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가끔은 함께 여행하는 게 즐겁다.
여행을 함께 하는 동반자가 있다는 것의 장점을 두 가지 꼽을 수 있다.
첫째로 여행지의 식당에서 메뉴 선정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이 있다. 혼자는 먹을 엄두가 나지 않는 식사의 양과 비용도, 둘 이상이라면 어렵지 않게 해결이 가능하다. 비용은 절감하면서 여러 종류의 메뉴를 시도해 볼 수 있다. 나의 경우 동반자의 식사량이 나보다 뛰어나면 더 좋다. 나는 입이 짧은 편이라 한 번의 식사에서 많은 양을 먹을 수 없는데, 그러면서도 다양한 종류의 음식을 맛보는 것을 좋아한다. 혼자서 다 먹지 못할 여러 메뉴를 시켜놓고 음식을 낭비하는 것은 단순히 많은 식사 비용을 지불하는 것보다 더 기분 나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함께 식사를 하며 음식을 남기지 않을 수 있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다른 하나의 장점은, '여행지에서 아름다운 나의 모습'을 사진으로 잘 남겨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물론 나 역시 상대방을 여행지의 풍경과 잘 어울리게 사진에 담아 주어야 하는 수고로움을 겪어야 하지만, 혼자서 셀카봉으로 끙끙거리며 각도를 맞춰가며 찍는 것보다는 타인을 찍어주는 고생이 몇 배는 낫다. 더군다나 여행 동반자의 사진을 찍어주며 내가 어디에서 어떤 각도로 찍히면 좋을지 미리 보고 고민해 볼 수 있어서, 내가 피사체가 되었을 때 보다 완벽할 수 있다. 그리고 여행 동반자가 뷰파인더 너머로 나를 살피며 이리저리 지시해 주는 것 역시 기꺼울 것이다.
이 두 가지의 장점에도 불구하고 나는 동반자가 있는 여행보다 혼자 하는 여행을 더 즐긴다. 이는 아마도 내가 여행을 하는 목적 때문일 것이다.
나는 여행을 '쉬기 위해서' 한다. 여행지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는 것 역시 쉼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고, 여행지의 풍경을 돌아보는 것 역시 하나의 휴식 방법이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거나, 사람과 일에 치였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지금, 여기'를 떠나는 것, 즉 여행인 것만 봐도, 나의 여행은 주로 휴식을 위해 구성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여행 계획을 세우지 않는 편이다. 최소한의 것, 왕복 교통편과 첫날의 숙소 정도를 미리 준비해 두는 정도일까. 여행기간이 짧으면 숙박을 모두 정하고 출발하기도 하지만,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숙소는 그때 그때 해결하려고 한다. 여행이 휴식이 되려면 여행을 계획하는 데도 스트레스가 없어야 하고, 여행 중에는 더더욱 없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계획은 없는 것이 좋다.
동반자가 있는 여행에서는 이런 것이 쉽지 않다. 우선 여행 스타일을 먼저 맞추어야 한다. 여행 동반자가 어떤 여행을 원하는지에 따라서 계획을 세우느냐 마느냐도 달라지기 때문이다.
일전에 쓴 엄마와의 여행기에서처럼, 엄마와 여행을 하려면 모든 것이 출발 전에 완벽히 기획되어야 했다. 현지에서의 돌발 상황을 최소한으로 해야 했다. 엄마는 그런 여행을 좋아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연인과의 여행에서는 연인과 보낼 '로맨틱한 시간'이 중요했다. 그렇기 때문에 연인과 함께 밤을 보낼 만한 좀 더 나은 숙소, 좀 더 나은 식당을 미리 골라서 대충의 스케줄을 짜야했다. 어느 정도의 돌발 상황은 이해가 되었지만, 스케줄대로 이루어지지 않으면 가장 먼저 스트레스를 받는 건 나이기 때문에 여행 내내 연인을 닦달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큰 스트레스는 뭐니 뭐니 해도 머니, 금전 문제일 것이다. 좋은 숙소, 좋은 식사는 보통 무시할 수 없는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친구와 함께 가는 여행은 이들보다는 비교적 자유롭다. 더군다나 오랜 친구들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원하는 것을 파악하기가 어렵지 않다. 물론, 함께 여행을 다녀와서 절교를 하게 되었다는 20년 지기 친구들의 사연을 곳곳에서 접할 수 있는 바, 글쎄, 추천하고 싶은 여행 동반자는 아닐 수 있겠다.
어쨌든 나에게도 기억에 남는 몇몇 여행 동반자가 있다.
내 오랜 친구인 '엘리 Ellie'는 용감하게도, 영어 한 마디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에서 나와 함께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더 늦기 전에 한 번 가야지!" 하고 외쳤고, 일 년 여 동안 준비기간을 거친 후에 함께 비행기에 올라탔다. 호주 시드니에서, 타즈매니아에서, 그리고 퀸즐랜드 주의 보웬에서, 우리는 때로는 같은 방을 썼다가, 따로 방을 쓰기도 하며 서로에 대해 더 깊이 알아갔다.
싸우기도 여러차례 싸웠지만, '오래된 친구'의 특권이자 특기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잘 풀어냈다.
