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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오 Jun 05. 2020

<오의 의미> 4. 힘이 되는 시간

지난 밤 한나 씨가 나를 안으며 말했다. “이런 말 어색하지만… 살아있길 잘했다!”


그 머쓱함과 벅참이 동시에 느껴지는 목소리에 나도 왠지 모르게 조금 더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은하수를 보러 간 날의 이야기다.


목포에 살면서 알게 된 사진 동호회가 있다. 드문드문 단톡방을 확인하며 간간히 리액션만 하곤 했는데, 누군가의 별 사진을 찍으러 가자는 말에 냉큼 함께 가겠다며 답장을 보냈다. 그리고는 사무실에 있는 친구들에게 별을 보러 가지 않겠냐며 물었다. 그렇게 네 명이 모여 출사지 보성으로 향했다.


맑은 날답게 눈으로 은하수가 보였다. 왼쪽을 봐도, 오른쪽을 봐도 쏟아질 듯 별이 많았다. 챙겨온 돗자리를 펴고 누워 가만히 별을 바라봤다. 그런 날은 꼭 눈앞에 우주가 가득 보이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를 별들이 반짝이는 모습을 보면 조금 아득한 기분이 들었다. 누군가가 눈을 잠시 감았을 때 별똥별이 떨어지면 또 다른 누군가는 호들갑을 떨며 소원을 빌기도 했다.


나는 사실 그날 한 개의 별똥별도 보지 못했다. 그렇지만 기분이 좋았다. 다섯 개의 별똥별을 봤다며 들떠있는 친구의 모습, 잘 쓰지 않는 카메라에 처음으로 은하수를 담아 행복해 보이던 친구의 모습에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시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등 뒤로 유성 하나 길게 흘러

“앗 별똥별이다” 하니

“에잇, 난 못 봤는데…

근데 당신이 보았으면 됐어”한다


내가 먹은 것으로

이녁 배가 부르고

내가 본 꽃으로

제 가슴에 천국을 그리는 사람

복효근-이녁


분명 마음에 품고 살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잊어버린 시. 이 시가 기억나자마자 잃어버린 물건을 찾은 기분이었다. 비록 나는 못 봤지만, 나 대신 당신이 봤으면 됐다는 마음으로 촬영을 끝냈다.


이 글을 보는 당신에게도 그날의 하늘을 선물하고 싶다. 몇 개의 별똥별이 담겨있는 사진이다. 얼마나 많은 우연이 우리를 닿게 했는지 가늠하며, 이 밤하늘이 당신에게도 힘이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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