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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라키 Mar 17. 2023

똑바로 살기

스파이크 리 영화에 퍼블릭 에너미 노래가 들릴 때

Public Enemy - Fight the Power


Got to give us what we want

우리가 원하는 걸 줘야만 해

Gotta give us what we need

우리가 필요한 걸 줘야만 해

Our freedom of speech is freedom or death

표현의 자유는 자유 아님 죽음

We got to fight the powers that be

우린 권력들에 맞서야만 해


영화 <똑바로 살아라> 오프닝 시퀀스


 한 여성이 무대 위에서 춤을 추는 것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뉴욕 외곽에서 흔히 볼 법한 주택 거리를 배경으로, 106 BPM의 힙합 비트에 맞추어 절도 있게 몸을 흔든다. 그녀가 입고 있는 미니스커트는 조명의 색과 유사하다. 관능적이고 정열적인 붉은색 계열이다. 음악과 색 그리고 춤으로 구성된 하나의 마디가 연속적으로 변주되어, 조화롭게 어울려진다.


 스파이크 리의 첫 장편 영화 <똑바로 살아라> (Do the Right Thing)의 오프닝 시퀀스는 3분 45초나 되는 길이만큼 인상적이다. 허리가 끊어지도록 춤을 춘 로지 페레즈는 스파이크 리가 직접 연기한 무키의 아내 티나 역을 맡았다. 그녀와 함께 호흡을 맞춘 노래는 과거 미국 대중음악 시장을 뒤흔든 힙합 그룹 퍼블릭 에너미의 “Fight the Power”다. 


 스파이크 리는 퍼블릭 에너미에게 직접 부탁했을 정도로 주제곡에 신경을 썼다. 영화에서 블랙 뮤직은 8,90년대 흑인 공동체를 대변하는 역할을 한다. 퍼블릭 에너미의 반항적인 음악과 로지의 춤사위는 감독이 영화로 보여주고자 하는 다양한 묘사 중 일부다. 


 우선 퍼블릭 에너미가 당시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알 필요가 있다. 래퍼 척 디와 플레이버 플래브 등으로 구성된 힙합 그룹 퍼블릭 에너미는 1980년대 후반에 흑인 공동체의 분노와 응어리를 랩으로 표현했다. 화살은 정부와 미디어로 향했다. 정부는 흑인의 삶에 별다른 신경을 쓰지 않으며, TV와 라디오는 광고 감소를 이유로 흑인의 목소리를 담지 않는다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흑인' 라디오도 마찬가지였다. “흑인 라디오는 너무 흑인만을 위한 미디어가 되는 것을 우려한다”라고 말하며 래퍼 척 디는 문제시했다. 누구도 자신들의 목소리를 대변할 수 없다면 음악을 통해 직접 말하기로 결심했다. “랩은 블랙 아메리카의 CNN이다.” 그는 젊은이들이 주도하는 미디어로 힙합(랩) 음악을 선택했다. 분열된 흑인 공동체를 하나로 뭉치게 하고, 정부나 미디어에서 다루지 않는 문제를 음악을 통해 드러내겠다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다시피 “Fight the Power”는 흑인 공동체를 억압하는 모든 힘에 대한 저항이다.


피노와 무키는 허구한 날 다툰다


 영화는 1980년대 뉴욕 브루클린 베드퍼드-스타이베선트에 살고 있는 이들에 관한 이야기다. 무키는 이탈리아 이주민 살이 운영하는 피자 가게에서 배달을 하는 흑인 청년이다. 자신이 부양해야 하는 아내와 아들이 있지만, 그는 늦장을 부리면서 책임감 없이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살의 장남 피노는 그런 무키의 태도를 못마땅해 한다. 피노는 이탈리아인이 주로 사는 지역이 아닌, 흑인이 대부분인 곳에서 25년간 장사를 하고 있는 아버지를 원망한다. 


 무키의 동네 친구인 버깅 아웃은 일을 하지 않고 빈둥거리지만 공동체에 대해서 만큼은 할말이 많다. 버깅 아웃은 피자 가게에 걸려 있는 유명인 사진을 문제 삼는데 어째서 흑인 유명인 사진을 걸지 않느냐고 주인장 살에게 따진다. 살은 자신이 직접 일구어 논 피자 가게에 대한 자부심으로 가득한 인물이다. 버깅 아웃과 말싸움을 벌이고 그를 쫓아낸다.


서로 다른 인종에 대한 적대감은 디폴트다


 영화는 인종 간 신경전으로 가득하다. 백인과 흑인뿐만 아니라 거리에서 라틴 음악을 하는 푸에트-토리코인과 마트를 운영하는 한국인도 등장한다. 한 거리에 살고 있지만 피부색이 다른 이들에게 욕설하는 장면에서 오랜 세월 동안 서로에 대한 원망이 얼마나 쌓였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여기 또 다른 흑인 인물이 있다. 그는 거대한 체구에 꼬마 아이 크기의 붐박스를 들고 거리를 돌아다닌다. 그곳에서는 퍼블릭 에너미의 “Fight the Power”만이 시끄럽게 흘러나온다.


