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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연 May 05. 2021

명랑한 갱은 셋 세라 - 이사카 코타로

명랑한 갱은 셋 세라

이사카 코타로


"로망은 어디에"라고 외치던 교노의 목소리가 선명하던 때도 있었다. 이사카 코타로는 내가 고등학생이던 시절부터 즐겨 읽던 작가였는데 꽤 초창기 작품으로 <명랑한 갱> 시리즈를 읽었던 기억이 있다. 말도 안 되는 말을 말처럼 늘어놓는 재주가 있는 교노, 거짓말을 간파하는 능력이 있는 나루세, 소매치기 기술이 기가 막힌 구온과 오차 없이 정확한 생체 시계 덕분에 신호 한 번 안 걸리고 온갖 도로를 질주할 수 있는 유키코. 이 넷이 모여 은행강도짓을 한다. 다치는 사람은 없게, 은행에도 큰 피해가 안 가는 선에서만 돈을 뺏는다. 이상한 윤리관을 가진 이들의 모험이 3회 차를 맞이한 게 <명랑한 갱은 셋 세라>다. 한국엔 번역되어 나온 지 오래되지 않은 모양이지만, 일본에서는 다른 시리즈와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모양이었다.


나의 시간도 너무 많이 흘러버렸을까. 이번 소설에서는 교노의 목소리도 어쩐지 작아진 기분이었다. 거의 10여 년 전에 읽은 두 시리즈와 비교하는 것도 무색할 만큼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도 이사카 코타로의 작품은 늘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터지는 게 있다. 생각지 못한 곳에서 퍼즐 맞추듯 들어맞는 연결 고리를 찾아내는 것의 쾌감은 예전과 다르지 않다.


은행강도를 낭만화할 생각은 없지만, 이렇게 대충 하는 은행강도는 또 괜찮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교노의 말발처럼 이들의 강도력(?)도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며 힘을 잃기 시작했으니까, 아마 지금쯤은 은퇴했겠지.


좀 더 일찍 읽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하루를 평안하고 여유롭기 보내기로는 독서만 한 게 없는 것 같고, 깊이 생각 안 해도 즐거울 수 있는 이 책은 충분히 그 가치를 한 것 같다.


이제 명랑한 갱의 은퇴기가 나올 때가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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