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은 유독 날이 좋았다. 암막 커튼을 뚫고 나온 햇빛이 어서 뭐라도 하라는 듯 강하게 방을 밝혔다. 눈을 껌뻑껌뻑 뜨며 조금 더 잘까 고민하다가, 느리게 몸을 움직여 나갈 준비를 했다.
목포에 내려오기 전, 건축과 인테리어를 다루는 잡지사에서 기자 생활을 하던 나는 주로 한국의 잘 지어진 건물을 취재하러 다녔다. 화려하고 웅장한 곳부터 섬세하고 배려 깊은 곳까지 하루에 세 군데도 넘게 취재를 하는 날이면 너무나도 피곤했지만 더욱 집에 들어가기 싫었다. 맛집 촬영 감독이 집에 가는 길에 삼각김밥을 사 먹는다면 이런 기분일까? 아무리 애를 써도 원룸을 벗어날 수 없던 서울 생활이 막막하기만 했다.
그 지난한 생활 때문인지 지금은 방 세 개가 있는 집에 살고 있다. 옥상도 혼자 쓸 수 있는 집이다. 종일 집에 있어도 지루하지 않다면 거짓말일까? 그렇지만 나는 부엌과 거실, 자는 곳과 책 보는 곳이 따로 있는 집을 거짓말처럼 구했다. 서울의 월세 반도 안 되는 가격이다.
그렇게 얻은 집에서 영화와 책을 마음껏 보고, 친구들을 불러 식사를 하기도 하고, 옷만 있는 드레스룸을 만들기도 하는데, 요새 가장 열심히 하는 일은 식물을 기르는 것이다. 애인이 사다 준 몬스테라와 아직 손바닥만한 극락조에 물을 흠뻑 주고 나서 옥상에 오른다. 옥상에는 시장에서 사 온 토마토와 오이, 상추, 부추가 자라는 중이다.
초등학생 때 그랬던 것처럼 매일 예쁘다 – 예쁘다 – 하지도 않는데 잘 자라주는 식물들이 기특하다. 늘 그 자리에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 성장하기만 하는 이들을 보면 ‘나도 말을 줄이고 묵묵하게 커야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왠지 먹여 살릴 식구들이 늘어난 기분이다. 가끔은 책임져야 할 일들이 삶에 원동력을 주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