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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롬콤 Jul 19. 2024

하나의 글에 모든 욕심을 담지는 않기

울면서 찾아온 엄마와 부끄러워하는 아빠와의 첫 글쓰기 수업


글쓰기 수업 OT를 진행하고 정식 첫 수업이 시작되기 전, 1회 차 과제 안내 메일을 발송했다.
6월 말이었으니 현재 기준으로 벌써 3주가 지난 시간이다.



1회 차 과제의 주제는 '가족'이다.

가족만을 위한 전용 글쓰기 수업이니 당연스럽기도 하고, 우리 사이에서 첫 시작으로 딱 좋은 주제다.

멋들어진 글을 써야 한다고 부담감을 느낄까 봐 최대한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편지를 쓰듯이 적어봤으면 했다. 글을 쓰는 데에 제목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라 필수로 정했고, 적당한 분량도 정해보았다.


가족이라는 주제가 너무 포괄적이고 막막해 보일 수 있다. 가족들과 먹는 밥, 앞으로 가고 싶은 가족 여행지, 어렸을 때 각자 부모님과의 추억 등 사소하고 작은 주제를 정해 편하게 글을 써보길. 그리고 엄청난 교훈을 주거나 대단한 내용보다는 속에 있는 생각, 평소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최대한 가감 없이 풀어보는 것을 원했다. 과거에 완벽한 상태에서 발행해야 한다는 강박증에 글쓰기를 포기했던 적이 여러 번이었기 때문에, 엄마아빠는 쓴 글을 여러 번 수정하거나 계속해서 들여다보지 않고 물 흐르듯 쭉 써내려가는 것을 추천했다.



참고가 될 만한 글을 함께 보내주고 싶어 당시 브런치에 발행했던 <가족이기 때문에, 분명히 노력은 필요하다>의 링크를 첨부했다. 사실 타이밍에 맞추어 발행한 것이기도 하다. 내가 브런치에 제대로 올리는 첫 글은 꼭 '가족'에 대해서였으면 했고, 제3자가 아니라 아빠와 엄마, 그리고 언니가 내 깊숙한 진심을 글로나마 알아줬으면 했다. 나는 똑같은 말을 직접적으로 표현하는 데에는 아직 많은 노력과 연습이 필요한 사람이니까.

(참고: BX Writer & Content Editor 는 내가 6개월 전쯤부터 사용하고 있는 메일 서명이다. 외부의 누군가와 소통하거나 회사에 지원할 때 나를 조금 더 명확하게 드러내고 싶었다.)



메일을 보낸 날 밤, 엄마가 울면서 방에 찾아왔다.

감동 포인트에서 자주 눈물을 흘리는 엄마이긴 하지만(나도 엄마의 그런 점을 닮은 것 같다), 아무래도 과거에 엄마에게 미안했던 점, 같이 붙잡고 울었던 기억을 적었기 때문에 우는 엄마를 보고 덩달아 울컥했다.(하지만 난 부끄럽기 때문에 티 내지 않지..!) 글을 어떻게 이렇게 솔직담백하고 마음에 와닿게 잘 썼냐는 말에 내 진심이 잘 전해졌구나, 하고 뿌듯하기도 했다.


아빠는 다음 날 회사에서 메일로 답장을 보내왔다.

표현에 부끄러워하는 부분은 내가 아빠를 닮았는지, 직접 얼굴을 마주하고 같은 말을 전달하는 건 참 어렵다. (그리고 아빠는 회사에서 일할 때 자주 사용하기 때문에 메일로 답장을 자주 하는 편이다) 반대로 또 그런 면모를 알기 때문에 짧은 문자나 메일에서도 작은 진심을 느끼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글쓰기 선생님(?)과 딸의 복합적인 위치에서 아빠와 엄마의 글을 들여다보는 느낌은 새로웠다. 문체,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에 각자의 스타일이 묻어있었다.

맞춤법부터 하나하나 고치는 것보다는 글의 내용 자체에 집중하고 싶어, 너무 눈에 띄지 않는다면 맞춤법은 최대한 손대지 않으려고 했다. 기본적인 문장 구조부터 좋았던 문장과 다시 수정해봤으면 하는 문장을 체크하고, 꼼꼼하게 피드백을 적었다. 각자에게 준 피드백은 달랐지만, 공통적인 것도 몇 가지 있었다.

제목이 두리뭉실하고 평이하다는 것, 그리고 너무 큰 하나의 주제로 포괄적인 글을 써서 구체적인 내용을 찾아보기 어려웠다는 것. 너무 많은 내용을 한 번에 전달하려고 하기보다 명확하고 구체적인 주제로 여러 번 나누어 글을 쓰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엄마와 아빠만이 할 수 있는 관점에서의 이야기, 누구도 동일하게 경험할 수 없는 에피소드 등이 첨가되었으면 더 풍부해질 글이었다. 두 사람 모두 어린 시절부터 거슬러 올라와 현재의 우리 가족이 되기까지의 커다란 이야기를 하려다 보니, 오히려 단조로워져 버렸다.


