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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생 Dec 16. 2022

월드컵 특집 드라마 '꺾이지 않는 마음'

스토리작법으로 읽는 카타르 월드컵 이야기

2022년 카타르 월드컵이 끝나간다. 

현 시점에서 프랑스와 아르헨티나의 결승전 한판만이 남아 있다. 

자칭 타칭 축덕으로 살아온 나에게 월드컵은 4년에 한번 돌아오는 거대한 카니발 그 자체.  

직업적 스토리텔러로서 한국대표팀이 써내려 간 드라마를 스토리작법의 공식으로 기록해보고 싶어졌다. 


진부하지만 그 자체로 대단히 진실에 가까운 표현이 있다. 

'스포츠는 각본없는 드라마다'


그렇다면 작법서가 규정하는 '드라마'란 무엇인가. 

많은 정의가 있겠지만 가장 간결하면서도 대체로 동의할 수 있는 것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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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란 주인공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엄청나게 많은 난관을 극복하고 결국 성취하는 이야기. 

그리고 그 성취를 통해 목표달성 이전과 이후의 주인공은 변화(또는 성장)하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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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좋은 드라마가 되기 위해서 세가지를 잘 설정해야 한다. 

1. 주인공 : 동의 가능한 캐릭터이자, 사건 전후로 변화하는 포인트

2. 그의 목표 : 달성의 필요성과 절실함. 역시 주인공과 독자 모두 동의 가능해야 함. 

3. 과정의 난관 : 난이도와 다양성을 적절히 배분하여 갈수록 어려워야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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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가장 전형적인 3막 구성으로 설정해보자. 

1. 발단 : 주인공과 주변(인물과 상황)설정이 소개되고, 주인공이 목표를 깨닫고 여정을 나서는 단계

2. 전개 : 본격적으로 목표 달성을 향해 전진하고, 각종 어려움과 돌파가 연이어 벌어지며 갈등이 고조된다. 

3. 절정 : 목표달성의 최종 단계에서 가장 큰 난관을 만나게 되고, 결정적 한 방으로 돌파하여 결국 달성. 


위에 나열한 요소들을 가지고 이제 카타르 월드컵으로 돌아와보자. 


주인공은 누구인가? 

당연히 대한민국 축구국가대표팀으로 설정할 수 있다. 손흥민, 김민재등 개인으로 정할 수도 있겠으나 이는 전국민이 모두 공유하지 못한 개인의 디테일이 필요하기 때문에 전체팀으로 정리한다. 손흥민, 김민재, 이강인, 벤투감독 등의 인물은 팀이라는 하나의 주인공을 구성하는 다양한 개성과 캐릭터로 기능한다. 프리미어리그 득점왕 월드클래스 손흥민과 떠오르는 괴물수비수 김민재, 어린 천재 이강인 등 해볼만하다는 기대를 주는 개성은 충분하다. 빌드업축구 고집쟁이 벤투감독의 캐릭터도 기대감과 불안요소를 동시에 갖는 입체적인 요소. 


목표는 무엇인가? 

원정 월드컵 16강 달성이다. 2010 남아공대회 이후로 16강을 밟지 못한 12년이 흘렀고, 달성의 난이도를 고려할 때 현실적이며 간절한 목표가 될 수 있다. 


과정의 난관은 무엇인가? 

우루과이, 가나, 포루투갈과의 3연전이다. 높은 피파랭킹과 강력한 중원, 월드컵 본선에서 한번도 이겨보지 못한 남미팀이라는 조건, 조별리그 3연전에서 첫게임이 갖는 중요성을 고려할 때 우루과이는 첫 난관으로 손색없다. 아울러 본선진출국 중 피파랭킹 최하위에 조직력을 갖추지 못한 가나는 '1승 제물'이라는 해묵은 수식어가 어울리는 중간상대 캐릭터. 거기에 호날두를 포함 최강의 멤버를 보유한 포루투갈은 최종빌런이자 끝판왕의 자격을 갖춘 반지의 제왕 사우론 같은 위상을 보유. 

더불어 국가대표팀을 둘러싼 한국언론의 부정적인 입방아, 대한축구협회의 미묘하게 무능하고 음모론적인 이미지, 옆나라 라이벌 일본의 대회 진행과정 난관을 이루는 주변설정. 


