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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량 Jul 15. 2024

상일동 이야기 2

-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공간, 잊힌 시간과 그 가치에 관한 이야기

 당신은 몇 살인가. 집을 소유하고 있는가. 이런 무례한 질문을 던지며 생각해 본다. 이 질문이 무례하게 느껴지는 이유와 2024년 대한민국에서 내 집 마련의 의미를.


 부동산 이슈와 다양한 갈등 속에서도 안전한 보금자리를 지향하는, 어쩔 수 없는, 정당한, 이 인간의 욕구를 비난할 수는 없다.


 Abraham Maslow(1908~1970)는 욕구위계론을 제시한 미국의 인본주의 심리학자이다. 욕구위계론에서 인간의 행동은 다양한 욕구에 의해 유발되는데 이러한 욕구들은 위계적 구조를 이루고 있다고 말한다하위의 욕구가 충족되면 바로 상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 행동이 나타난다. 안전의 욕구의 상위에는 애정의 욕구가 있다.


안전의 욕구.


 이렇게나 아름다운 우리 집은 나와 가족의 안전 욕구를 완벽하게 충족시켜 주고 있었고, 어린 나의 관심은 애정의 욕구로 옮겨가기 시작했다. 생애 첫 기억이 말해주듯이 낯선 공간과 사람들은 자주 나의 안전 욕구를 위협했다. 우리 집은 그러한 위협으로부터 충분히 날 지켜주고 있었기에 차츰 상위의 어떤 욕구를 꿈꾸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이동이 쉽지는 않았다.                                            


   3살 터울의 남동생은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한 편이었다. 엄마는 늘 동생을 챙기느라 바쁘셨다. 그리고 엄마 역시 건강한 편이 아니셨다. 엄마가 아프실 때는 내가 동생을 돌봐야 했다. 애정의 욕구가 충분히 채워질 만한 형편이 아니었다. 약한 동생을 보살피고, 알게 모르게 엄마가 아프지 않을 수 있도록 도우며 받는 칭찬으로 나의 존재감을 확인했다. 대견하다는 이웃들의 격려와 동네의 정, 선생님들의 칭찬 같은 것들로 애정의 욕구를 채워 나갔다. 나는 내가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어렴풋이 여기면서 지냈던 것 같지만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들어내는 것에도 꽤 애를 쓰고 있었다. 



물건의 가치와 그 조건.

 

 엄마는 이모들에게 우리 동네가 살기 좋다며 이사 오라고 자주 권하셨다. 이모들은 고민하다가도 너무 변두리라면서 이내 이사를 포기하곤 했다. 물건의 가격은 수요와 공급의 법칙을 따른다. 변두리 아파트는 수요자들에게 매력적이진 않아서 대개 수요보다는 공급이 넘쳐났고, 그것이 꽤 오랫동안 변하지 않을 이 물건의 가치가 되었다.


 한결같던 조용한 동네는 내가 초등학생이 된 이후로 몇 년째 공사로 시끄러웠다. 바닥에 철판 같은 것들이 늘 깔려 있었다. 엄마는 이곳에 곧 지하철이 개통된다고 하셨고, 1995년 11월 15일, 500번 버스 종점 앞에 지하철 5호선이 개통되었다. 이제 우리 동네는 500번 버스 종점이 아닌 지하철 5호선의 종점, 상일동역이 된 것이다. 당시 나는 5학년이었는데, 담임선생님이 오늘 지하철이 개통되니 꼭 가보라고 해서 친구들과 구경을 갔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04010274?sid=102


 지하철의 개통이 5학년인 나에게는 어떤 편리함도 주진 않았다. 그런데 그때쯤부터였을까. 이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동네 곳곳에 건설사들의 광고지가 붙었다. 광고를 정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우리 집을 새집으로 바꿔 준다는 그런 의미 같았다. 엄마는 아파트가 오래되면 재건축을 하게 되고, 우리 아파트도 재건축을 위한 준비를 시작한다고 하셨다. 부모님은 매번 관리사무소 같은 곳에 가서 어느 건설사를 택할지 설명도 듣고 투표 같은 것을 하고 오셨다. 


 지하철의 개통은 오랫동안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던 공간에 생기를 불어넣었다. 나에게는 그 자체로 존재의 가치가 충분했던 상일동은 접근성과 편리성이라는 조건을 부여받음으로써 타인들에게도 그 가치를 증명해내고 있었다.


