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끝나도 글은 남는다
<김승주 글쓰기 수업> 2, 3회차 과제는 모두 '여행'을 주제로 했다.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써서 벌써 2년 전이 되어버렸지만) 2023년 봄에 다녀온 발리 가족여행은 좋은 추억들이 다양해서 엄마 아빠가 각자 어떤 시선으로 글을 풀어낼지 알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함께하지 못했지만 작년 아빠의 학회 일정에 맞춰 엄마와 언니까지 셋이서 다녀온 시카고 여행의 후기는 또 어떨지 궁금했다.
여행이라는 주제는 언제나 즐거운 마음으로 가볍게 쓸 수 있는 소재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글쓰기 수업의 초반이어서 더 그랬지만, 아빠와 엄마의 글 스타일은 참 확연히 다르다. 각자의 성격이 글에 고스란히 묻어난다.
엄마의 글은 상냥하고 평탄하다면, 아빠의 글은 객관적이고 함축적이다.
하지만 내가 피드백을 해주는 글이 절대로 정답일 수는 없기에, 각자의 스타일을 살리면서도 글에 드러나는 아쉬운 습관들만 조금씩 줄여가는 방식으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예를 들어, <발리 여행>에 대한 엄마의 글은 큰 수정이 필요 없을 만큼 깔끔했지만, 자칫하면 누구나 쓸 수 있는 평범한 여행기로 비칠 수 있기에 구체적인 예시를 추가하는 방향으로 의견을 제시했다. 문장을 살짝 비틀거나 제목을 조금 더 흡입력있게 바꾸는 것만으로도 글의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진다.
본래 '발리 여행'이었던 글의 제목은 엄마의 문장을 따서 '우리는 지금 천국에 살고 있다'로 변경했다. 이 짧은 제목 하나가 글 전체에 생동감을 불어넣는 느낌이었다.
반면, 아빠의 글은 정말이지 T처럼 타임라인을 따라가는 객관적인 사실을 나열한 스타일이었다. 그래서 아빠에게는 직접 경험한 순간들에 대한 감상이나 아빠만이 말할 수 있는 경험을 위주로 적어주었으면 좋겠다고 피드백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발리 여행'이었던 제목을 아빠의 마음을 담은 '발리로 가족여행, 점점 더해지는 여행에 대한 욕심'으로 바꿔보았다. 제목만 봐도 아빠의 감정선이 드러나는 느낌이라, 글의 인상이 훨씬 따뜻해졌다.
'20대 때 무의촌 공보의에게 지급된 125cc 오토바이를 타보고는~' 정말 아빠만이 말할 수 있는 경험이 이런 것이 아닐까? 이런 이야기는 아빠의 시선과 기억이 녹아 있는 부분이라, 글의 개성이 살아나고 읽는 사람에게도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잘 모르는 사람이 보더라도, 저것이 어떤 경험인지 아빠의 과거에 대한 호기심이 동할 것 같다.
무엇보다 아빠와 엄마가 글을 쓰면서 발리 여행을 한번 더 곱씹어보고, 그 소중한 순간들을 그리워하는 것 같아 마음이 따스해졌다.
글쓰기가 단순한 기록을 넘어, 추억을 다시 꺼내보고 나누는 시간이 된 것 같아 더욱 의미가 깊었다.
시카고 여행을 가기 전, 비행기에서 자그만 두근거림을 느끼길 바라며 가족들에게 귀여운 꾸러미를 선물했다. 아빠와 엄마의 꾸러미는 선물보다는 미니 글쓰기 과제였기 때문에 펜과 종이 등이 담겼지만, 언니에게는 여행에 필요한 나름의 센스있는 아이템들을 담아보았다.
꼭 시카고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열어보았으면 해서, 여행 가는 당일날 아침에 꼭 비행기에서 뜯어보라며 전해주었다.
