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혼돈을 품은 자의 변명
나는 통제된 시각적 즐거움을 사랑한다. 무채색의 안전한 지루함을 경멸하며, 계산된 컬러 포인트를 배치하고 프라이탁 가방을 좋아한다. '촌스러움'이라는 단어는 내 사전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다. Not In My BackYard. 님비. 즉 내 구역엔 안된다는 말이다. 나의 외관은 꽤나 치밀하게 기획된 쇼윈도다.
하지만 이 철두철미한 큐레이션의 세계에 완벽한 균열이 가는 공간이 하나 있다. 바로 책상 서랍, 내 방 같은 숨겨진 공간들? 드르륵- 서랍장이 열리는 순간, 평화로운 미니멀리즘의 세계는 끝나고 B급 컬트 영화가 상영된다.
“여러분! 환영합니다! 나의 작고 소중한 쓰레기장에 오신 것을!”
갈 곳 잃어 바래진 영수증, 뚜껑을 잃어버린 펜, 출처를 알 수 없는 부스러기들과 엉킨 케이블선들이 흡사 잭슨 폴록의 액션 페인팅처럼 기하학적인 무늬를 만들어내는 곳. 보이는 곳은 강박적으로 다림질하듯 매끈하게 관리하면서, 안 보이는 곳은 철저하고도 성실하게 더럽히는 나. 철저한 이중생활.. 허허. 이 놀라운 시각적 대비야말로 내 삶의 숨겨진 팝아트다.
이런 나의 은밀한 혼돈을 너무나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항상 이렇게 말한다.
"너 진짜 깨끗하게 씻고 잘 다녀. 보이는 곳만 관리하지 말고! 사람 몸에서 냄새가 얼마나 중요한지 아니? 꼭 빡빡 씻어라."
현실 남매의 자비 없는 잔소리가 날아와 꽂힌다. 아, 누나~ 날 대체 뭘로 보는 거야. 나 이래 봬도 깔끔함으로는 일반 남자들 중 상위권이거든? 서랍 속은..? 음.. 적어도 이 정도 인간미는 남겨놔야 미덕이 아닐까?
샤워기 아래서 피부가 붉어질 만큼 빡빡 씻어내는 건 문명인의 기본 수양이다. 그리고 그 위엔 청량한 향을 한 겹 섬세하게 코팅해 둔단 말이지. 내 몸에선 서랍 속의 묵은내가 아니라, 꽤나 자본주의적인 니치 향수의 입체적인 향이 난다고.
여기서 우리는 이 모순적인 현상을 철학적으로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미셸 푸코는 우리가 보이지 않는 감시의 시선, 즉 '판옵티콘' 속에서 스스로를 규율한다고 했다. 맞다. 촌스러움을 거부하는 나의 패션, 틈 없는 나의 향기는 타인의 시선이라는 권력에 기꺼이 부응하는 고도로 사회화된 결과물이다.
하지만 서랍 속은 어떤가? 그곳은 타인의 시선이 절대 닿지 않는 유일한 해방구다. 칸트가 말한 '물자체(Ding an sich)'의 세계, 즉 포장되지 않은 날것 그대로의 본질이 뒹구는 성소인 것이다.
어디 그뿐인가. 니체는 이렇게 말했다. "내면에 혼돈을 품고 있어야 춤추는 별을 낳을 수 있다"고. 아 정말 멋진 말이죠?
그렇다! 내 서랍 속 쓰레기장은 단순한 게으름의 산물이 아니라 춤추는 별을 잉태하기 위한 위대한 혼돈이다. 문밖에서는 반듯하고 이성적인 아폴론적 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굳게 닫힌 서랍 안에는 디오니소스적 난장판을 기꺼이 허락하는 이 기막힌 철학적 밸런스 게임!
보이는 곳의 완벽함을 유지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 나만의 은밀한 숨통 하나쯤은 터두는 것. 이것은 숨 막히게 완벽을 강요하는 현대 사회를 향한 나의 소심하고도 키치한 레지스탕스다.
오늘도 나는 난장판인 서랍장을 단호하게 닫아버리고, 완벽하게 조향된 향기를 풍기며 현관문을 나선다. 겉과 속이 철저히 다른 이 얄궂은 이중성, 꽤나 매력적인 취향의 윤리학 아닌가? 아니라면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