발단 : 본선 조 추첨과 대진일정 확정 - 첫 경기 직전까지

본선대진 추첨이 확정되었다. 우리의 주인공은 H조 우루과이, 가나, 포로투갈로 결정되었다. 승부의 순서는 우-가-포. 해볼만하다는 기대감이 하늘을 찌른다. 특히 일본이 스페인/독일과 죽음의 조에 묶인 지점에서 묘한 승리감이 주인공 주변을 휩쓴다. 거기에 3경기 모두 하나의 경기장에서 치르게 된다는 동선상의 이점까지. 

첫 번째 위기. 한국에서 치른 9월 평가전에서 졸전을 펼친다. 고집스런 벤투감독은 여전히 그노매 빌드업 축구를 고집하고 항상 쓰던 선수만 쓴다. 라리가에서 발군의 활약을 펼치던 이강인을 불러놓고 1분도 기용하지 않는다. 비판과 우려가 쏟아진다. 소위 말하는 전문가들이 벤투가 추구하는 능동적인 축구가 세계강호를 상대하는 본선에서는 통하지 않는다며 수비위주의 역습전술을 대안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입방아를 쏟아놓는다.

두 번째 위기. 한국팀 전력의 핵심 손흥민이 대회 한달전에 치명적인 부상을 입는다. 대회 출전여부가 불투명할 정도. 먹구름이 드리운다. 

세 번째 위기. 우루과이 미드필더 발데르데라는 젊은 놈이 레알마드리드에서 날아다닌다. 중거리 슛을 마구 꽂아대고 현재 폼으로 세계최고란 흉흉한 평가가 난무한다. 

네 번째 위기. 가나 대표팀이 물갈이 되었다. 조별예선에서 빌빌대던 그 가나팀이 아니다. 가나 출신 부모나 조부모든 뭐 하나라도 인연이 있는 세계정상급 선수들을 속속 귀화시켰다. 그 면면이 살벌하다. 제길슨. 

다섯번째 위기. 황희찬의 부상과 황의조의 부진. 손흥민, 황의조, 황희찬은 국대 부동의 공격 쓰리톱이었는데 셋 다 컨디션이 정상과 거리가 멀다. 대위기 상황. 

이렇게 조추첨 당시의 낙관적인 분위기는 사라지고 다채로운 내우외환을 안고 주인공은 카타르로 향한다. 


전개 : 우루과이 - 가나 2연전

결전의 날이 밝았다. 첫 상대는 우루과이였다. 놀랍게도 중요인물 손흥민은 쾌걸조로 스타일 가면을 단단히 걸치고 출전했다. 우려가 많았지만 우루과이전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강호 우루과이를 상대로 한치도 물러나지 않고 정면승부를 벌이는 주인공의 모습이라니! 오히려 상대가 당황해서 뒤로 물러선다. 지금 내가 뭘 보고 있는거지? 그 동안 한국팀이 이런 주도적인 경기를 했던가? 결과는 0:0 무승부! 우루과이전 목표였던 무승부를 이뤄냈다. 그것도 놀라운 경기력으로. 벤투감독의 이강인 깜짝 교체는 보너스. 이보다 좋을 수 없는 1차전 승리였다. 바로 몇시간전에 떠들어대던 비판은 어디로 사라지고 찬사가 넘쳐난다. 우려를 뒤집어 버린 반전. 얄미운 라이벌 일본은 우리보다 몇시간전 독일을 이기며 은근히 신경을 거슬리게 만든다. 



