쇼팽을 꿈꿨지만, 윤리교사가 되었습니다

가지지 못한 것은 아름다움으로 남는다

by 김삼월


어렸을 때, 누나는 피아노를 잘 쳤다. 그래서 나의 기억 속 서랍 안쪽에는 늘 흑백의 건반이 깔려 있다. 난 피아노 소리를 좋아했다. 맑고 청아하면서 아름다운 소리. 어린 나에게 그 소리는 감동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누나가 만들어내는 피아노 선율에 마음을 빼앗겼던 나는 어느 순간부터 내 손끝으로 직접 나만의 음표를 빚어내고 싶어졌다. 그것이 내 생에 첫 미적 갈망의 표출이었다.


“아빠. 나 피아노 배우고 싶은데, 학원 좀 보내주면 안 돼? “


“피아노? 누나한테 배우면 되지 뭘 또 학원에 가? 피아노는 누나한테 배우고, 대신 태권도 학원에 가는 게 낫지 않겠니? 사나이로 태어난 이상 자기 몸은 자기가 지켜야 하니까. “


그렇게 해서 나의 유년이 향한 곳은, 부드러운 화음에 흐르는 음악 학원이 아니라, 거친 기합과 땀 냄새가 가득한 태권도장이었다. 그렇게 나는 원했던 세계에서 밀려나 무도의 세계에 던져졌다.


피아노는? 누나에게 배우려고 했지만 결국 배우지 못했다. 가족에게 무언가를 배우는 일은 애초에 불가능한 미션이었다는 것만 뼈저리게 깨달았을 뿐이다. 그렇게 나는 태권도에 몰입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건반 위를 유려하게 미끄러지는 법 대신 허공을 향해 주먹을 내지르는 법을 배웠고, 페달의 은은한 울림 대신 매트 위를 구르는 둔탁한 마찰음을 몸에 새겼다.


어린 나는 그래도 꽤나 성실하였기에, 묵묵히 하나하나씩 띠의 색깔을 바꿔 나갔다. 흰띠로 시작하여 노란띠, 파란띠, 빨간띠, 그리고 마침내 붉은색과 검은색이 교차하는 품띠까지 동여매게 되었다. 그것은 기어이 땀방울로 일궈낸 성실함의 증표가 되었고, 나도 그 안에서 어느 정도는 만족하였었다.


그러나 여전히 가슴 한구석에 웅크린 피아노를 향한 열망은 사라지지 않았다. 나의 예술을 향한 갈증은 발차기 한 번에 날아가는 가벼운 것이 아니었기에, 타격의 찰나마다 깊은 침묵 속으로 가라앉으며 조용히 발효되고 있었다.


시간이 무심하게 흘러, 허공을 가르던 소년의 주먹은 어느덧 분필을 쥐게 되었다. 피아노 건반 대신 교탁 앞에 서서 아이들에게 칸트와 아리스토텔레스를 가르치는 고등학교 윤리교사가 된 것이다. 타격의 찰나에 집중하던 내 몸의 감각은 이제 칠판 앞에서 삶의 도리와 가치를 설명하는 언어로 탈바꿈했다. 꽤나 그럴듯한 어른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지금도, 조용한 방 안에서 좋아하는 피아노 선율이 흘러나올 때면 가슴 한구석에 조용히 발효되어 있던 그 시절의 열망이 잔물결처럼 일렁이곤 한다. 누군가 음악 취향을 물어올 때면, 나는 마치 오래된 비밀을 꺼내듯 답하곤 한다.


“쇼팽을 좋아하세요? 저도요. 전 특히 발라드 1번이요.”


쇼팽을 연주하지는 못하지만, 이제는 쇼팽을 진심으로 감상하는 어른이 되었다.


어쩌다가 내 투박한 손가락을 가만히 보고 있노라면, 이 손이 분필을 집는 것이 아닌, 피아노 건반 위를 유려하게 날아다녔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실없는 상상에 빠지기도 한다. 도장 매트 위에서 땀 흘리며 얻어낸 품띠의 성실함이 지금의 교단을 지키는 단단한 힘이 되었음은 부인할 수 없지만, 기억 속 유년시절의 나는 여전히 흑백의 건반을 짙게 동경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종종 결핍과 욕망의 본질에 대해 생각한다. 온전히 소유하게 된 욕망은 이내 빛을 잃고 일상의 권태로 변하기 쉽다. 반면 끝내 채워지지 않은 결핍은 삶을 끊임없이 추동하는 힘이 된다. 내가 여전히 피아노 소리에 가슴 벅차오름을 느끼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유년 시절, 끝내 건반 위에 손을 얹지 못했던 그 야속한 엇갈림이 피아노라는 예술을 내 마음속 가장 순수하고 이상적인 방에 영원히 흠집 없는 상태로 보관하게 만든 것이다.


가지지 못한 것은 영원한 아름다움으로 남는다. 땀 냄새나는 도복을 입고 돌아선 덕분에, 피아노는 내게 단 한 번도 지루한 일상이거나 지긋지긋한 숙제였던 적이 없다. 손끝으로 직접 빚어내지 못했기에 그 선율은 내 삶에서 결코 퇴색되지 않는 동경이 되었고, 다듬어지지 않은 내 첫 미적 갈망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눈부신 미완성으로 남아 나를 숨 쉬게 한다.


쇼팽을 꿈꾸던 소년이 교탁 앞의 윤리교사가 된 이 인생의 엇갈림마저도, 어쩌면 제법 아름다운 변주곡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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