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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량 Jul 15. 2024

상일동 이야기 4

-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공간, 잊힌 시간과 그 가치에 관한 이야기

 가치의 조건을 지니고 사는 일.

  2006년, 그렇게 두 번째 대학생이 되었다.


  2006년 이후로 상승세이던 부동산 시장은 점점 얼어붙어서 부동산의 가치가 반 이상 떨어졌다. 부동산이 호황일 때 재건축아파트는 훨씬 상승 폭이 크지만 불황일 때는 제일 먼저 타격을 입는다. 이제는 몇 년 전 가격의 반이 되었는데도 아무도 재건축에 투자하지 않는다. 


강남 재건축단지 "아 옛날이여!" - 아시아경제 (asiae.co.kr)


 그러나 보이는 가격과는 상관없이 1988년에도 2008년에도 나에게 여전히 상일동은 한결같은 공간이었다. 마음이 복잡할 때면 그곳으로 가서 동네를 한 바퀴 돌곤 했다. 그것은 무조건적인 애정 같은 것이었다. 변함없음이 나를 더 편안하게 만들었다. 낡으면 낡은 대로, 오래돼서 망가지면 망가진 대로 추억할 수 있어서 좋았다. 많은 사람들이 가치롭게 여겨도, 많은 사람들이 외면한다 해도 내가 측정하는 가치와는 별개의 문제였다.

2008년경 촬영한 고덕주공아파트, 이곳을 산책하는 것은 언제나 큰 위로였다.

 그렇지만 다수의 사람들에게 이 건물은 이익을 얻기 위한 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 그래서 그 가치는 유동적이다. 이것을 대체할 수 있는 대체재들이 많았고, 사람들이 ‘좋음, 바람직함’이라고 여기는 욕구를 충족시켜야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낡은 모습에 비해 인기가 좋던 재건축 아파트는 이제 가치를 잃은 것처럼 보였고, 가격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었다. 


 가치의 조건을 지니고 사는 일은 그 대가로 일정한 비용을 지불하게 만든다는 것을 이 낡은 건물도 증명하고 있는 셈이었다.



자기실현으로 가는 길.     

 인간의 삶은 궁극적으로 자기실현을 지향하고 있으나 많은 사람은 하위 동기의 좌절로 인해 자기실현동기가 활성화되는 수준의 삶에 이르지 못할 뿐이다.                                                       -Abraham Maslow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다른 선생님 말고, 꼭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고 싶어 했던 것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그런 기억을 상기할 때면 내가 교사가 된 것이 오랜 꿈이고, 그것이 내 진정한 욕구였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정말 그러할까?


 교대 입학과 임용합격은 나를 성장하게 하고 자기실현을 돕는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볼 수 있다. 당시에 이모들과 어른들은 우리 엄마와 나를 보며 “아이고, 이제 다 이뤘네. 고생했다.”라며 내가 대통령이라도 된 듯 울먹이셨다. 교생실습을 나가고, 첫 발령을 받으며 자기실현을 하고 있는 것만 같은 만족감과 성취감도 있었다. 어려운 아이들을 돕는 것이 좋았고, 그것이 사명감같이 느껴질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성취가 종종 결핍의 욕구로 느껴지는 것은 하위의 욕구에서 머물며 자신의 가치를 누군가에게 수용받기 위해 애써왔던 오랜 시간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풍족하지 못한 집의 장녀, 자녀교육에 무관심했던 부모님과 같은 조건들이 아쉽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어린 시절부터 그것은 내 세상의 한계를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족했던 욕구들이 나를 성장하게 했는지, 좌절하게 했는지는 다시, 남은 생의 시간을 들여서 여러 번 성찰해 볼 필요가 있다.


 때때로 과거가 원망스러울 때, 나의 ‘가치의 조건’은 어디에서부터 왔는가를 생각해 본다. 그것은 내 환경이 만들어 낸 것일까, 누군가 강요한 것일까. 아니면, 내가 스스로 만들어 낸 것일까.


 명확한 정답은 영원히 알 수 없겠지만 이 글 속에서 그 해답을 어느 정도 찾을 수 있었다.    



이제는, 안녕!

지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공간, 잊힌 시간에게 이별을 고한다.

2015년. 내가 본 고덕주공아파트의 마지막 모습, 철거가 일부 진행되고 있었다.

2015. 

고덕주공아파트가 이주와 철거를 시작했다. 

나는 첫 아이를 낳았다.      


2020

고덕지구 새 아파트들의 입주가 시작되었다. 

나의 첫 아이가 5살 되던 해이다.    


 5살 때부터 살던 우리 집은 그로부터 30년이 지나 나의 자녀가 5살이 되었을 때 비로소 새집으로 다시 지어졌다. 새 아파트를 꿈꾸던 중학생의 꿈은 애초에 실현 가능한 꿈이 아니었음이 오랜 시간이 지나서야 증명되었다. 그래도 우리 집은 오랫동안 나를 꿈꾸게 했고, 삶의 다양한 욕구를 충족시켜 주었다. 욕구의 충족은 그 이상의 욕구로 나아가기 어렵게도 때론 원동력이 되어 주기도 했으며, 지금도 그 가운데 어느 지점에서 살고 있다.  


 이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우리 집을 나도 떠나보내려고 한다.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 그 집에서 어린 시절의 내가 아직 꿈을 꾸고 있는 것 같다. 내가 ‘무조건적인 존중을 받았던’ 공간, 그리고 내가 오랜 시간 ‘무조건적으로 애정했던 그 공간’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다. 상실보다는 기억에 가까운 이별을 하려고 한다. 


 이제는, 안녕!


[이 순간] 늙은 아파트의 마지막 인사 (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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