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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생 Sep 05. 2022

‘헌트’라는 진심

2022년 여름 시즌 Big4 인상 평 릴레이_4

2022년 여름 대작 인상 평 시리즈 마지막 작품, ‘헌트'다


영화 내용과 상관없이 배우 이정재의 연출 데뷔작이라는 포장지와 올해 깐느를 활보하던 정우성 이정재의 기럭지가 더 돋보였던지라 대작 4편 중 기대감은 가장 낮았던 작품. 그래도 개봉 전 시사 반응이 호평일색이었고, 앞의 3 작품 각자의 단점들이 워낙 도드라져 헛헛해진 감정을 채워볼까 싶어 개봉날 극장을 찾았다. 그리고 관람 후 평가는 ‘이 영화 진심이구나!’



배우 이정재는 모두 알다시피 영화 ‘젊은 남자'로 1994년 데뷔해서 배우 경력만 거의 30년에 가까운 베테랑이다. 나 역시 어쩌다 보니 이정재의 데뷔부터 보고 자란 동시대 관객으로 그의 지난 세월을 거의 기억하고 있다. 같이 늙어간다고 할까? 그래서인지 인간 이정재에게 감정 이입되는 부분이 없지 않다. 30년 가까운 세월 배우 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루고 뒤늦은 연출 도전이 결코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정재의 선택이 과연 치기 어린 일탈로 끝날 것인지, 제법 괜찮은 결과물을 보여주게 될지 궁금했다.


결과적으로 연출자 이정재는 스스로 가장 잘할 수 있는 장르와 분위기를 골라 ‘헌트’에 담았다. ‘남산'이라는 시나리오를 골라 4년에 걸쳐 한 줄 한 줄 직접 고쳐서 완성했다고 하니 그 노력도 보통은 아니다. 그리고 화면 앞에 직접 연기를 하며 연출을 해낸 과정이 결코 만만치 않았을 것도 짐작된다. 완성된 영화의 만듦새를 보니 이정재는 굉장히 섬세하고 예민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미술과 패션을 좋아한다던 평소 그의 취향이 헛소문이나 괜한 허세는 아니었던 것 같다.


영화는 예민한 한국 현대사의 한 시대를 굉장히 설득력 있게 포착해냈다. 전두환 신군부 쿠데타 세력의 정권이 안착된 83년을 배경으로, 권력을 옹위하는 전위부대격인 안기부의 두 중간관리자(이정재, 정우성)가 등장한다. 그들은 조직 내 입지를 위해 서로가 서로를 의심하고 대립하는 구도. 단순한 권력다툼과 충성경쟁으로 보이지만, 두 인물이 내면에 품고 있는 진짜 의지가 드러나는 순간 영화는 목표를 향해 질주하기 시작한다. 관객도 처음에는 누가 배신자일까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게임으로 인식하지만, 변곡점을 넘어서는 순간부터는 두 인물에게 감정 이입해서 그들의 목표 달성을 향해 함께 달려가도록 설계했다. 이것이 평소 이정재 감독 본인의 신념의 발현인지 대중영화로서 선택한 정치적으로 안전한 선택인지는 모르겠으나, 고심의 흔적이 역력한 영리한 전개임은 분명하다.


아울러 스파이 영화 다운 액션 장면의 완성도가 상당하다. 도쿄 도심의 총격전 시퀀스와 대통령 테러 시퀀스는 대단히 훌륭했다. 모가디슈를 볼 때 느꼈던 대로 한국영화의 전반적인 프로덕션 완성도가 이젠 세계 수준에 올라온 증거를 보는 것 같아 괜히 뿌듯하다. 물론 연출의 최종 책임자는 감독이기 때문에 이정재의 올바른 선택과 감각도 함께 칭송받아야 할 부분.


‘헌트'는 전체 서사의 유려한 흐름, 매력과 설득력을 두루 갖춘 캐릭터, 미술과 프로덕션의 완성도, 주제를 담는 메시지의 적절성까지 높은 완성도와 재미를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을 신인감독 이정재가 연출해냈다는 점에서 더욱 놀랍다. 다른 무엇보다 영화에서 설익은 자의식 과잉 또는 오만함이 보이지 않아 좋았다. 섬세하고 겸손하게 관객의 눈높이에 맞추려는 노력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동시에 메시지를 밀어붙이는 선명한 뚝심도 보였다. 한마디로 작품 연출에 임하는 태도가 대단히 좋았다.


물론 초보 감독으로서의 흠결은 있다. 영화의 리듬감이 조금 무너져있다. 강약 중강 약으로 리듬을 타고   관객들도 긴장과 이완을 반복하며 자연스러운 감상이 이뤄진다. 강강강강 일변도로 흐르면 자극의 역치가 높아져 결국 가장 중요한 자극에서도 원하는 효과를 얻지 못한다. ‘헌트' 그렇다. 초보 감독 이정재는 모든 시퀀스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은 마음에 타이트한 긴장감을 유지했으리라 짐작된다.  그래서 시퀀스 단위로 보면 훌륭하지만,  편의 영화로 보면 조금 숨이 가빠온다. 장면과 서사의 힘을 줬다 뺐다 하며 전체 긴장 곡선을 상승시켜 하이라이트에서 폭발시켜야 하는데, 결말에 이르기도 전에 관객은 자극에  지쳐버린 상태가 된다. 하지만 어쩌겠나 신인인데.


결론적으로 ‘헌트'는 좋은 이야기와 예민한 감각, 한국 영화계가 성취한 전반적인 프로덕션 퀄리티가 시너지를 낸 수작이다. 2022년 여름 대작 4편 중 가장 균형 잡힌 진짜 위너는 바로 ‘헌트'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가장 큰 공로자는 초보 감독 이정재다.


그는 ‘헌트'를 위해 진심을 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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