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결코 세련되어질 수만은 없는 이유
그날 아침은 평소보다 조금 더 분주했다. 부엌에서 피어오른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문틈으로 흘러들었고, 달걀지단을 써는 경쾌하고 얇은 칼질 소리가 방안을 타고 들어와 잠을 깨웠다.
우리 엄마는 김밥을 싸고 있었다. 그 한 줄을 위해 엄마는 평소보다 훨씬 일찍 하루를 시작하셨을 테다. 엄마는 가장자리까지 반듯하게 깐 김 위에 밥을 고르게 펴고, 노란 단무지와 어슷하게 썬 오이, 달달하게 볶아낸 소고기를 조심스럽게 올려 하나하나 단단하게 말아내고 계셨다.
“수환아, 오늘 소풍이지?”
아무렇지 않게 던진 그 말속엔 이른 아침부터 깨어 있었을 엄마의 고요한 시간이 녹아 있었다.
나는 그 김밥을 들고 집을 나서 학교에 갔고, 이내 친구들 틈에 섞였다. 돗자리를 깔고 앉아 조심스럽게 도시락 뚜껑을 열었다. 어디에 내놓아도 빠지지 않을 우리 엄마의 김밥은 예쁘게 빛이 났다. 고소한 향이 퍼졌고, 밥알은 하나도 흐트러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김밥을 자랑스럽게 꺼내놓으면서도 정작 엄마의 수고에 대해선 별생각이 없었다. 당연하듯, 늘 그래왔듯, 나는 그 김밥이 응당 거기 있어야 하는 것처럼 오만하게 굴었다.
시간이 흘러, 나는 엄마의 김밥보다 편의점 삼각김밥이 더 익숙한 나이가 되었다. 엄마 역시 더 이상 나를 위해 새벽같이 일어나 김밥을 싸지 않으셔도 되었다. 나 또한 엄마가 나를 위해 수고롭게 김밥을 마는 것을 원치 않았다.
그러다 얼마 전, 오랜만에 본가에 들렀다. 늦은 저녁에 도착한지라 부모님과 긴 대화를 나누지 못한 채 바로 방에 들어가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 눈을 떠보니 엄마가 부엌에서 김밥을 싸고 계셨다. 어린 날 내가 보았던 그 아침의 풍경 그대로였다. 엄마의 머리는 뿌리 쪽이 하얗게 세어 있었지만, 그 뒷모습만은 변함이 없으셨다.
엄마가 내미신 김밥 한 줄. 나는 그것을 베어 물고 한참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단무지의 아삭한 소리, 살짝 식은 밥의 온기, 그리고 어디에도 적혀 있지 않지만 분명하게 전해지는 한 사람의 마음. 그건 한 조각의 계절이었고, 한 줄의 인내였으며, 손끝으로 빚어낸 사랑이었다.
수많은 미식을 경험하고 나름의 확고한 취향을 구축했다고 믿었지만, ‘엄마의 김밥’만은 내 안의 그 어떤 미학적 잣대로도 평가하거나 대체할 수 없었다. 취향이라는 단어가 '마음이 쏠리는 방향'을 뜻한다면, 엄마의 김밥은 내가 어떤 방향을 정하기도 전에 이미 내 세계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던 중력이었다.
세상에 화려하고 값비싼 취향은 차고 넘치지만, 누군가의 지난한 수고로움이 고스란히 담긴 음식은 혀끝의 미각을 넘어 영혼의 감각을 형성한다. 어쩌면 진정한 의미의 취향이란, 내가 누리는 것들 이면에 존재하는 타인의 인내와 사랑. 그것을 지극히 당연하지 않게 여길 줄 아는 윤리적인 태도에서 비로소 완성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지금도 가끔, 참기름 냄새가 코끝을 스치면 나는 아주 오래된 그 아침으로 돌아간다. 환한 부엌 불빛 아래서 조용히 김밥을 말고 계시던 엄마의 뒷모습.
세상은 너무나도 빠르게 변해버렸고 내 안목도 달라졌지만, 그 기억은 그 자리에서. 여전히 나의 가장 다정하고 견고한 취향으로 남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