원하면 언제든 혼자 있을 공간을 마련할 수 있고, 당장 혼자 살기로 마음먹는다면 가능한 수준의 경제력은 있다.

하지만 나는 계속 무언가 부족하다는 걸 느낀다.


P. 78 그 순간 지구에 잠깐 들른 방문자라도 이 신문만 보면 틀림없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증거로부터 영국은 가부장제가 지배하는 사회라는 걸 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신이 온전하다면 그 교수가 발휘하는 영향력을 당연히 감지하겠지요. 권력과 돈과 영향력이 다 그의 것이었습니다.


지금도 뉴스를 보면 페미니즘을 향한 다양한 백래시를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남혐 단어'라는 허버허버, 웅앵웅, 오조오억 등을 가지고 억지를 부리는 남자들의 모습은 그야말로 백래시 그 자체다. 문제는 이를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데 있다.

재보궐 선거 이후, 특히 서울 시장 선거에서 20-30대 남성의 표심은 오세훈에게 많이 돌아가 있었다. 민주당은 그런 남성들의 마음을 달래려고 전전긍긍한다. 이 와중에 또 20-30대 여성의 목소리는 지워지고 없다.

여전히 권력과 돈과 영향력이 모두 남성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문학계에 여성 작가들이 유례없이 반짝이는 시기가 찾아왔다고도 한다. 글쎄, 내가 어릴 적부터 재밌게 읽었고 신나게 읽었던 책의 작가는 대부분 여성이었다. 그럼에도 이제야 여성 작가들의 시대가 되었다고 말하는 이유는 아마 문학계 권력을 쥐고 있던 남성 작가들이 아주 조금은 힘을 잃었기 때문이든가, 아니면 그 권력을 흔들 만큼 여성 작가들의 힘 자체가 세졌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권력과 돈과 영향력은 남성의 것이다.


한 세기 전에 쓰인 글을 읽으면서도 지금의 사회를 읽어낸다. 그때보다 조금은 나아졌지만, 아직도 나아지지 않은 부분들이 너무 많아서 자칫 절망이 먼저 찾아올지도 모른다. 그래도 희망에 눈길을 한 번 더 줘 보려고 한다.


P. 182 더구나 사포, 무라사키 부인, 에밀리 브론테와 같은 과거의 위대한 인물들을 떠올려본다면, 그들은 선구자일 뿐만 아니라 계승자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입니다. 여성이 자연스럽게 글을 쓰는 습관을 들이게 되었기 때문에 그들이 존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시를 쓰기 전 습작 같은 것으로라도 여러분이 글을 쓴다면, 그 글은 헤아릴 수 없을 만큼 귀중한 것이 될 것입니다.


나는 글을 쓰는 여성을 사랑한다. 나는 절망에 굴하지 않고 자기 삶을 살아가는 모든 동료 여성을 사랑한다. 100년 전에도 앞으로 100년 후에도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를 읽으며 서로를 사랑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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