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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롬콤 Jul 17. 2024

부모님의 글쓰기 수업 선생님을 자처했다.

가족만을 위한 프라이빗 글쓰기 수업을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별 거 아닌 생각이었다.

나는 책 읽고 글 쓰는 걸 무척이나 좋아하는데 마침 일을 하고 있지 않은 상태라 어느 정도 여유가 있고,

여러 강의를 듣고 강의를 직접 하기도 하는 엄마는 글을 잘 쓰는 방법을 알고 싶어 했으며,

아빠는 노후에 대한 고민이 많지만 뚜렷한 취미가 없어 걱정이 되던 찰나였다.


특히 정년퇴임을 넘은 나이에 뛰어난 능력으로 아직까지 일을 하고 우리 가족의 경제적인 뒷받침을 든든하게 하고 있지만, 나이에 따라 어쩔 수 없는 한계에 조금 걱정하고 우울해하는 우리 아빠가 이 글쓰기 수업의 시초가 된다.


일하는 것 외에 아빠가 좋아하는 건 술과 담배(담배는 좋아한다기보단 못 끊는 건가?), 꼼짝없이 누워서 TV 보며 휴식 취하기, 정보 서칭 후 가족들에게 공유하기, 맛있는 것 먹기다.

젊었을 적에는 미대를 가고 싶었을 만큼 그림 실력도 어느 정도 있고 가끔 글을 끄적이기도 하며, 예전에 잠시나마 킥복싱이나 드럼을 배운 뒤로 '언젠가는 다시 제대로 배워봐야지!' 하는 생각이 마음 한편에 자리하지만 의지를 불태워 시간을 내고 집 밖을 나가는 건 어렵기만 하다.


건강을 챙겨야 될 나이는 벌써 지났고 나와 언니, 엄마의 끊임없는 잔소리에도 불구하고 큰 문제가 없어서인지 술과 담배는 줄이지 못하고 반대로 늘어간다. 그리고 맛있는 걸 좋아하는데 운동을 거의 하지 않는다니...!

(뭐 나도 그렇지만) 다이어트도 아빠의 큰 숙제다. 아무튼 참 튼튼한 몸일세.. 싶다가도 어느 순간 나빠지는 게 알 수 없는 건강이다 보니, 항상 걱정스러운 마음이 있다.

2024년 내 수많은 목표 중 가족들과 연관된 것들이 몇 가지 있는데, 아빠에 관련해서는 '아빠의 절주, 절담. 다이어트 돕기. 아빠의 취미 만들기'가 있다. 한 번에 금주와 금연은 달성하는 건 거진 불가능할 테니 절주와 절담(담배를 줄이다)으로 정했다. 하지만 1년의 절반이 지나갔음에도 아직 제대로 이룬 건 없다.


앞의 3가지는 조금 뒤로 미루고, 아빠의 취미를 만들어주는 것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아빠는 재작년 즈음 떠오르는 생각들을 블로그에 적어보겠다며 야심차게 시작했는데, 사실 문장식이 아니라 시처럼 글을 써서 한 번에 읽기가 쉽지 않았다(아빠 미안!). 일하면서 영어 논문, 칼럼이나 보도자료 등 전문적이고 정보성이 짙은 글을 위주로 쓰다 보니 일상적인 글쓰기에 익숙하지 않기도 하다.

포기하지 않고 조금씩이라도 글을 써봤으면 싶어, 간단하게 읽을 수 있는 책과 영감 노트도 선물했지만 노트에는 한 줄도 쓰지 않은 게 분명하다..


그래서 나는 아빠에게 하루의 새로운 일과가 될 수 있는 글쓰기 취미를 만들고, 이것이 아빠의 현재와 미래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라며 글쓰기 수업을 열기로 했다. 대단한 결과를 바라지 않는다.

책을 읽거나 글을 써내려가는 것만으로 마음이 정리가 되거나 풍부한 생각이 떠오르고, 특별히 많은 독자들이 읽지 않더라도 나만의 꾸준한 기록을 갖게 되는 건 큰 의미가 있다. 글을 쓰는 게 습관으로 자리 잡으면 다른 취미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더불어 꾸준히 글 쓰는 습관을 가지고 나중에는 책도 출간해보고 싶다는 엄마도 수강생이다.

처음엔 이미 어느 정도 글을 쓰고 있고 강의도 하는 엄마였기 때문에, 굳이 나에게 글쓰기 수업을 듣고 싶어 하려나? 생각을 했는데 엄마가 먼저 자신도 배우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말해줘서 고마웠다.




