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의 여수 진남관과 이순신광장
어젯밤, 여수의 바다는 구름을 이불처럼 덮고 조용히 잠들어 있었다.
그리고 아침, 창밖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천천히 눈을 떴다.
회색빛 하늘 아래, 오늘 나는 우산을 들고 여수의 옛 숨결을 따라 걷기로 했다.
첫걸음은 진남관이었다.
진남관 앞에 서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로 머물며 수군을 지휘했던 이곳.
400년의 시간이 켜켜이 쌓인 목조건물은
오늘도 묵묵히 빗소리를 맞고 서 있었다.
기와 위로 흐르는 빗방울,
축축하게 젖은 나무 기둥,
그리고 낮은 처마 아래 잠시 멈춘 나.
사람들은 조용히 걸었고,
누군가는 기둥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그 순간, 이곳은 그저 유적이 아닌
살아 있는 시간의 현장이 되었다.
사실 진남관에는 통영의 세병관처럼 내부에 볼 것이 진남관을 제외하면 없다.
진남관을 나와 곧장 이순신광장으로 걸었다.
바닥의 물기를 조심하며 걷다 보니,
장군의 동상이 광장 한가운데 뚜렷하게 다가왔다.
비에 젖은 갑옷 위로는
실금처럼 빗물이 흐르고 있었고,
칼을 들고 선 장군의 눈빛은
지금도 바다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었다.
그 앞에 서자 마음이 단단해지는 기분.
장군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나는 지금을 사는 한 사람으로
잠시 그 앞에서 마음을 정돈했다.
광장을 지나 수산시장 골목으로 들어섰다.
비 오는 날의 시장은 더 활기차다.
장화를 신은 상인들과,
손에 생선을 든 손님들,
수조 위로 뛰는 고등어와 낙지의 힘찬 몸짓.
시장 특유의 냄새와 온기가
오늘의 여수를 더욱 생생하게 만들었다.
여수의 바다는 수평선 너머보다
이 골목의 바구니 속에서 더 가까이 와 있었다.
시장 끝자락, 한쪽 가게 앞에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비가 오는데도 사람들은 우산을 쓰고 묵묵히 기다리고 있었다.
가게 앞에는 탐스럽고 귀여운 딸기모찌들이
쇼케이스 안에서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쫀득한 찹쌀 안에 생딸기가 들어간 모습은
보기만 해도 입안에 단맛이 퍼지는 듯했다.
나는 그 줄에 서진 않았지만,
한참 동안 그 모습을 지켜봤다.
비 오는 여수 한복판에서,
딸기모찌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딘가 모르게 평화로웠다.
"오늘은 그냥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했어요.
언젠가, 진짜 여수의 단맛이 그리워질 날엔
그때 꼭 맛보러 다시 오고 싶어요."
“비는 모든 것을 적시지만,
어떤 기억은 그냥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오늘의 여수는
촉촉하게, 조용하게,
그리고 아주 깊게 마음에 스며들었다.
오늘의 여수 산책 코스
진남관 – 비를 맞으며 더욱 고요했던 역사
이순신광장 – 장군의 검보다 더 단단한 고요
여수 수산시장 – 삶이 살아 숨 쉬는 바다
딸기모찌 가게 – 오늘은 바라만 본, 언젠가의 단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