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여행의 환상

'정상 가족'의 여행이란

by 희연

나는 꽤 높은 확률로 나의 가족에 대해 이야기할 때 우울해지곤 한다. 많은 사람들에게 "나는 부모님께 사랑받으며 자라지 못했어."라고 어필하기도 하지만, 그것은 결코 사실이 아니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이유가 있어서 가족과 나의 관계를 설명하는 게 어려운데, 간단하게 말하면 '사이가 좋지는 않다'.

가족들과 내 사이가 좋지 않은 까닭은 역시 내가 너무 잘 교육받았기 때문이라고 밖엔 설명을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가정 내의 불평등을 나의 언어로 담아낼 수 있게 된 탓에 부모님과 언성을 높이게 되었고, 일찍부터 독립하는 방법을 알았기 때문에 내게 가해지는 부당한 처우에 대처할 수 있었다. 어리고 똑똑했지만 현명하지는 못했다. 자꾸 가족을 향해 날 선 말을 하고, 고집을 부렸다. 내 성격은 모두 부모님에게서 온 것이라 우리는 서로를 몰아세우고 내세웠다. 그래서 사이가 좋아질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제 나는 부모님과 좋은 사이가 될 수 있게 노력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시작할 정도로 나이를 먹었다.

부모님이 어린 시절의 나에게 대했던 학대에 가까운 행동들을 정당화할 수도 없고 나도 부모님의 그 행동들을 용서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럼에도 좋은 사이가 되고자 마음먹기 시작한 것은 '그래도 가족이니까.'라는 생각에서 온 것은 절대 아니다. 부모로서의 엄마와 아빠를 이해하게 된 것도 결코 아니다. 각 인간의 개채로서 엄마와 아빠를 재조명하기 시작했을 뿐이다. 여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내가 우리 가족을 이런 식으로 묘사하긴 하지만, 어릴 적에 우리 가족은 꽤 '평범한 가정'이었다. 우리 사회가 규정하는 평범하고 정상적인 가족의 틀에 아주 딱 알맞게 들어가는 가족. 아빠가 바깥일을 하며 돈을 벌어오고 엄마가 집에서 살림과 육아를 도맡아 했다. 자녀들은 그들의 노고를 비웃기라도 하듯 가정에 소소한 풍파를 가져왔는데, 그것마저도 매우 전형적인 사건사고들이라서, 그야말로 '평범'의 틀을 벗어나 본 적이 없었다.

주변에 온통 이런 가족들 뿐이니까, 그냥 다들 이렇게 사는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다들 아빠가 돈 벌어 오고 엄마가 집안일하고 자식들은 부모의 말을 안 들으며 소란을 일으키지만, 그래도 저녁 식사 시간이면 도란도란 티브이 앞에 식탁을 펴 놓고 얼굴 마주 보며 밥을 먹고, 주말이면 가까운 곳에 놀러 가고, 그러니까 또 일 년에 한두 번쯤은 먼 곳으로 몇 박 며칠 짜리 여행을 다녀오기도 하고. 모두가 이런 삶을 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의 세계가 딱 고만큼 일 때는 딱 고만큼 정도만 생각했다.


아빠의 직장이 튼튼하고, 또 봉급이 꽤 많은 편이라서 누릴 수 있는 호사라는 것을 알게 된 것은 내가 성인이 된 후였다. 다행히도 나는 그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지만, 불행히도 나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에 불평하는 입을 가졌다. 아, 이것도 내가 가족과 사이가 '좋지 않은' 이유 중에 하나일까.


어린 시절 가족들과 떠났던 여행 중에는 이렇다 하게 기억에 남는 순간들이 별로 없다. 너무 어렸거나, 실은 너무 일상과 같아서 기억할 만한 가치가 없다고 생각했던 걸지도 모른다.

이따금 고향 집에 내려가 사진첩을 뒤적일 때면 낯선 곳에 낯선 모습으로 서 있는 내가 있다. 기억 속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사진으로 남아버린 추억들이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추억들이겠지만, 그런 것들을 만들어주고자 노력했던 그 시절의 나의 부모님께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여행들은 어쨌든 조금씩이나마 나의 세계를 넓혀주고 있었다.


처음 비행기를 탔던 기억은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전에 쓴 비행기를 처음 탔던 날에 등장한 바로 그 날이다. 우리 가족과 친한 다른 가족과 같이 떠났던 제주도 여행이었는데, 난생처음 비행기를 탔고 난생처음 말도 타 보았다. 티브이에서 보았던 '도깨비 언덕'이라는 곳에도 가 보았고, 사진첩 같은 데서나 보던 성산 일출봉을 헐떡이며 올라가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처음으로 "책과 티브이에서 본 곳들을 내가 정말 가 볼 수도 있겠구나!" 하고 깨달았다.