넘치는 자신감을 안고 2차전으로 가나를 맞았다. 오마이갓. 전반에만 2골을 헌납하고 2:0으로 끌려가기 시작했다. 불안감과 우린 안된다는 패배감이 유령처럼 빠르게 피어오른다. 우루과이때처럼 밀어붙이고 점유하는 축구를 했건만 가나의 빠른 역습과 개인기에 당했다. 위기감 고조. 그러나 반전은 영웅의 탄생을 위해 남겨지는 법. 잘생긴 인스타 신성 조규성의 동점골이 빠르게 터졌다. 그것도 교체 출전한 어린 천재 이강인의 날카로운 발끝에서 서막이 당겨졌다. 주인공의 반격. 곧바로 이어진 조규성의 플라잉헤더 동점골! 상대방의 위로 날아 올라 강하게 꽂아 넣은 동점골의 통쾌함이란! 힘있는 반전이란 이런 것. 그러나 안타깝게도 딱 한번 가나의 역습과 주공격수의 헛발질은 우리 수비수의 시선을 분산시켰고 그틈을 타 다시 추가실점. 마지막 코너킥을 남기고 이해할 수 없는 판정으로 경기는 끝이나고, 강하게 항의하던 벤투는 퇴장당한다. 그렇게 경기는 종료. 1승제물로 반드시 잡아야 했던 가나에게 패배하며 최대의 위기가 닥친다. 최강의 적 포루투갈을 반드시 이겨야 하다니. 게다가 수비의 핵 김민재가 쓰러졌다. 벤투는 3차전에 나오지 못한다. 최대 위기상황 발생. 다행이 일본도 코스타리카에게 거만떨다가 패배, 이건 좀 다행. 



절정 : 포루투갈과 3차전

이제 물러설 길은 없다. 끝판왕 포루투갈을 상대로 무조건 이기고, 그도 모자라 우루과이가 가나를 2점차로 이겨줘야한다. 포루투갈 라인업의 화려함은 이미 월드컵 우승후보급이다. 지난 20년간 메시와 세계축구를 양분해온 그 남자 호날두가 버티고있다. 이놈은 생긴것도 최종빌런스러운 뭔가가 있다. 게다가 유벤투스 내한경기에서 1분도 출전하지 않고 노쇼만행을 저지른 후 한국에선 날강두로 불리고 있다. 빌런오브빌런 그 잡채!  

그에 비해 우리는 전력누수가 많다. 손흥민은 혼신의 힘으로 풀타임을 소화하고 있지만, 득점이나 어시스트같은 실질적인 기여를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결정적인 순간에 마스크가 눈을 가리는 애처로운 짤들이 난무한다. 게다가 김민재는 결국 선발로 나오지 못했다. 권경원으로 끝판왕을 상대할 수 있겠나! 공격진의 한 축인 황희찬은 아직 단 1분도 그라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벤투감독은 레드카드로 벤치에 앉지 못하고 모국을 상대하는 경기에서 지휘하지 못하게 되었다. 게다가 이런 제길. 일본이 스페인을 잡는 기적을 일으키며 16강에 선착한다. 끝까지 얄미운 놈들. 누가 보더라도 최악의 상황에서 최강의 상대를 맞이한다. 

그리고 킥오프! 5분도 되지 않아 선제골을 허용한다. 상대는 우리를 강하게 압박했고 능동적인 축구는 갈곳을 잃는듯 보였다. 강한 불안감이 엄습한다. 그러나 주변의 불안과 달리 우리의 주인공은 용기를 잃지 않고 강하게 맞선다. 그리고 놀랍게도 전반 36분 동점골을 뽑아낸다. 주인공은 김영권! 그가 누구인가 월드컵 역사상 최대의 기적이라 기록된 2018 러시아 월드컵 한국독일전의 승리의 주인공 아니었나. 3차전의 사나이 김영권이 집중력을 잃지 않고 침착하게 성공시킨 동점골. 놀랍게도 이 골은 호날두의 어시스트로 얻어냈다. 누가봐도 희안한 동작으로 문전에서 등으로 톡 넘겨준 공을 김영권이 스윽! 고맙다 호날두야. 빌런의 실수란 이런 것이다. 그리고 전반전 종료. 같은시간 우리의 운명을 쥔 또 하나의 경기 우루과이 가나는 2:0 우루과이 리드! 전반에 가나가 날려먹은 패널티킥이 있었다. 하늘이 주인공을 돕는 징후가 보인다. 하지만 아직 최후의 승리는 갈길이 멀다. 