어떨 때는 모든 내용을 적어내려간 후에 좋았던 키워드를 골라 제목을 적을 수 있고, 어떤 글은 흥미로운 제목을 짓는 것만으로도 술술 써질 수도 있다.

엄마는 글의 마지막에 스티븐 잡스의 명언을 인용했다. '내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사랑이 넘쳐나는 기억들뿐이다'는. 엄마는 자기 자신, 그리고 우리들에게 사랑이 넘쳐나는 기억을 남기고 싶다고 했다. '내 삶의 의미'보다는 엄마가 인용한 이 문장이 가슴에 팍 와닿았고, 제목으로 추천했다.

아빠는 딸들에게 자연스럽게 가지게 되는 걱정스러운 마음을 '비가 올까 걱정보다는 우산을 가지고 외출하는지 걱정이 앞선다'라고 표현했다. 폭우와 같이 피할 수 없는 상황들이 발생하지만, 어쩔 수 없는 그것을 탓하고 막아보려 애쓰보다는 이를 조금이라도 대비할 수 있는 '우산'을 챙겼는지 염려하고 우산을 건네주는 것이다.

아빠의 글은 특히 5가지 정도 되는 주제를 담았을 정도로 여러 가지 이야기가 이어졌다. 그래서 아빠에게는 하나의 글에는 1가지 주제와 1가지 문체로 글을 쓸 것, 그리고 '가족'이라는 제목 대신 '아버지가 되기까지, 그리고 아버지가 되고 나서' 혹은 위의 우산 문장을 추천하는 피드백 등을 주었다.



어느 주말, 간단한 다과와 함께 수업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종이에 새겨진 꽤 많은 파랗고 빨간 흔적들에 조금은 당황하는 듯 보였다. 글 쓰는 데에 좋지 않은 습관(ex. 많은 말줄임표, 많은 축약 등)을 알려주고 어떤 부분은 조금 더 신경썼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 문장이나 문단은 좋았다 말하며 30분 정도 피드백을 이어나갔다. 하지만 이 모든 피드백을 단번에 수정하기보다는 가장 중요한 1-2가지의 피드백을 제대로 반영하기를 추천했다. 첨삭된 첫 번째 글은 다음 주의 새로운 과제와 함께 수정해서 내는 것이 숙제였다. 최종 수정된 글을 함께 블로그에 올려보는 것까지가 한 과정이다.


피드백 이후에는 두 사람의 블로그를 전체적으로 다시 꾸미는 작업을 진행했다. 기본 블로그 형식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어서 블로그명부터 제목, 소개글, 메뉴명, 레이아웃 등의 세부 디자인을 재설정하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블로그 설정이나 관리를 도와주려는 생각은 처음부터 하고 있었지만, 아빠와 엄마는 언니나 나처럼 컴퓨터나 앱을 다루는 데에 익숙지 않으니 이런 부분을 추가적으로 알려주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았다.(나는 친절하고 느긋한 선생님은 못되지만 말이다)


어떤 주제로 함께 글을 쓰고 수업의 형식은 어떻게 조금씩 바꿔볼 것인지 대강 생각해 두긴 했지만, 실제로 수업을 진행하면서 얻게 되는 아이디어나 방향성도 있다.

첫 번째 정식 수업과 과제 첨삭을 진행하면서 2가지가 변경되었다. 긴 글을 쓰는 것을 어려워할까 봐 어느 정도의 분량을 제안했는데, 1000자 2000자 정도는 거뜬히 쓸 수 있고 오히려 초반에 분량을 제한하는 게 방해가 될 것 같다. 그래서 분량 제한을 없앴고, 주제는 좀 더 뾰족하게 제시하려고 한다. '가족'이 아닌 '엄마 아빠가 어렸을 때 좋았던 추억 한 가지'나 '언니의 결혼식'처럼 보다 구체적인 에피소드가 주제거리가 되어야 아빠 엄마의 글도 뾰족해질 듯하다.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면서 나도 진짜 선생님이 된 것처럼 어떻게 수업을 진행할지, 어떻게 해야 두 사람에게 더 도움이 될지 고민하게 된다. 내가 시작하긴 했지만 여러모로 신기한 경험이 될 것 같다.



<김가네시트콤: 글쓰기 수업 편> 시리즈 2화입니다.
이어질 두 번째 정식 수업 & 과제에 대한 글도 기대해 주세요(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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