그냥 가족끼리 모여서 글 쓰는 건데 거창하게 '수업'이라는 이름을 붙였냐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냥 가볍고 재미있는 시간을 갖느냐, 아니면 제대로 틀을 잡고 수업처럼 진행을 하느냐에는 많은 차이가 있다고 본다. 대단한 커리어를 가지고 전문적인 방법을 가르쳐주는 건 아니지만, 나부터가 '이건 누군가를 가르치는 수업이야!'라고 생각해야 진지하게 임할 것 같기도 했다.


글쓰기 수업 신청 안내


그래서 처음 만든 건 <글쓰기 수업 신청 안내> 포스터였다. 무료 템플릿을 이용해서 디자인이 썩 맘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어딘가에 진짜로 있을 법하게 만든 것 같다. 가족 아이콘도 찾고, 책과 펜 이미지와 '김가네시트콤'이라는 우리 가족의 심벌(?)도 넣었다.


완성해서 가족 단톡방에 공유했는데, 장난반 진심반으로 만든 이미지이건만 아빠는 내가 진짜로 외부에서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는 것으로 착각해 축하해주었다. 아빠의 반응이 조금 웃기면서도 나를 이만큼이나 능력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나? 싶기도 했다.

아빠는 사실 조금(많이) 귀찮아하는 듯 보였지만 사실 작은 딸이 이렇게 무언가를 하자고 하면, 그리고 그게 특히나 아빠를 위한 거라면 거부할 권리는 없다(!)


정식 첫 수업에 앞서 엄마와 아빠가 글을 쓰는 일을 통해 어떤 목표를 이루고 싶은지, 각자의 삶에서 어떤 것을 주제로 글을 써보고 싶은지, 좋아하는 취미나 물건은 무엇인지 등등이 궁금해서 OT를 진행했다. 먼저 아카이빙 해두었던 디퍼(differ)의 툴킷(tool kit) 폴더를 열어보았다. 디퍼는 성장을 만드는 질문을 하고 저마다의 답을 수집하는 미디어 서비스인데, 갖가지 툴킷을 무료로 다운받아 사용할 수 있다. 전문적이기보다는 흥미로운 주제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툴킷도 3장을 넘지 않아 가볍게 사용해 보기 좋다. 디퍼에서 언젠가 사용해 보고픈 툴킷을 20개쯤 아카이빙 해놓아서 글쓰기 수업 OT에서 쓰기 좋은 3가지 정도를 골랐다.

My Story Writing, Find my heart, 그리고 나에게 일은 어떤 의미이며 장기적으로 정말 하고싶은 일은 무엇인지 들여다볼 수 있는 Self Interview를 선택했다.


자세한 내용은 공개할 수 없지만 각자가 적은 내용이 비슷해 보이면서도 확연히 달라 흥미로웠다. 글을 쓰고 싶은 시간도, 얻고 싶은 결과나 목적도 모두 다르다. 하지만 엄마아빠의 일에 대한 열정과 목마름만은 똑같이 느껴졌다. 수업 한 번 들어보지 뭐, 하는 마냥 가벼운 마음이 아니라 진지하게 툴킷을 작성하고 OT에 참여하는 엄마아빠의 모습도 보기 좋았다.



내 이름을 건 글쓰기 수업에 대해 솔직한 감정을 말하자면, 가족들에게 적극적인 표현하는 걸 부끄러워하는 나는 다 제쳐두고 수업 시간을 정하거나 과제 메일을 보내는 등 일련의 과정들이 쑥스럽고 어색하다. 조금 오글거리기도 하고.. 하지만 외부인이 아닌 '오롯이 가족들을 위한 시작'이기에 의지는 충만하고 부담감은 덜하다. 이왕 하는 거 확실하게 컨셉을 잡으면 나도 더 즐길 수 있을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어릴 때부터 글을 참 잘 쓴다는 말을 들어왔다. 초등학교 때 매일 쓰는 일기를 시작으로 독서 감상문으로 상을 받기도 하고, 논술로 대학에 들어가고(그런 사람 많겠지만요), 자신감은 오히려 부족한 편에 속하는데도 텍스트라면 자신 있다고 말한다. 이런 선생님을 바로 옆에 두는 게 흔한 기회가 아니에요!




현재 기준으로 2회 차 과제 안내 메일이 나가고 제출하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다음 주에 나를 제외한 가족들이 시카고로 학회 겸 여행을 가기 때문에 그전에 3번째 정식 수업을 언제로 잡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



글쓰기 수업에 대한 이야기는 <김가네시트콤: 글쓰기 수업 편> 시리즈로 연재됩니다.
이어질 첫 번째 정식 수업 & 과제에 대한 글도 기대해 주세요(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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