라디오 라힘이 전하는 '사랑과 증오'


 라디오 라힘은 퍼블릭 에너미와 래퍼 척 디의 철학을 공유한다. 그는 이름대로 자신이 ‘라디오’가 되는 것을 자처한다. 마치 라디오 방송이 전파를 통해 전국으로 뻗어나가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게 라힘은 두 발로 걸어 다니면서 “Fight the Power”의 메시지를 베드퍼드-스타이베선트 골목 곳곳에 퍼트린다. 


 라힘의 모습을 살펴보자. 듀얼 카세트 테이프 기능과 두 개의 스테레오 스피커가 탑재된 스피커 옆면에는 퍼블릭 에너미의 로고 스티커가 붙어 있다. 라힘은 ‘BED-STUY / DO OR DIE’라는 문구가 프린트된 흰색 티셔츠를 입고 있다. ‘DO OR DIE’는 미국 내 흑인 공동체, 특히 마약과 폭력이 빈번하였던 베드퍼드-스타이베선트의 이미지를 바꾸려는 움직임에서 나왔다. 열심히 살거나 성공해서 집단을 긍정적으로 바꾸지 않는다면 그것은 실패와 다름없다는 뜻에서다. 라힘이 목에 걸고 있는 펜던트는 아프리카를 상징하는 빨강, 노랑, 초록으로 되어 있다. 공동체의 정체성을 잊지 않기 위한 표식이다. 그의 옷차림과 그가 말하는 방식, 그가 매번 트는 음악에서 라힘이라는 캐릭터는 활보하는 선전물이다.


모든 갈등이 살의 피자 가게에서 터지고야 만다


 감독은 영리하게도, 라힘과 음악을 선전을 위한 도구로만 사용하지 않는다. 영화 속 테마 역할을 하는 “Fight the Power”는 분명 저항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데 말이다. 영화 초반에 라힘은 자신의 붐박스와 음악을 무기로 사용하여 몇몇 싸움에서 승리한다. 어떠한 힘에도 굴하지 않고 싸우겠다는 의지를 보인다. 하지만 싸움 여러 복합적인 결과를 낳는다. 


 우선 살의 피자 가게에서 그의 의지는 시험대에 오른다. 자신의 가게 안에서 노래를 틀지 말라는 살의 요구를 라힘은 거부한다. 계속되는 살의 호통에 일단은 한발 물러서지만, 그날 밤 불만에 가득 찬 버깅 아웃과 함께 들이닥친다. 버깅 아웃은 살의 피자 가게를 보이콧하려는 자신의 목적을 극대화하기 위해 라힘을 이용한다. 그들의 요구는 이렇다. ‘가게 벽에 흑인 유명 인사의 사진을 붙여라, 노래를 계속 틀 수 있게 해라’. 다시 시작된 살과 두 흑인 청년 간의 갈등에서 참극이 발생한다. 


 여기서 관객은 단순히 흑인 공동체의 입장을 볼 뿐 아니라 다른 인종의 모습을 통해, 보다 다각도로 상황을 마주한다. 그리고 힘을 저항하기 위해 이들이 선택한 방법에 대해 두 가지 물음을 갖게 된다. 그들이 저항하는 힘의 '대상'은 적절한가?, 그들의 저항 '방식'은 옳은가?


마틴 루터 킹 주니어(좌)와  말콤 엑스(우)가 악수하고 있는 사진


 이 질문은 영화의 제목인 <똑바로 살아라>의 ‘똑바로’와 그 본질을 공유한다. 무엇이 옳은 것이고 똑바로 사는 것인지는 곧이곧대로 재단할 수 없다. 두 명의 흑인 민권 운동가가 자신만의 답을 내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는 평화를, 말콤 엑스는 투쟁을 제시했다. 비록 둘 모두 암살로 생을 마무리했지만, 영화에서 스마일리가 들고 다니는 사진을 통해서 다시 태어난다. 


 영화에서 “Fight the Power”의 진가는 바로 이 부근에서 드러난다. 관객은 라힘과 노래가 등장할 때마다 그 에너지와 메시지에 그저 휩쓸리기보다는 어느 입장에만 치우치지 않고 상황을 바라보고 인식한다. 스파이크 리는 균형잡힌 연출로 퍼블릭 에너미를 단순히 영화의 프로파간다로 내세우지 않는다. 그리고 질문한다. 무엇이 똑바로 사는 것인가?


 “영화 속에서 ‘Fight the Power’를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모르겠어요. 라힘은 등장할 때마다 랩 음악을 트는데, 나는 거기에 맞는 주제곡을 원하였습니다.” 스파이크 리는 영화의 분위기를 담은 곡을 만든 척 디에게 감사를 표했다. “Fight the Power”는 분명 라힘이라는 캐릭터와 영화의 내용을 관통한다. 스파이크 리는 여기서 더 나아가 복잡하고 미묘한 세계를 창조한다. 영화는 단순히 흑인 공동체의 입장 만을 전달하거나 흑인 관객 만을 겨냥하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 “Fight the Power”가 얼마나 등장하는지 세어보자. 그 횟수가 늘수록 척 디가 외치는 구호에서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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