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 C.S.Lewis -

by 리오 Dec 29. 2020

10. 귤을 골라내며

여기 사람 있어요

벌써 2020년이 끝나갑니다. 

누군가는 일을 하다가 업무 툴을 다 정리하기도 전에 코드가 뽑혀버린 기분이라고 하더라고요. 

올해 어떠셨나요? 수많은 계획이 멈추거나 취소되는 상황이 저처럼 두렵지는 않았나요?  


저는 한 푼이라도 더 벌어보고 싶어서 몸을 바삐 움직였답니다. 

살면서 이렇게 많은 일을 하는 건 처음이었어요. (당연하게도 이게 시작이겠지만) 

무리라는 걸 알면서도 자는 시간을 쪼개가며 수십 번 기차에 올랐고, 노트북을 들었다가, 카메라를 들었다가,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네요. 


그와 별개로 올해는 유독 아픈 날이 많았습니다. 

몸이 아파서 마음이 아팠던 건 아니고요. 

자존심에 꺼내지 않고 있다가 상해버린 마음과 어렵게 뱉었다가 독이 되어버린 이야기, 

원래 그렇고 그런 것들 사이에서 참 많이도 밤을 지새웠네요. 

머리로는 몸과 마음의 건강을 추구하려 하는데 왜 마음은 그토록 다루기가어려울까요?  



이번 달 초, 지은이가 귤을 보내주었습니다. 

10kg 상자에 저를 응원하고 아끼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었어요. 

그 애정이 너무 고마워 집에서도, 사무실에서도 한가득 귤을 쌓아놓고 먹었습니다. 

그러다 해가 뜨기 직전에 집에 들어가는 날이 이어지기 시작하고, 

상자에 미처 손을 대지 못 한 채 눈으로만 인사하던 즈음 무른 귤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아시겠지만 무른 귤에 곰팡이가 생기는 건 순식간입니다. 

이어 바로 곁에 있는 귤에 곰팡이를 마음껏 옮기지요. 

그날 퇴근후 귤 상자가 변할까 두려워 바로 무른 귤을 골라냈습니다.  


아, 마음도 이렇게 챙겼어야 했는데 말입니다. 

내 마음을 퍼렇게 멍들일 것들을 살펴보고 골라내면 됐는데. 

저는 그것도 모르고 내내 방치해버렸던 거예요. 

저는 마지막 남은 귤 한 바구니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내년에는 상한 귤을 그대로 두지 말아야겠다고, 상한 귤 상자로는 어느 싱싱한 귤도 담을 수 없다고요. 


당신의 상자에는 상한 귤과 싱싱한 귤이 얼마나 있었나요? 

혹시 저처럼 상한 귤이 마음을 뒤덮진 않았나요? 

만약, 만약 그랬다면 저와 함께 상자를 비우도록해요. 

비우며 얘기합시다. 

올해 참 이것저것 담느라 고생하셨다고요.  


상자의 먼지를 털며, 

리오 드림

리오 소속공장공장 직업기획자
구독자 7
매거진의 이전글 퇴근의 쓸모 / 마지막 편. 올 한 해도 살았다

매거진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