여름에 계곡으로 놀러 가서 캠핑을 했던 기억들도 있다. 텐트를 어떻게 치면 되는지 알려주는 아빠, 집에서는 결코 부엌 근처에도 가지 않았지만 캠핑장만 가면 나서서 요리를 한다고 수선을 떠는 아빠, 어떤 상황에서도 '아빠 다움'을 보여주려고 했던 아빠.

그러고 보니 엄마는 어땠더라?


가족여행 중에 엄마는 항상 조수석에 앉아서 지도를 읽으며 아빠의 내비게이션이 되어주셨다. 그렇지만 지도를 읽는 일은 매우 어렵고 힘들어서 엄마는 종종 길을 놓쳤으며, 아빠는 화를 내며 차를 국도 한 편에 세워두고 홀로 지도와 싸움을 하곤 했다. 엄마와 옥신각신 하며 누가 맞았네 틀렸네 했지만 결국 운전은 아빠의 몫이었다.

결국 엄마는 내비게이션이 되길 포기하고 아빠 옆에서 간식거리를 챙겨주기 시작했다. 과자, 과일, 물, 닥치는 대로 아빠의 입에 밀어 넣어주셨다. 가끔 뒷좌석으로 과자 봉지를 내밀어 주시기도 했고, 정말 아주 가끔은 코를 골며 주무시기도 했다.


뒷좌석에서는 똑바로 앉아기만 하는 것을 지겨워했던 개구쟁이가 둘이나 있었다. 앞좌석과 뒷좌석 사이의 빈 공간에는 에어매트가 들어가 있었다. 체구가 크지 않았던 꼬마 아이 둘은 넓은 뒷좌석에서 이리저리 뒹굴거리며 게임도 하고 싸우기도 하며 시간을 보냈다. 창 밖을 바라보며, 누구나 하던 "아빠, 달이 자꾸 쫓아와."하는 외침도 기억이 난다.

가장 즐거웠던 추억은 아마도 뒷좌석에 거꾸로 누워 네 발을 등받이에 가지런히 올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지어냈던 것이 아닐까 싶다. 뒤차의 운전자가 보면 제 손바닥만 한 발바닥이 이리저리 움직이는 걸로 밖엔 안 보였겠지만, 네 발바닥은 부산히도 움직이며 서로를 사랑하기도 하고 서로를 증오하여 싸우기도 했다.


이제는, 딱딱한 돌바닥 위에 침낭을 깔고 자는 것보다 푹신한 호텔 침대를 원하게 된 부모님과, 더 이상 말을 섞지 않게 된 자녀들이 남았다. 아빠는 드디어 집에서도 요리를 하시기 시작했고, 엄마 대신 지도를 읽어주며 다정한 목소리로 안내하는 내비게이션이 생겼다. 뒷좌석에 앉으면 공간을 꽉 채울 만큼 퍽 자란 두 자녀들은 거꾸로 누워 발을 뻗어 이상한 이야기들을 지어내지 않는다. 밤에 뜨는 달은 여전히 우리를 쫓아오는데, 열몇 살 남짓 되었던 어린아이들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예전과 같은 가족 여행은 아마 앞으로는 없을 것이다. '정상 가족'이라는 틀에 구겨 넣듯 들어가 있던 우리 가족은, 다른 모든 가족들이 으레 그렇듯 자녀의 성장과 동시에 튕겨져 나왔고 각자의 길을 향하게 되었다.


작년에는 큰 마음을 먹고 대만으로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 첫 가족 해외여행이었고, 글쎄 앞으로 다음번이 있을지는 모르겠다.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 가족 해외여행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어린 시절의 추억들처럼 도란도란 떠나는 여행은 앞으로 영영 오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안고 돌아올 수 있었다.


'정상 가족'의 환상이 깨졌다. 성인이 된 후에는 가족으로부터 심적인 독립을 하기 위해 고군분투했고, 정상 가족의 환상을 깨고 나서는 꽤 수월했다. 나는 그랬다. 그래서 대만으로 다녀온 가족 여행도 즐거운 기억만 남길 수 있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고, 부모님도 나도, 그리고 내 남동생도 많이 변했다. 결코 예전과 같을 수는 없으니까, 그냥 좋았던 추억들만 남겨두고 싶다. 그것이 가족을 향한 긍정적인 이미지를 만들어준다면, 더더욱 남기고 싶다. 그러니까 '정상 가족'으로서의 우리 가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빠의 노력과 엄마의 미소와 나의 웃음소리, 그리고 앙증맞던 내 남동생의 발바닥 같은 것들을 위해서. 결코 기억해 낼 수 없는 여행지에서 웃으며 박제된 가족사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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