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스스로를 던지다
새벽 4시 15분. 알람이 울린다. 눈을 뜬다. 몸을 일으킨다. 양치만 빠르게 마치고 수영복을 챙겨서 체육관으로 향한다.
간만에 수영을 간다. 오랜 수태기(수영권태기) 끝에 오늘부터 다시 가기로 마음먹었다. 아직 해가 뜨기 전 거의 대부분은 잠들어 있는 시간. 푸르스름한 새벽 공기를 가르며 체육관에 도착했다. 고요한 도심 속, 유독 환하게 불이 켜진 실내 수영장에 들어서면 특유의 소독약 냄새와 함께 서늘하면서도 묘한 활기가 훅 다가온다.
이 이른 시간, 내가 새벽 시간을 선택한 이유는 하루를 좀 더 효과적으로 쓰기 위해서다. 일찍 일어나면 하루가 길어진다. 게다가 하루의 시작을 운동으로 하는 것? 꽤나 뽕이 차는 일이다. ‘나 좀 멋진 인생을 사는 거 같아.’라는 느낌은 나에게 필요한 감정이다.
수영은 참 좋은 운동이다.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으면서, 다른 운동에 비해 부상의 위험이 현저히 적고, 혼자서도 할 수 있는 운동이다. 지상에서는 계단 한 칸을 오르는 것조차 버거운 나약한 육체일지라도, 부력이 존재하는 물속에서만큼은 그러한 육체의 굴레를 잠시나마 벗어던질 수 있다.
수영은 ‘기투(企投, 스스로를 던져 앞으로 나아감)’의 완벽한 은유다. 레인에 뛰어드는 순간, 타인과 보폭을 맞출 필요도, 억지로 대화를 나눌 필요도 없다. 부력이라는 낯선 물리 법칙 속에서 오직 자신의 팔다리에 의지해 숨을 트는 과정. 이것은 가장 원초적인 형태의 '살아있음'의 증명이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물의 저항을 밀어내는 그 고독한 감각은 단순한 육체 활동을 넘어 실존을 확인하는 투쟁의 시간과 같다.
새벽 수영장의 풍경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거의 9할은 연세가 있으신 분들이다. 한분도 빠짐없이 다들 정말 ‘열심히’ 수영을 하신다. 다들 열심히 물길을 이겨내며 치열하게 스스로를 ’기투’하고 있는 모습. 그 모습은 마치 생의 주도권을 놓치지 않으려는, 조용하고도 치열한 존엄의 의식처럼 보인다. 그리고 그러한 의식은 ‘존경심’을 불러일으킨다.
나이가 들수록 몸은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슬프게도 누군가에게 의존해야 하는 영역이 필연적으로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매일 새벽 스스로 눈을 떠 차가운 물속으로 들어가고, 온전히 자신의 호흡만으로 25미터 레인을 완주해 내는 그 순간만큼은 세상 누구보다 완벽하게 독립적이고 주체적인 존재로 거듭난다. 이것이 노인분들이 새벽에 수영을 하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아침마다 사각거리는 만년필 촉으로 일기장의 빈 공간을 채워나가는 나의 7년 된 의식도, 윤리적 사유를 거쳐 삶의 단면들을 치열하게 글로 엮어내는 작업도 어쩌면 저들과 같은 맥락일 것이다. 주어진 세계에 무기력하게 휩쓸리지 않고, 나만의 궤적을 남기며 생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조용한 발버둥 말이다.
언젠가 나에게도 육체의 한계가 현실로 다가오는 날이 올 것이다. 그러나 그 순간이 오더라도, 저 수영장의 노인들처럼 끝끝내 내 삶의 통제권을 타인이나 환경에 내어주지 않기를 바란다. 타성에 젖지 않고 매일 나의 의지로 하루를 시작하는 일. 물안경 너머로 어슴푸레 번져오는 새벽빛을 받으며, 나 역시 고요하고 단단하게 나만의 호흡으로 남은 생의 레인을 건너가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