엘리와 호주 와이너리에서 일했던 것이 제일 기억에 남는다. 호주 남단에 있는 타즈매니아 Tasmania 라는 섬의 론세스톤 Launceston 이라는 지역에 있을 때였다. 소위 세컨 비자라고 하는 세컨데리 워킹홀리데이 비자 Secondary Working Holiday Visa 를 받기 위해서는 특정 지역에서 일정 날짜를 채워 일을 해야 했는데, 그 때문에 론세스톤의 여러 농장에서 일을 했다. 체리 농장, 딸기 농장, 사과 농장, 그리고 와인 포도 농장. 그 중 와인 포도 농장의 일이 꿀 중의 꿀이었다. 운이 좋게 구했는데, 시급도 가장 좋았고 일도 가장 쉬웠다.
우리가 조셉 크로미 Josef Chromy 라는 와이너리에서 와인용 포도를 따는 일을 했다. 이 일을 하며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을 만났다.
앞서 말했듯, 엘리는 정말로 영어 한 마디 할 줄 몰랐던 친구였고 호주로 오기 전에 나와 약 한 달 정도 기본 문법을 공부했던 게 전부였다. 시드니에서 지내면서 내 제안으로 어학원을 등록해 한 달 여 가량 다니긴 했지만, 그게 그의 영어 실력을 비약적으로 증폭시켜주진 않았다. 다만 내가 가장 우려했던 '외국인 공포증'을 없애는 데는 한 몫 했기 때문에, 외국인이 다가와도 더 이상 우물쭈물하며 시선을 회피하지 않는 정도까지는 극복을 한 상태였다.
그런 상황에서 론세스톤에 있는 호스텔에 묵으며 농장 일을 했는데, 기대했던 것 만큼 외국인 비율이 높지 않아 아쉬워하던 찰나 와이너리 일을 시작했다. 그리고 엘리는 말 그대로 물 만난 고기처럼 날아다니기 시작했다.
원래도 활발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이긴 했지만, 조셉 크로미에서 함께 일했던 모든 동료들이 '엘리'를 사랑스러운 아이로 기억하도록 만든 것은 그만의 능력이었을 것이다. 영어에 대한 부족한 자신감도 떨치고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전부 하지는 못해도 용기있게 외국인 친구들과 영어로 먼저 대화하려고 나서며, 다정하게 안부를 묻던 모습들이 내게는 너무 인상적이었다. 자신의 감정 표현이 분명한 것 같으면서도 어딘가에는 소극적이고 소심한 모습이 있었는데, 그런 소심한 모습은 거의 찾아 볼 수도 없었다.
그렇게 오래 봐 왔던 친구였는데 어쩐지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모습을 찾아낸 것 같아 신기한 기분이었다. 엘리와 호주에서 있었던 일들은 모두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기억으로 평생 남을 것이다.
그리고 여행지에서 나의 사진을 너무 잘 찍어준 '맷 Matt'도 기억에 남는다. 일본 하카타에 혼자 여행을 갔다가 게스트하우스에서 우연히 만난 맷은, 이후 한국으로 여행을 갈 계획이라고 하였다. 한국에서 두 번 더 다시 만났는데,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기억이 잘 나지는 않았지만, 자기 얼굴만큼 큰 카메라를 들고 다니며 정말 열심히도 내 사진을 찍어 주었다. 덕분에 몇 년째 우려먹는 인생 사진도 건질 수 있었다.
일본 하카타에서 하루 정도 함께 여행을 다녔고, 한국에서는 내 고향과 경주에서 함께 여행을 다녔다. 그렇게 단 세 번의 만남 후에 맷은 유럽을 여행하고 자신의 고향 미국으로 돌아갔는데, 몇 달 전에 다시 중국으로 돌아가 영어 선생님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재미있는 것은, 맷과 내가 만난 건 단 세 번이지만 그는 나에게 '좋은 감정'이 있다며 관계를 발전시키고 싶어 한다는 것이었다. 나에게 '그린카드'(미국 영주권)를 줄 수 있다면서.
이 점만 빼면 그는 여행 동반자로 꽤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이 일련의 온라인 구애 과정 탓에 다시 한번 그와 함께 여행을 하고 싶은 마음은 없어졌다.
작년 11월엔 가족여행으로 대만을 다녀왔다. 이 여행에 대해서는 정말 너무 할 말이 많은데 간단히 말하자면, 나에게 '가족'은 여행 동반자로서 가장 최악이다.
딱 하나 좋았던 것은 아빠의 돈으로 다녀온 여행이라서, 금전적인 부담은 없이 좋은 숙소에서 비교적 몸이 편안한 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다는 것 정도였달까. 20대 자녀들이 있으니 이때야말로 자유여행을 할 수 있는 기회라며, 아빠는 자유 여행을 고집하셨다. 나는 약간의 커미션을 뜯어 낼 요량으로 여행 기획을 자처하고 나섰는데, 이게 여행 전과 여행 기간 내내 나를 고생시킬 거라는 생각을 충분히 하지 못했다. 몇십 만원의 수고비 같은 돈과 여행지에서 환히 웃고 있는 부모님과 나, 찌푸린 남동생이 함께 찍힌 사진들을 건졌던 여행이었다.
올해의 여행은 2월 중순에 홀로 제주도를 다녀온 것으로 열었다. 올해 혼자 몇 번의 여행을 다녀올지, 혹은 누군가와 함께 다녀오게 될지 아직은 알 수가 없지만, 그래도 다가올 여행들을 그려보며 기대를 안 할 수가 없다. 그리고 정말 가끔은 여행지를 함께 할 동반자를 기대하기도 한다.
*주 1회 연재 목표입니다.
*본 에세이에 쓰인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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