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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연 May 11. 2021

우리가 사랑한 내일들 - 유선애

우리가 사랑한 내일들

유선애


솔직한 이야기를 먼저 고백하자면, 이 인터뷰집에 나온 90년대생 여성을 향한 질투가 먼저 일었다. 아마 비슷한 시대를 살면서 나보다 더 많은 것을 성취한 이들을 향한 보편적인 정서겠지,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치졸한 감정이 내 안에 아직 남아있다는 것이 부끄러웠다. 말로는 동료 여성들의 성공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이들의 성취가 곧 우리의 진취니 서로를 격려하고 힘이 되어주자고 하지만, 결국 이들의 빛나는 성공은 내 것이 아니었으며 나는 너무 초라한 사람이었다.

처음엔 분명 그런 열등감과 질투심에 사로잡혀 읽었다. 내 못난 모습을 계속 마주하며 읽다 보니 어느 순간엔 마음에 평화가 왔다.


P. 206 배우 이주영은 몇 년 사이 번민과 자괴를 건너왔음을 불현듯 툭 털어놨다. 그때 그가 선택한 것은 자신을 천천히 다시 읽는 것이었다. 어떤 날은 내밀히 들여다보기도 하고, 다른 날엔 멀리서 관조하기도 하며 시간을 흘려보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내가 나대로 사는 것에 죄책감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답을 얻게 됐다고 말했을 때 나는 놀랐다. 내 결핍을 제일 잘 아는 자가 나 자신이니 두려울 것 없다는 듯, 일말의 후회는 없다는 듯한 그의 단단한 얼굴을 바라봤고, 그 얼굴을 오래 기억하게 될 거라 확신했다.


빛나는 성취를 지닌 이들에게서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의 모습을 읽었다던가 하는 그런 식상한 이유는 아니었다. 그래도 내가 나이를 먹긴 먹은 모양인지, 열등감에 마냥 땔감을 던져주지 않을 수 있을 정도는 된 것이다. 타인의 삶과 나의 삶을 분리하고, 그들의 말과 글에서 본받을 점, 닮고 싶은 점을 뽑아내고, 나를 돌아보고.

그들의 삶과 나의 삶에서 다른 점을 찾아내서 내가 성공하지 못할 수밖에 없던 이유를 찾아내려 애쓰기보다는, 그냥 사실을 그대로 바라볼 수 있게 되었을 뿐이었다. 이마저도 의식하지 않으면 종종 잊어버려서 이렇게 치졸한 질투심이 솟구치곤 하지만.


내 젊은 날, 나의 20대를 생각해보면 고민하지 않은 날들, 번뇌하지 않은 날들이 더 적었던 것 같다. 삶은 고통이고 매일 눈을 뜨는 게 버거웠으며 행복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던 날들. 괴로운 일들로 가득 찬 세상에서 나의 의미를 찾는 게 너무 힘들어서 눈물로 보냈던 나날들.

인터뷰집에 실린 이들에게도 힘든 날들이 있지만 각자의 방식대로 잘 보내고 있는 것을 읽으니, 이는 또 나의 힘이 되고 용기가 되었다.

한국에서 10대, 20대 여성의 자살 시도가 늘었다는 뉴스를 얼마 전에 읽었다. 기사를 전부 읽지 않아도 그들이 느꼈을 절망이 무언지 알 것 같아서 눈물이 먼저 났다. 버티다 보면 좋은 날이 올 거라는 말을 감히 해줄 수도 없을 것 같았다. 희망보다 절망이 먼저 보이는 사람에게는 그 어떤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을 테니까. 게다가 이는 단순히 개인이 느끼는 절망감에만 기인하는 현상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여성이 벼랑 끝을 내몰리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아니까.

그래서 더더욱 동료 여성들의 성공담이 귀중하다. 절망을 버텨낸 여성들의 이야기가 소중하다.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다 보니 어느 곳에선 내 이야기를 읽기도 했다.


P. 70 유선애: '기발한 상상력과 글솜씨가 대가에 버금갑니다. 여자가 쓴 글 같지도 않고요'라는 어느 독자의 리뷰, 본 적 있나요?
김초엽: 네, 누군가 트위터에 올린 걸 보고 놀랐어요. 여자가 쓴 글 같지 않아서 좋다는 말은 아무래도 납득이 어려웠죠. 되려 여성 작가가 쓴 이야기임을 강조하고 싶었는데. (웃음)


종종 과거의 영광처럼 친구들에게 떠들곤 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고3이던 2007년에 모 대학교 문학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한 적이 있는데, 수상하러 단상에 올라갔더니 심사위원이셨던 분이 나를 보고 깜짝 놀라며 "여학생이 올라올 줄은 몰랐다."고 하셨던 일이다.

이천 자 남짓의 짧은 소설을 썼었는데, 일부러 중성적인 어조를 썼기 때문에 그 경이가 퍽 즐거웠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생각해보니, '이렇게 잘 쓴 글이 여학생의 것이었나'하는 뜻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도 일었던 건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내가 읽었던 작품이 대부분 '남성적'인 어조로 쓰인 남자 작가의 글이었으니 그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도 할 수 없었을 것 같다.

20대가 되어서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자 하면서는 일부러 벗어나 보려 했던 부분이었다. 내 이야기를 쓰는데 왜 남성 화자를 설정하려 했을까, 왜 나의 목소리가 아닌 '남성적'인 목소리로 글을 쓰곤 했던 걸까. 아마 그게 내가 경험했던 전부였으니 그랬을 것이다.

여성 작가의 글을 더 많이 읽게 되고, 여성 작가의 글이 더 많아지게 되면서 이 고민은 사실상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더군다나 2021년 젊은 작가상은 모두 여성 작가가 수상했다고 하니까. 이제 잘 쓴 글을 보고서도 '남자가 쓴 글 같다'느니 '여자가 쓴 글 같지 않다'는 말을 하는 사람도 없어질 때도 되지 않았을까.


유선애 씨가 인터뷰한 열 명의 여성에게 모두 같은 질문을 던졌다. 삶 속에서 되고 싶고, 기꺼이 사랑하게 되는 여성의 모습이 있다면요? 각자 자신이 사랑하는 여성상을 성실하게 대답해주었다. 하나하나 곱씹으면서, 맞아, 나도 이런 여성을 사랑해, 라고 작게 읊조렸다. 그리고 나도 이런 여성이 되고 싶었어.

질투와 열등감이 사라진 자리에는 자긍심이 들어왔다. 동료 여성들의 삶이 내 마음을 풍족하게 채워주었다. 내 못난 모습에서 스스로 벗어나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었다.


그래서 나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여성을 사랑한다.







Copyright. 2021. 윤해후. All Rights Reserved.


여성 자살 시도 증가 기사

https://www.hani.co.kr/arti/society/women/993645.html

여성의 우울 후속 기사

https://www.hani.co.kr/arti/society/women/99375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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