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는 ‘가지 말고’ 내게 있으라

정제엄숙의 지혜

by 김삼월

우리는 흔히 철학이나 마음 수양이라고 하면 보이지 않는 내면만을 중요하게 여기고, 겉으로 드러나는 외양이나 물질적인 취향은 가벼운 것으로 치부하곤 한다. "내면이 꽉 차 있다면, 겉으로 드러나는 외적인 것들은 무시해도 되는 것 아닐까?"라는 의문이 드는 것도 매우 자연스럽다.


하지만 놀랍게도 성리학의 실천 윤리인 '정제엄숙(整齊嚴肅)'은 외면의 중요성을 결코 간과하지 않는다. 오히려 겉모습과 주변 환경을 어떻게 가꾸느냐가 먼저라고 보았다. 외면이 정돈되면 내면도 자연스럽게 정돈된다고 보았다.



외적인 것은 정말 무시해도 되는 껍데기일까?



성리학의 바탕에는 몸과 마음, 안과 밖이 결코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내외합일(內外合一)'의 철학이 깔려 있다. 흐트러진 방 안에서 정갈한 생각이 나오기 어렵고, 아무렇게나 걸친 옷차림 속에서 단단한 마음가짐을 유지하기 힘든 것은 바로 이러한 이치이다.


즉, 외적인 것은 무시해도 되는 가짜가 아니다. 그것은 내면을 담는 그릇이자 마음의 상태를 비추는 가장 솔직한 거울인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물건을 곁에 두며, 어떤 공간을 향유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취향'은 단순히 소비를 위한 겉치레가 아니라, 나의 내면을 시각화하고 빚어내는 매우 중요한 과정이 된다.



정제엄숙(整齊嚴肅): 겉을 단정히 하여 속을 깨우다



정제엄숙은 성리학에서 마음을 집중하고 깨어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경(敬)'의 핵심 실천법이다.


- 정제(整齊): 옷매무새를 바르게 하고 주변을 가지런히 정돈하는 것.

- 엄숙(嚴肅): 몸가짐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차분하고 진중한 태도를 유지하는 것.


이는 밖이 단정해야 안이 맑아진다는 내외합일(內外合一)의 철학이다. 내가 머무는 공간과 나의 겉모습을 정돈하는 행위 자체가 곧 내면의 혼란을 가라앉히고 본연의 나를 마주하는 가장 직관적인 방법이라는 것이다.



취향, 윤리적 성찰의 도구가 되다



그렇다면 이 엄격한 전통적 성찰법을 지극히 개인적이고 자유로운 영역인 '취향'에 어떻게 접목할 수 있을까? 정제엄숙의 관점에서 보면, 취향은 단순한 소비 행위를 넘어선 자기 수양의 과정으로 승화된다.


1. 정제(整齊)로서의 취향: 덜어내고 가려내는 큐레이션


현대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탐하도록 부추긴다. 하지만 정제엄숙의 관점에서 취향은 '무엇을 더 가질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덜어내고 남길 것인가'의 문제가 된다.


유행에 휩쓸려 무분별하게 사물을 들이는 대신, 나의 가치관과 삶의 결에 맞는 것들만 세심하게 골라 내 곁을 '가지런히 정돈(정제)'하는 것. 책상 위에 놓인 펜 하나, 매일 덮는 이불 한 장을 고를 때의 깐깐함은 곧 내 삶의 질서를 세우는 과정이 된다.


2. 엄숙(嚴肅)으로서의 취향: 사물을 대하는 진중한 태도


우리는 흔히 '엄숙하다'는 말을 딱딱하고 지루한 것으로 오해하고는 한다. 하지만 여기서의 엄숙은 '대상을 허투루 대하지 않는 진심 어린 태도'를 의미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다기(茶器)를 조심스럽게 다루며 차를 우려내는 시간, 좋아하는 작가의 문장을 천천히 곱씹어 읽는 태도 속에는 엄숙함이 깃들어 있다. 취향의 대상이 무엇이든, 그것을 소모품으로 치부하지 않고 진지하게 향유할 때 우리는 그 사물과 교감하며 내면의 깊이를 더하게 된다.



깊이 있는 취향은 흔들리지 않는다



결국 정제엄숙의 눈으로 바라본 '좋은 취향'이란, 값비싸고 희귀한 것을 소유하는 능력이 아니다. 자신의 세계를 단정하게 가꾸고(정제), 그 세계를 구성하는 것들을 진지하고 다정하게 대하는 태도(엄숙)이다.


자신만의 확고하고 단정한 취향을 가진 사람에게서는 묘한 기품이 흘러나온다. 그들은 타인의 시선이나 얄팍한 트렌드에 흔들리지 않는다. 자신이 선택한 사물과 경험들이 이미 자신의 내면을 단단하게 지탱하는 뼈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정제엄숙은 우리에게 묻고 있다. 당신의 취향은 당신의 내면을 맑게 비추는 거울로 작동하고 있는가? 만약 그렇지 않다면 오늘부터 정제엄숙을 실천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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