후반전이 시작되었다. 치열한 일진일퇴의 공방전이 벌어졌고 1:1 동점상황은 계속되었다. 양팀 누구도 완벽한 주도권을 쥐지 못한 승부였고, 섬세하고 강한 포루투갈과 조금 투박하지만 강인한 투지로 맞부딪힌 한국의 힘대결이 치열하다 못해 처절했다. 고맙게도 호날두는 우리팀 골문에서 실수를 연발하며 서서히 한국 시민권을 획득하고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화살처럼 흘러 어느새 후반 정규시간 45분이 다 지나갔다. 역전을 만들어내지 못하면 이렇게 탈락할 상황. 남은시간은 겨우 추가시간 6분. 상대의 코너킥이 우리 수비를 맞고 전방에 혼자 있던 손흥민에게 연결된다. 

여기부터가 이번 드라마 클라이맥스 상황이다. 3차전 내내 흘러내리는 마스크와 싸우며 공격포인트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고국의 무지성 네티즌 빌런들에게 선발제외요구라는 억까를 당하고 있던 에이스 손흥민. 그가 후반 추가시간에 질주하기 시작한다. 70미터 단독 드리블! 우리에겐 기시감 있는 장면이다. 직전 월드컵 독일전에서 2번째 골을 만들어냈던 손의 질주, 프리미어리그에서 푸스카스상을 받은 번리전골 손의 질주. 손흥민은 질주와 동의어였다. 그런 그가 포루투갈을 상대로 추가시간에 맹렬히 달려가기 시작한다. 당황한 포루투갈 수비들이 그를 따라붙고 포위한다. 수비로 나설 수 있는 모든인원이 손흥민을 막아선다. 앞에 3명, 뒤에 3명 총 6명에게 상대 박스 바로 앞에서 포위당한 손흥민, 천하의 골잡이라도 도저히 슈팅할 공간이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그 때 손을 따라 80미터를 질주해 뒤따라 온 누군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황희찬! 대회직전 햄스트링 부상이 발견되어 1,2차전에 단 1분도 출전하지 못했던 그 선수. 공격진의 돌격대장을 맡아야 했으나 벤치에서만 지켜봐야해던 그 선수. 직전 월드컵 독일전에서 교체 출전해서 아무것도 못해보고 20분만에 바로 다시 교체아웃된 트라우마를 가진 그 선수. 뭔가 투박한 경기력에 늘 미덥지 않은 시선을 받아왔던 바로 그 선수 황희찬. 순간적인 곁눈질로 황희찬을 본 손흥민은 단 하나 남은 패스길, 상대수비의 가랑이 사이로 그림 같은 패스를 성공시키고, 황희찬은 이 공은 잡지 않고 논스톱 오른발슛으로 키퍼가 가장 잡기 어려운 코스로 슈팅. 그대로 골문을 가르는 후반 추가시간 역전골!! 대회 내내 부상에 시달리며 역할을 해내지 못했던 두 에이스 손흥민 황희찬이 가장 마지막 순간, 마지막 하나의 공격장면에서, 70미터 이상을 질주해, 단 하나의 패스길과 슈팅코스로 주저없이 꽂아 넣은 역전의 한골! 황희찬의 황금찌찌까지 그야말로 완벽한 클라이맥스다



이렇게 경기는 마무리되고, 상대팀 우루과이와 가나의 경기도 2:0으로 마무리되며 주인공의 기적같은 16강 진출이라는 드라마가 완성된다. 

그리고 최고로 멋진 드라마의 캐치프레이즈도 등장한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태극기에 비뚤빼뚤 써 넣은 저 캐치프레이즈는 흡사 안중근의 피묻은 대한독립 태극기같은 임팩트를 준다. 


이후 결과는 산왕전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북산이 맥없이 패배한 슬램덩크의 피날레와 대동소이하다.  

이렇게 2022 카타르 월드컵 특집 드라마 "꺾이지 않는 마음"은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여담이지만 2차전에서 우리가 가나를 잡았다면 드라마적 완성도는 한참 떨어졌을 것. 절정의 긴장감이 확 떨어졌을테니까. 이토록 완벽한 드라마적 서사구조를 만들어 낸 월드컵이라니. 놀랍다. 이래서 스포츠는 각본없는 드라마라고 부르고, 반대로 말하면 그 어떤 드라마도 스포츠서사의 즉흥성을 이길 수 없다. 


이상 2022 카타르 월드컵 특집 드라마 "꺾이지 않는 마음" 서사구조 분석 끝. 


ps. 시나리오도 이렇게 쓰면 욕먹고 안 팔린다. 작위적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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