“여행지에서 보고 느낀 것을 적고 그리는 경험은 굉장히 낭만적입니다. 부담감은 내려놓고, 시카고에 오고가는 비행기 안에서 30분 혹은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마시며 10분, 오래 걸은 하루 끝 자기 전에 5분.
시카고 여행에서 느낀 점이나 흥미로운 일, 이어지는 생각들, 예뻐서 남기고 싶은 그림 등 자유롭게 적거나 그려주세요!
가벼운 사전 과제이니 여행지에서의 소중한 시간을 빼앗을 만큼 긴 글보다는, 잊기 쉽지만 잊고 싶지 않은 순간들을 기록해오시기 바랍니다.“
나의 귀여운 꾸러미들을 자랑해보며...
<시카고 여행> 글의 완성본에서 좋았던 부분을 발췌해 본다.
먼저, 아빠.
글을 읽으면서 내가 이런 점에서 아빠를 닮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빠와 나는 여행 중 쓴 영수증이나 티켓같은 사소한 것들을 꼭 챙겨 온다. 언젠가 버릴지라도, 추억 삼아 서랍에 넣어두거나 다이어리에 붙이기도 한다.
발리 여행 글처럼 아빠만이 들려줄 수 있는 특별한 경험도 들어 있있고, 가족여행을 조금은 귀찮아하거나 해외에 나갈 기회가 많아도 흔쾌히 나서지 않던 아빠가 여행의 참 재미를 깨달아 가는 것 같다.
'여행이 끝나갈 즈음 느껴지는 아쉬움은 또 다시 다음 여행을 기다리게 만든다.'
여행이 끝난 후 남는 아쉬움과, 다시 떠날 날을 기다리는 설렘이 이제는 아빠의 마음 속에도 자리 잡은 것 같아 괜시리 뿌듯해진다.
그리고, 엄마!
'여행하는 이유는 집이 얼마나 좋은 곳인지, 돌아갈 곳이 있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를 알기 위해서 하는 거라는 말처럼 떠날 때의 설렘만큼이나 돌아올 때의 안정감이 좋다.'
'여행의 가장 좋은 점은 함께 하는 사람들과 내밀한 얘기들을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된다는 것이다.'
너무 공감되었던 말이다. 평소에는 쉽게 꺼내기 어려웠던 말들도 여행지에서는 왜인지 툭, 하고 나오곤 한다. 새로운 장소와 들뜬 기분,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에 '여기라면 좀 더 깊은 얘기를 할 수 있겠어'라는 생각이 자연스레 드는 걸까.
글을 읽으면서 엄마가 아빠, 언니와 함께 정말 뜻깊은 시간을 보냈구나 싶어 나도 모르게 흐뭇해졌다.
가족이 함께한 여행은 단순한 추억을 넘어, 서로를 더욱 더 가깝게 만들어 주는 시간인 것이 분명하다.
같은 곳을 여러 번 여행하면서 여실히 느낀 점은, 여행이란 어디를 가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함께 가느냐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나는 같은 나라를 반복해서 가는 걸 그리 선호하지 않지만, 일본의 경우에는 동행인만 달리 하여 여러 번 방문한 도시들이 있다. 그런데, 같은 장소라도 힘들고 돈이 아깝게 느껴졌던 여행이 있는가 하면, 날씨가 궂고 험난한 사건이 발생해도 곁에 있는 사람에 따라 그 순간이 하나의 모험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우리 가족은 2025년 상반기 즈음, 터키 여행을 계획 중이다. 형부까지 해서 꼭 5명이 함께 갈 수 있었으면 한다. (이제 민토리씨는 너무 가족의 일부가 되어버려서, 없으면 좀 허전하기까지 하다. 그리고 민토리와 있는 언니의 모습이 더 보기 좋다!)
터키 여행을 다녀온 후, 엄마와 아빠가 또 어떤 글을 쓸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김가네 시트콤: 글쓰기 수업 편> 시리즈 3화입니다.
우리 가족의 글쓰기 여행은 계속됩니다. 이어질 4화도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