 그날부터 나 역시 멋진 새로운 집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저 포근하고 따뜻해서 좋았던 우리 집이 아닌, 남들이 보기에도 멋진 우리 집을 꿈꾸게 되었다. 내 새 방에 어떤 가구를 어떻게 넣을지 매일 구상했다. 중학생쯤 되면 아마도 107호 우리 집을 떠나게 될 것 같았다. 그리고 고등학생이 되면 우리 새집은 완공되어서 입주를 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가치와 그 조건.


 그러나 중학생이 되었는데도 우리 집은 재건축이 되지 않았다. 한때 소란스러웠던 동네가 잠잠해졌다. 언제쯤 된다더라 그런 소식만 간간이 들려왔다. 이제는 500번 버스는 사라지고 버스 종점 대신 5호선 상일동역이라는 지명이 모두에게 더 익숙해지고 있었다.


 우리 아파트는 3~7단지는 붙어있고, 1, 2단지는 큰길을 건너 떨어져 있었는데 나는 2단지에 있는 고덕중학교에 입학했다. 중학생이 되면서 조금 낯선 곳에 발을 딛게 되었고, 새로운 환경, 새로운 친구들과 만나느라 새집에 대한 열망도 조금씩 사라져 가고 있었다.


 고덕중학교는 우리 집에서 걸어서 25분 정도 걸렸다. 별다른 차편이 없는 길이었다. 그래서 2단지에 살던 효정이네 집에서 자주 신세를 졌다. 그리고 자주 함께 공부를 했다. 내 성적이 그전에는 어땠는지 모르겠다. 워낙 아무도 내 성적에 관심이 없었다. 중학생이 되어서 본 첫 시험 결과를 보고 좀 놀랐던 기억은 있다. 이제는 공부를 해야 될 때인 것 같았고, 함께 공부할 친구가 때마침 곁에 있었다. 우리는 열심히 했다.


 그렇게 3학년이 되었다. 당시에 우리 반은 공부를 잘했다. 나와 현주, 재덕이는 잘 어울리면서도 때론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그렇게 1년을 보냈다.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물어보는 재덕이를 보며 친구들은 김재덕이 널 좋아하는 거 아니냐고 물어왔다. 하지만 재덕이는 나보다는 내 성적에 관심이 많았음을 난 이미 알고 있었다.


 중학생이 되면서 엄마도 일을 하시게 되었고, 부모님은 점점 더 먹고살기 바쁘셨기 때문인지 나의 학교생활을 크게 궁금해하진 않으셨다. IMF였다. 선생님은 어느 날 IMF를 설명하시며 거의 울먹이셨다. 부모님이 내 성적에 관심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적이 오르니 전에 느껴보지 못한 쾌감 같은 것이 느껴졌다. 그 시절의 경험은 나를 조금 성장시켰던 것 같다. 성취감이 있었기 때문에 공부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9시만 되면 아빠는 늦게 자면 키 안 큰다면서 내 방 불을 끄러 오셨는데, 딸의 키보다는 성적을 걱정해 주는 아빠가 멋질 것 같다는 철없는 생각을 하곤 했다.


 부모님이 좋은 성적을 강요하지도 않으셨고, 스스로도 공부를 하는 것이 즐거웠으므로 그때 나를 움직인 원동력은 순수한 내적인 동기로 여겨졌다. 그러나 성인이 된 지금 다시 돌이켜 생각해 본다. 그것은 나의 진정한 욕망이었을까?


 당시 어린 동생을 돌보던 역할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부모님은 바쁘셔서 나를 봐주실 여력이 없었다. 좋아했던 우리 집은 점점 좁아지고, 낡아가고 있었지만 우리 가족은 새집으로 갈 형편이 되지 않았다. 그 어떤 것도 내 가치를 증명할 수 없던 시절이었다. 그래서 아무도 강요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스스로 성적을 내 가치의 조건으로 삼게 되었다. 


 인간은 성장과정에서 부모를 비롯한 중요한 타인과 상호작용하면서 자신이 특정한 행동을 할 때에만 소중하게 인정받는다는 가치의 조건(conditions of worth)을 습득하게 된다특정한 경험이 자신을 고양시키는지와는 무관하게 단지 타인에게 부여받은 가치 때문에 그 경험을 긍정적으로 또는 부정적으로 평가하게 된다.

 진정한 욕망과 가치의 조건에서 나온 욕망을 구분하기는 매우 어렵다가치의 조건은 그것이 자신에게서 나오든 타인에게서 나오든 수용받아야 한다는 전제조건이 있다그래서 가치의 조건은 항상 강압적이다.

                                                                                                                           - Carl Rogers(1902-19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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