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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롬콤 Jun 17. 2024

그 겨울의 일주일, 메이브 빈치 - 모두 잘될 것이다.

booker 시리즈 제 5화



(배경이 꼭 서점이 아니라도) 한 명의 주인공을 넘어 하나의 장소가 중심이 되어 펼쳐지는 이야기는 좋다. 꼭 나도 그곳의 일원이 된 것 같고, 실제로 그런 장소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상상이 모락모락 일어난다.


완전히 독립되어 단편집 같은 구성의 옴니버스 식 소설은 좋아하지 않는다.

하지만 따로 떼어내서 보면 독립적인 이야기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조금씩 이어지고 포개져 연결되는 이야기라면 좋다.



주인공 치키 스타는 고향인 아일랜드 서부의 스토니브리지에 돌아와 '스톤하우스'라는 저택을 구입하여 호텔로 개조한다.

마을과 관련된 몇 사람들, 그리고 외부에서 찾아온 손님들의 이야기를 차례차례 함께 한다.


공식 책 소개



이 치키라는 여인의 사정에 조금 기구한듯하면서도 씩씩한 면모가 있는데,

가장 좋았던 점은 그녀의 이유 있는 거짓말이 끝까지 사실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남자의 무책임한 사랑은 계속 부풀어져가고, 또다시 무책임한 이별 통보는 사람들에게 그의 죽음으로 대신 전해진다.

이 사실이 언젠가는 들켜서 치키가 다시 상처받고 애써 해명하는 장면이 나오면 참 싫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러한 사실 여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중요한 건 따로 있다는 듯 전개되는 이야기들이어서 좋았다.



한 명, 어떨 때는 두 명의 손님이 7개의 챕터를 이룬다.

저마다 고민과 문제를 안고 있고 대부분은 스톤하우스와 치키를 통해 보다 안온하고 밝은 미래를 보지만, 그렇지 않은 현실적인 에피소드도 있으니 오히려 더 몰입감이 있다.




스톤하우스 저택과 스토니브리지로의 여행이 유난히 평화롭고 치유되는 기분이 드는 것은, '해야 할 일이라곤 전혀 없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홍보 브로슈어에 나와있는 것처럼 '일주일 동안의 겨울 휴가'라는 제목이 붙고, 반갑게 맞아주는 따뜻한 집과 길게 펼쳐진 모래밭, 절벽, 야생 조류를 즐길 수 있다.

저택은 무척 편안하고 아름다우며, 바다가 보이는 큰 창에 하루 종일 파도 소리를 배경음악 삼을 수도 있다.

할 것이라고는 내킬 때 하는 산책, 평온한 풍경, 로컬 펍, 치키와 올라가 정성껏 제공해주는 아침, 점심 도시락, 또 저녁을 맛있게 먹는 일이다.


내가 종종 그렇듯, 여행에서 다른 사람들 혹은 손님들과 이야기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지고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이곳의 분위기는 여유롭고 편안하고, 대화는 자연스럽다. 낯선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다.


이야기를 읽다 보면, 가보지 못한 아일랜드(그러고 보니 우리 언니는 아일랜드에서 몇 개월간의 생활을 했었다! 부럽다!), 그리고 그 안의 소도시들에 꼭 한 번 가보고 싶다.

그런데 마냥 행복할 때 말고, 끙끙 앓는 고민이나 답답함을 안고 있을 때 이런 곳에 방문하고 싶다.

근거는 없지만 작은 위안과 격려를 받을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마지막 챕터가 미래를 볼 수 있는 프리다의 이야기인 것은 작가의 작은 배려다.

당연하게 궁금해질 등장인물들의 미래를 프리다를 통해 조금 엿볼 수 있다.

그것은 결혼, 새로운 누군가와의 만남, 예쁜 아이, 커리어의 방향 전환, 여행,

그리고 직접 만들어가는 미래다.





바다, 평화, 추억. 여기는 뭐든 딱 적당한 만큼인 것 같아.

프리다는 그녀의 손을 잡고 정신을 집중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잠시 그렇게 있다가 머뭇머뭇 스톤하우스가 크게 성공할 거라고, 그리고 남자가 나타날 거라고 했다. 어쩌면 이미 아는 남자일 수도 있다고.


그리고 그때 프리다는 알았다. 자동차 사고는 없었다는 것을.

결혼식 같은 것은 아예 없었다. 하지만 그런 것은 중요하지 않았다.

치키는 잘 지낼 것이다. 모두 잘 될 것이다.






작가 메이브 빈치는 2012년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렇기에 <그 겨울의 일주일>이 그녀의 마지막 작품이다.

더 이상 작가의 새로운 소설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뒤늦게 슬펐지만,

이 책 이전의 소설들이 남아있어 다행이다.


<올해는 다른 크리스마스>, <체스트넛 스트리트>, <비와 별이 내리는 밤>, <풀하우스> 모두 차례차례 읽어봐야지!

아, 그리고 책의 여운과 의미를 더 오래 남기고 싶다면 책 이름을 따라 '겨울'에, 그리고 겨울의 막바지에 하루를 잡아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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