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력을 지불하고 취향을 샀다

안경을 향한 갈망

by 김삼월


초등학교 시절, 나의 양안 시력은 1.5였다. 흠잡을 데 없이 투명하고 선명한 세상. 시력 검사표의 가장 아래쪽 글씨까지 거침없이 읽어 내려갈 때면, 보건 선생님의 "오, 눈 좋네~"라는 감탄은 내 작은 자부심이 되곤 했다. 아무런 도구 없이도 세상을 또렷하게 볼 수 있다는 건 분명 축복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 적나라한 맨얼굴이 어딘가 밋밋하고, 심지어 조금 '촌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완벽한 기능이라는 것은 때로 매혹적인 취향 앞에서 한없이 무력해지기도 하는 법이니까.


내 시각적 평온함에 파문을 일으킨 건, 평소 과묵하고 서늘한 분위기를 풍기던 한 친구였다. 어느 날 그 친구가 뿔테 안경을 쓰고 나타났다. 그저 프레임 하나가 얼굴에 얹어졌을 뿐인데, 그 친구의 침묵은 깊은 철학적 사유가 되었고 무심한 눈빛은 지적인 위엄으로 변모했다. 마치 잘 짜인 고전 영화 속 현자나, 복잡한 수식을 단숨에 풀어내는 천재 같았다. 안경테가 만들어내는 그 단정한 선형의 프레임이 친구의 얼굴에 세련된 서사를 부여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강렬한 미적 갈망 하나가 각인되었다.


‘그래. 내 얼굴에도 저 지적인 오브제가 필요해.’


그날 집에 돌아가자마자 나는 외쳤다.


“엄마~ 아빠~ 나 안경 써야해. 필요해요.”


부모님은 시력도 좋은 녀석이 허세가 잔뜩 들었다며 콧방귀를 뀌셨다. 아버지는 웃으며 말하셨다.


"그건 눈 나쁜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쓰는 거지, 넌 눈도 좋으면서 왜 쓰니?"


지금이야 안경이 패션 아이템이지만, 그때 당시만 해도 안경은 오로지 교정 도구일 뿐. 결코 장신구가 아니었다. 하지만 어른들의 기능적인 훈계에도 그 말은 내 귀에 닿지 않았다. 당시의 나에게 안경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도달하고 싶은 어떤 '태도'이자 세련된 '분위기'였다.


나는 그 취향을 소유하기 위해, 내 완벽한 시력을 기꺼이 제물로 바치기로 했다. 눈이 실제로 나빠지면 그만 아닌가? 그날부터 나는 형광등 불빛을 등진 채 책에 코를 박았고, 칠흑 같은 방 안에서 만화책을 탐독했으며, 텔레비전에 손이 닿을 듯 바짝 붙어 앉았다. 눈이 뻑뻑하게 타들어 가고 시야가 핑 도는 느낌이 들 때면 ‘이제 곧 안경을 쓸 수 있겠지’라며 남몰래 미소 지었다. 시력을 망가뜨린다는 죄책감보다는, 곧 세련된 지식인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컸다. 안경을 향한 나의 맹목적인 신념은 그토록 성실하고 파괴적이었다.


그리고 그 인고의 세월 끝에 마침내, 나는 시력을 잃고 그토록 갈망하던 안경을 쟁취했다.


안경점 거울 앞에서 처음 테를 고르고 얼굴에 얹은 날, 나는 한참을 서성였다. 살짝 턱을 당기며 ‘어, 나 좀 괜찮은데?’ 하고 스스로 도취했다. 다음 날 학교에 가서는 괜스레 턱을 괸 채 안경다리를 매만지며 지적인 미소를 지어 보였고, 누가 질문이라도 하면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내 얼굴에 마침내 그럴듯한 서사가 생겼다! 오예!’ 완벽한 만족감이었다.


하지만 취향의 완성이라 믿었던 그 오브제는 곧 일상의 버거운 짐이 되었다. 콧대를 짓누르는 묵직함, 라면을 먹거나 추운 데서 들어올 때마다 시도 때도 없이 서리는 김, 책상에 엎드릴 때마다 얼굴을 파고드는 코받침의 불쾌함. 그뿐인가. 여름이면 땀방울에 섞여 속절없이 미끄러져 내리는 안경을 수시로 치켜올려야 했다. 게다가 안경이라는 프레임 너머의 세상은 내가 상상한 낭만적인 풍경이 아니라, 렌즈를 닦고 또 닦아내야 하는 번거롭고 예민한 현실이었다. ‘어떤 분위기를 소유하고 싶다’는 환상은, 그것이 피부에 닿는 물리적 감각으로 전락하는 순간 가장 먼저 우아함을 잃는 법이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이제 나는 안경을 벗고 콘택트렌즈를 낀다. 아침마다 맨눈으로 거울을 마주하면 초점이 나간 듯 흐릿하게 뭉개진 내 얼굴이 보인다. 시야는 1.5였던 그 시절보다 아득히 탁해졌지만, 지적인 분위기를 동경해 스스로를 망가뜨렸던 그 허무맹랑한 순수함만큼은 묘하게 또렷이 떠오른다.


물론 여전히 내 서랍 속에는 묵직하고 잘 빠진 안경들이 여러 점 자리 잡고 있다. 시력 교정이라는 본래의 목적보다는, 그저 옷차림에 세련된 포인트를 더하고 싶을 때 가끔 꺼내 쓰는 용도로 말이다. 이제 안경은 패션이 되었으니까. 눈을 혹사시켜서 성취할 수 있었던 특별함은 이제 사라졌다. 안경을 대하는 태도는 변했지만, 나의 근본적인 취향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셈이다.


그때의 맹목적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그건 거짓말일 것이다. 사실은 아주 뼈저리게 후회한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것이 기능적인 완벽함을 버리고 기어코 '취향'을 선택했던, 한 치 앞도 보지 못했던 어린 날의 값비싼 영수증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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