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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생 Sep 04. 2022

‘비상선언’이라는 불쾌함

2022년 여름 시즌 Big4 인상 평 릴레이_3

2022년 여름 대작 3번 타자는 '비상선언'이다.


이병헌, 송강호, 전도연 주연 배우들의 이름값이 주는 무게감으로는 단연 이번 여름 원탑이었다. 거기에 항공재난 영화는 이제까지 하정우의 롤러코스터나, 엄정화 주연의 오케이 마담 같은 소품에 가까웠지만, ‘비상선언'은 한국영화가 각 잡고 시도한 적이 없는 값비싼 장르였기에 기대감은 더 했다. 역시 기대감 만땅으로 개봉날 극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결과는 최악의 불쾌감을 경험했다. 이 영화는 나에게 모욕감을 주었다. 지금부터는 스포일러가 난무할 예정이니 조심해주시길.



결론부터 말하자면 ‘비상선언'은 창작자(아마도 감독 한재림)의 비뚤어진 메시지에 서사가 희생되고, 그걸 보는 관객마저 심하게 모욕당한 꼴이 되었다. 영화 자체가 재난 상황이다.


범인 임시완이 죽기 전까지 전반부의 연출과 흐름은 역대급으로 훌륭했다. 빠른 전개, 범인과 주인공(이병헌) 사이의 극 초반에 발생하는 괴이한 긴장감도 쫄깃했다. 무엇보다 범인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먼저 죽어 극에서 퇴장하는 선택도 신선했다. 이제까지 항공재난 영화는 ‘누가 범인'인가, 그리고 주인공이 범인을 어떻게 제압하고 재난을 끝내는가에 집중했다면 이 영화는 범인이 사라져 버리고 재난만 남아 버린 상황이 유니크했다. 그런데 바로 그 지점부터 진짜 재난은 시작이다.


한재림 감독이 생각한 ‘비상선언'의 재난은 소수의 불가항력적 희생자들을 남겨진 다수가 각자의 이기심으로 차별하고 소외시켜버리는 상황이다. 영화는 테러범에 의해 치명적 바이러스에 노출된 비행기 탑승객과 이들의 위기상황을 해결하려는 소수의 양심 있는 자(송강호, 전도연), 그리고 이기적이고 무기력한 다수(미국, 일본, 한국 정부, 시위대)의 대립구도로 몰고 간다. 여기까지는 충분히 흥미로운 전개에 한 번쯤 생각해볼 수 있는 영화적 상황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대립을 극한으로 만들기 위해 서사의 핍진성을 처참히 훼손시켜 버리는 지점에 있다. 하와이 착륙을 불허하는 미국 정부까지는 그렇다고 치자. 메이데이를 외치는 간 항공기에 총질을 해대는 일본 자위대를 관객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그리고 자국 시민이 타고 있는 항공기가 전투기에 의해 공격받을   놓고 있는 정부 관료는?  짧은 시간에 착륙 반대 피켓까지 인쇄해서 공항에 나타나는 일군의 시위대는? 기름이 부족해서 나리타에 착륙하려던 비행기가 멀쩡하게 인천까지 오고 있다는 설정은? 자기 몸에 바이러스를 꽂아 버리는 형사의 의협심은 그렇다 쳐도 그런 치명적인 바이러스를 관리하는 센터의 허술한 경비는? 영화 후반부의 모든 설정은 하나부터 열까지 완벽하게 무너져있다. 아무리 그럴듯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어도 최소한 말이 되는 설정을 들이대고 이야기를 전개해야지. 누굴 바보로 아나?


하이라이트는 따로 있다. 바로 비행기의 탑승객들이 스스로의 존엄과 땅에 남아 있는 가족과 친구를 위해 착륙하지 않겠다는 설정이다. 한마디로 집단 자살을 선택한다는 뜻인데, 이 부분이 내가 느낀 불쾌함의 정점이다. 많은 리뷰어들이 이 부분을 집단을 위한 소수의 희생이 정당하냐, 이런 집단주의적 사고방식이 옳으냐를 두고 비판하지만 포인트를 잘 못 짚었다. 감독은 집단주의를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 희생당하는 소수가 저렇게 죽어버리면 남아있는 다수의 이기적인 당신들 기분은 어떨 것 같냐고 대차게 조롱하고 있는 것이다. 당신들 뜻대로 시끄러운 인간들 다 죽었으니 이제 좀 속이 시원하냐고 비꼬는 농담을 던지고 있는 거다. 진심으로 기분 더러워지는 농담이다.


이 영화는 명백하게 세월호 사건을 은유하고 있다. 증거는 곳곳에 있다. 문제는 우리 사회 다수가 세월호 사건의 희생자들과 가족들의 처지를 어떻게 수용하고 있었는가 하는 지점이다. 분명히 말할 수 있는데 그들의 희생을 안타까워하고 진실을 밝혀 위로하고 싶은 사람이 우리 사회의 다수이다. 조롱하고 비꼬며 폄하하는 자들이 소수다. 만약 법이 허락한다면 저 인간 같지도 않은 소수의 무리들을 폭력으로 응징하고 싶은 다수의 울분이 있었고, 그 에너지가 광화문의 촛불로 폭발했다. 우리 모두가 마음 깊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런데 ‘비상선언'은 이런 다수의 관객의 마음과 행동을 부정했다. 우리 다수는 재난의 희생자를 모독하지도 않았고, 저들을 집단자살로 몰아내지도 않았다. 그런데 왜 너도 똑같은 이기적인 인간이라는 감독의 비뚤어진 조롱을 듣고 앉아 있어야 하는가.


도대체 이런 시나리오가 어떻게 제작 결정이 되었는지 이해가 안 된다. 만약 시나리오에는 교묘하게 저런 장치들을 감추고 제작 투자를 이끌어 냈다면 감독과 프로듀서는 영화계에서 퇴출시켜야 하고, 내용을 다 알면서도 제작 결정을 했다면 그 결정을 내린 실무진과 임원들은 그 업무를 계속할 자격이 없다. 대중심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항공재난 영화의 구조라고만 생각했다면, 흥행 사업을 영위할 기본 소양이 없는 허깨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비상선언'은 260억이라는 제작 투자비를 날려먹은 영화 산업계의 재앙일 뿐 아니라, 창작자의 비뚤어진 도덕관과 자의식이 내놓을 수 있는 최악의 스토리라는 점에서 스토리 콘텐츠 전반의 재난이다.

이 영화가 단연코 올여름 최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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