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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오 Jun 05. 2020

<오의 의미> 2. 퇴근길, 누군가가 따라왔다.

그날도 야근이었다. 밤 열두 시쯤이었을까? 나는 사무실에서 나와 십 분 거리의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쩐지 심심해서(사실 무섭기도 했고)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요즘의 안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당시 대학생인 친구는 전화만 하면 늘 소소한 이야기를 풀어내곤 했다. 복학생으로서 조별 과제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교수님이 기말고사의 난이도를 너무 쉽게 냈다든지. 에어팟을 통해 쉬지 않고 그의 이야기가 흘러나올 때,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사람의 감각이 어찌나 무서운지. 나는 순간 누군가가 따라오는 듯한 기분을 느꼈고, 바로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한 아주머니가 멀뚱히 서 있었다. “야, 잠깐만. 누가 나 따라오는데?”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이상한 사람 아니냐고 끝없이 묻던 친구의 목소리가 귓속에 웅웅 울렸다. 나는 나보다 체격이 작은 아주머니를 보고 일단 안심하고(내가 힘이 더 쎌 거 같아서) 그에게 왜 나를 쫓아오느냐고 물었다.


아주머니는 우리 집이 어디냐고 답했다. 이어 우리 집에 같이 가자고 했다. 황당해진 나는 “싫어요. 돌아가세요.”라고 몇 번을 말했으나, 그는 계속 우리 집에 가겠다고 말했다. 이대로 집에 가면 분명 따라올 것이 뻔하기에 계속 따라오시면 경찰에 신고하겠다 했더니, 아무도 없는 골목길을 가리키며 “저기 사람 있는 거 같지 않아?”라고 딴소리를 했다. 미친 사람 아니냐며 도망가라는 친구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이 시간에 사람이 어딨냐고,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했더니 이번엔 언덕 위를 가리키며 또다시 “저기 사람 있는 거 같지 않아?”.


순간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경찰에 신고를 해야 할까? 뭐라고 신고하지? 직접적으로 내게 해를 가하지 않는다면 처벌받지도 않는다고 하던데. 집으로 뛰어갈까? 내가 어디로 들어가는지 보지 않을까? 아, 어떡하지?


밤 열두 시. 원래 살던 서울 같으면 빛나는 편의점, 운동하는 사람과 강아지, 술집에서 나온 사람들을 마주칠 시간이지만 목포는 그렇지 않다. 특히나 우리가 살고 있는 원도심은 주민들의 연령대가 높아 밤 아홉 시만 지나도 고요하기만 하다. 차 아래서 쉬고 있는 고양이와 눈만 마주칠 뿐이다.


다시 돌아와서,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의미 없을 거라 판단한 나는 주민들이 함께 쓰는 단톡방에 카톡을 남겼다. ‘우진장 현관 비밀번호 뭐예요?’ 우진장은 우리 집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 괜찮아마을의 쉐어하우스다. 노란색 외관이 빛나는 그 집에 친구들이 몇 살고 있었다. 진동이 울렸다. 분명 누군가는 자지 않고 있을 거라 생각하고 떨리는 손으로 답장을 확인했다. 동우 씨가 일 분도 채 되지 않은 시간에 답장을 했다.


나는 안도하며 아주머니에게 갈 테니 따라 오지 말라 말하고 우진장을 향해 걸었다. 빠른 걸음으로. 우진장 현관문 앞에 섰을 때였다. 뛰는 소리가 나서 뒤돌아보니 아주머니가 불편한 다리로 절뚝이며 내게 뛰어오고 있었다. 다급한 마음에 비밀번호를 빨리 치고, 문을 열고, 현관문을 닫았다. 반투명한 현관문 앞에 아주머니가 멀뚱히 서 있었다.


어쩐지 오싹해 이층으로 올라가니 동우 씨가 무슨 일이냐며 물었다. 그간의 일을 알려주고 함께 창밖을 바라봤다. 아주머니는 나와 처음 마주친 곳에서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동우 씨는 차로 데려다주겠다며 조금 있다 나가자고 했다. 10분쯤 지나서 다시 창밖을 바라보니 아주머니가 없었다. 차로 1분도 걸리지 않는 거리지만, 혹시나 싶어 뱅뱅 돌아 집으로 갔다.


누군가는 우리나라의 치안이 얼마나 좋은지에 대해 열을 올리며 이야기한다. 그렇게도 치안이 좋은 세상에서 어떻게 조심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하다가, 안전을 위협하는 사람들을 미워하다가, 이내 한정된 안전함에 대해 생각한다. 날 쫓아온 사람이 남자였다면, 나보다 덩치가 컸다면, 한 명이 아니라 여러 명이었다면. 주변에 사는 친구들이 없었다면.


늦은 시간에 불안한 마음으로 이동해야 하는 것이 아직 버겁고 슬프다. 그렇지만 슬픔이 커질 때 언제든 부를 사람이 있고, 꾹꾹 눌러 담은 이야기를 들어주고, 그저 유달산과 목포대교 앞을 걸어줄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어쩐지 힘이 된다. 함께 놀다가 쉐어하우스에 사는 친구들이 혼자 사는 친구들을 차례로 집에 데려다주고, 씩씩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웃음이 나기도 한다. 비대면 서비스가 늘어나고, 모든 것을 전자식으로 하는 세상에서 이토록 사람과 부대끼는 마을에 살다니. 서른 명의 가족 같은 친구가 생겨버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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