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차피 그렇게 살다가 갈 사람

습관성 지각에 대한 생각

by 김삼월

벌써 6번째 곡이다. 시계는 약속 시간이었던 오후 2시에서, 이제 막 2시 2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내 앞의 아메리카노는 얼음이 다 녹아서 밍밍해졌고, 나는 이미 절반을 마셨다. 약속시간 10분 전에 도착했으니, 기다린지 30분이 되어가고 있었다.


"다 와가!"


10분 전에 온 카톡을 다시 본다. '다 와간다'는 애매한 말속에 내 금쪽같은 시간이 허공으로 날아가고 있다.


2시 27분. 드디어 카페 문이 열렸다. 급하게 뛰어온 기색은커녕, 여유로운 걸음걸이로 다가와 내 맞은편에 의자를 빼고 앉는다.


"오래 기다렸어? 오늘 날씨 진짜 좋다!"


분노가 차오른 이유는 명백했다. 첫째, 30분 가까이 지각함. 둘째, 미안하다고 안함. 셋째, 처음이 아님. 만날 때마다 맨날 늦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를 내진 않았다. 어차피 그렇게 살다가 말 사람이고, 말한다고 고칠 사람이 아니며, 나에게 이 사람은 그다지 중요한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내가 시간 약속에 예민한 이유는 단 하나. 그건 바로 ‘시간은 돈’이기 때문이다. 나는 늘 약속 시간 10분 전에 도착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계획을 짠다. 고백하지만, 나는 정말 지각하는 것을 싫어한다. 내가 지각하는 것도 용납을 못하고, 타인이 지각하는 것도 용납을 못한다. 왜냐하면 뒤의 일정이 틀어지는 게 싫기 때문이기도 하고, 내가 상대의 시간을 존중하는 만큼 상대도 내 시간을 존중해 주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렇다.


지각을 습관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시간 감각을 상실한 것이 아니다. 그들은 상상력 또한 상실했다. 웃기게도 습관적으로 지각하는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오직 '나의 상황'만 존재한다. 늦게 일어나서 허둥대는 자신, 차가 막혀서 짜증 나는 자신만 있을 뿐이다. 약속 장소에 홀로 앉아 얼음이 녹는 것을 보며 불쾌감을 억누르는 상대의 모습과, 뒤로 밀려버린 상대의 일정들은 도무지 상상하지 못한다. 그들은 좁은 세계관 속에서 상대방을 감정을 가진 주체가 아니라, 배경 캐릭터쯤으로 취급한다.


더 웃긴 것은 이 ‘빈약한 상상력’은 철저히 ‘선택적’이라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수천만 원의 이익이 걸린 어떤 면접에서도 평소와 같이 늦을까? 혹은 당장 안 타면 비행기가 떠나버리는데 '준비하다 보니 늦어서' 비행기를 놓칠까? 쩔쩔매는 직장 상사와의 약속에서도 27분 늦게 나타나 "날씨 좋다"며 웃어넘길 수 있을까?


단언컨대, 이런 상황에서 그들은 절대 늦지 않는다. 전날 밤부터 알람을 다섯 개씩 맞추고, 평소엔 타지도 않을 택시에 할증을 붙여서라도 기어코 30분 전에 도착해 숨을 고를 것이라고 본다. 면접관이나 상사가 화를 내는 모습은 아주 기가 막히게 잘 상상하면서, 상대가 기다리는 모습은 상상하지 못한다? 어쩌면 그들은 누가 기다려 줄 사람인지 아닌지를 무의식적으로 계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습관적인 지각은 애교 섞인 실수가 아니라 죄악이 된다. 나와의 약속에 늦어도 자기 인생에 큰 타격이 없다는 손익 계산을 끝낸 사람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시간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과는 거리를 두기로 한다. 타인의 입장을 충분히 상상하지 못하는

태도, 내 시간을 마음대로 잘라 쓰면서 진심 어린 미안함조차 없는 사람을 굳이 내 인생에 남겨둘 이유는 없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때리고 돈을 뺏어야만 폭력일까? 아닐 것이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귀한 시간을 동의도 없이 뺏어서 버리는 행동이 더 나쁜 폭력일 수 있다. 어쩌면 시간 약속을 지킨다는 건, 단순히 분 단위를 맞추는 일이 아니라, 서로를 하나의 온전한 존재로 인정하는 최소한의 방식인지도 모른다.


물론 나 역시 누군가를 기다리게 한 적이 전혀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겠다. 다만 그 불편함을 기억하려 애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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