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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연 Apr 10. 2019

농담 - 밀란 쿤데라

민음 북클럽, 밀란 쿤데라 읽기

농담

밀란 쿤데라



영원의 회귀를 생각했다. 우리가 이미 겪은 일들이 어느 날 다시 돌아오는 것. 그래서 사실 결국은 끊임없이 과거로 회귀하는 것. 밀란 쿤데라의 작품을 많이 읽은 건 아니지만, 어쩐지 그의 작품은 어디론가 향하는 여행과 같이 느껴진다. 그리고 결국 도착하는 곳은 태어난 곳, 그러니 말하자면 '과거'다.


<농담>은 루드비크가 돌고 돌아서 고향으로 돌아오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 과정에 만나는 사람들 역시 멀리 돌아서 자신이 몸 담을 고향으로 돌아온다. 우습게도 멀리 돌아와야만 하는 이유는 그가 학생 시절에 했던 철없는 '농담' 때문이었고, 그래서 그의 삶 자체가 하나의 커다란 농담처럼 느껴졌다.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던 요소가 몇 가지 있었다. 하나는 내 개인적인 배경에 기인한다.

대학생이 된 나는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사상에 금세 심취했다. 내가 뭐라도 된 것처럼 열심히 살았고, 어쩌면 어딘가 한 부분 정도는 나 덕분에 좀 더 나은 세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아니겠지만) 그렇게 평범한 20대처럼 뜨거운 시간을 보냈다. 지금에 와서 그 시간들을 후회하지 않는다.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고 인식의 지평을 넓혔다. <농담>은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적 요소가 다분히 나온다. 사회주의적 이상을 실천하고 있는 청년들이 인간이 가진 다양한 욕망들을 삶에 투영한다. 그리고 나는 어쩐지 그 양상들이 너무 익숙해서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또 다른 하나는, 결국에는 평안을 찾아 헤매는 '인간'의 이야기다. 루드비크는 자신의 삶을 나락으로 떨어뜨린 것이 제마네크라고 생각하고 그를 무너뜨릴 기회라고 생각한 것을 수고로움을 감수하며 노력한다. 실패로 돌아간 복수의 끝에, 루드비크에게 평안을 주는 것은 그의 고향이다. 고향에서 벌어지는 '왕들의 기마 행렬'은 그가 어릴 적부터 익히 봤던 친숙한 풍경이다. 그때를 회상하고 싶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그 속에 녹아들며 마음에 평안이 깃드는 것이다.


밀란 쿤데라는 자신의 작품에 고향인 체코의 문화나 역사를 녹여내는 걸 즐기는 작가다. <농담>에서도 중, 후반부에는 '왕들의 기마 행렬'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데 사실적인 묘사가 흥미롭다. 사라질 뻔한 과거의 유산을 글로 지켜낸다.


P. 521 나는 옛날의 세계를 사랑했고, 내게 피난처가 되어 달라고 빌고 있었다.


얇지 않은 책이고 읽는 데 품이 꽤 들었다. 개인적으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만큼 재미있게 읽지는 않았지만, 한 번쯤은 읽어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나는 나의 피난처가 되어줄 곳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단순히 물리적 고향이 아니라, 나의 마음을 품어주는 '옛날의 세계'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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