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위에 핀 기도 – 여수 향일암을 걷다
산은 웃음을 품고, 바다는 침묵을 건넨다
어제저녁, 여수에 도착했다.
작은 빗방울이 해안도로를 적시고, 하늘은 낮게 내려앉아 있었다.
펜션 창문을 열자 짠내와 함께 밀려드는 바다 바람이
낯선 도시에서의 첫인사를 건넸다.
그날 밤, 파도 소리는 마치 오래된 자장가처럼 깊은 잠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흐린 하늘 아래
나는 향일암으로 향했다.
“향일암 650m, 차량 진입 금지”
그 표지판부터 여행은 시작되었다.
경사진 길을 오르며,
앞서가는 사람들의 웃음과 짧은 농담이 들려온다.
“이제 반쯤은 온 거죠?”
“헉헉… 그냥 오늘은 여기까지만 해요~”
힘들어하는 이들조차 서로를 다독이며,
그 오르막을 함께 넘고 있었다.
천천히 숨을 고르며 한 걸음씩 걸어 올라가는 길.
그때, 길 한가운데
작은 돌부처상이 나타났다.
두 눈을 손으로 가린 채, 해맑은 웃음을 짓고 있는 부처님.
무엇이 그리도 즐거운지 모르겠지만,
그 웃음 하나에 내 다리의 무거움이 잠시 사라졌다.
부처님 아래엔 이런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남의 잘못을 보려 힘쓰지 말고
남이 행하고 행하지 않음을 보려 하지 말라
항상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옳고 그름을 살펴야 하리라.”
삶이란 어쩌면,
남의 눈치를 보며 오르기보다
나의 숨소리에 귀 기울이며 걷는 산길 같은 것 아닐까.
나는 그 자리에 잠시 멈춰 섰고,
그 글귀 앞에서 오래도록 마음을 내려놓았다.
벼랑 위에 자리한 향일암에 다다르자,
먼바다에서 밀려온 파도 소리가 먼저 나를 반겼다.
절벽 너머로 펼쳐진 바다는 회색빛이었지만,
그 속에는 더 깊고 단단한 평온함이 담겨 있었다.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의 옆모습,
묵묵히 앉아 있는 승려의 뒷모습,
그리고 말없이 고개 숙이는 여행자들.
그 모든 장면은 ‘고요한 시간’ 그 자체였다.
전설 속 바위 앞에서 나는 다시 발을 멈췄다.
경전을 이고 가던 스님이 잠시 바위를 베고 쉬었고,
그 바위에서 솟은 샘물이
경전을 적시지 않도록 지켜줬다는 이야기.
그 바위는 오늘의 나에게도
잠시 기대어 쉬어가도 된다고 말해주는 듯했다.
하산하는 길목,
한 작가 선생님이 가게에 앉아 달마도를 그리고 있었다.
나는 조심스레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했지만,
그는 환하게 웃으며 먼저 말을 건넸다.
“이리 들어와서 구경도 하고, 사진도 찍으세요.
편안하게 보세요. 구경은 눈보다 마음으로 하는 겁니다.”
그 말에 자연스레 발걸음을 멈추고
그가 그린 그림들을 천천히 둘러봤다.
강한 붓질과 부드러운 미소,
이질적인 두 분위기가 한 사람 안에서 공존하고 있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숙였고,
그 순간의 친절이 여행의 마무리를 더욱 따뜻하게 만들었다.
산을 내려와 들른 ‘카페 WITH YOU’.
유리 벽 너머로 펼쳐지는 바다와 섬들,
방금 전까지 내가 있었던 향일암이 저 멀리 작게 보인다.
한 손엔 따뜻한 커피,
한 눈엔 조용한 바다.
그곳에서 나는 오늘의 나를 천천히 되돌아보았다.
“남의 허물을 보기보다
스스로의 그림자를 살펴야 하리라.”
이 하루는 내게 말해준다.
진짜 여행은 풍경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나를 다시 보는 것이라고.
다음엔 더 이른 새벽에,
진짜 해돋이가 떠오르는 향일암에서
또 한 번 나를 마주하고 싶다.
여행 메모
향일암 위치 : 전남 여수시 돌산읍 향일암로
도보 : 주차장부터 도보 10~15분 (650m 오르막)
주차장 매우 혼잡해요 커피숍 주차 추천
추천 장소 : 카페 WITH YOU – 바다를 내려다보는 오션뷰 카페
특별한 만남 : 산 아래 달마도 그리는 선생님
(인사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